이탈리아 편에서 엔초 페라리 박물관과 페라리 박물관, 이렇게 두 곳을 먼저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편은 람보르기니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페라리라는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를 뛰어넘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에 등장한 람보르기니는 그 독특한 스타일과 강력한 성능으로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브랜드가 됐습니다.

람보르기니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 의해 1963년에 설립됐으니 그리 역사가 긴 편은 아니죠. 이 짧은 기간 동안 7~8차례나 경영권이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사실 람보르기니 설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계 기술을 배우며 성장한 페루치오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 재건 기간 농기계 트랙터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던 그는 페라리250 GT 오너이기도 했죠. 그런데 페라리 모델의 클러치 오작동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팬의 마음으로 엔초 페라리를 찾아가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엔초의 성격을 몰랐던 걸까요? 그에게 굴욕적 핀잔만 듣고 쫓겨나듯 나와야 했습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굴욕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후 최고의 자동차 엔지니어를 불러 모아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세웁니다. 그는 무조건 페라리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합류한 페라리 출신 중에는 최고의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엔진 기술자였던 조토 비짜리니도 있었습니다. 페라리 역작 250 GTO를 개발한 엔지니어였죠.

황소자리에 태어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투우에 관심이 많은 마초 기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엠블럼은 그의 성격과 관심사가 동시에 반영된 성난 황소가 되었고, 여러 모델에 전설적인 투우소 이름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역사는 짧지만 사연이 보통이 아닌 이 브랜드의 박물관을 찾기 위해 볼로냐로 향했습니다.
람보르기니 본사는 행정구역상 볼로냐에 속하지만 거리상으로는 모데나에 더 가깝습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페라리 고향 바로 옆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세운 것이죠. 많은 모델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람보르기니 박물관은 이 공장 한 쪽에 2001년 들어섰습니다.

최근 람보르기니 박물관 명칭이 무에쏘 델레 테크놀로지에(Museo delle Tecnologie, 기술박물관이라는 뜻)로 바뀌었습니다. ‘람보르기니 박물관 무데테크(MUDETEC)’라고도 불리는데 뭔가 조금 건조하죠? 그래서 그런지 현지에서는 람보르기니 박물관이라 부르는 게 여전히 더 잘 통했습니다.
박물관 주변은 공장들뿐이었는데요. 거대한 농지 사이에 마련된 작은 공업지대라 그런지 찾아가는 길은 특별할 것도 없고, 거대한 트럭들과 함께 달리는 등 황량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주차장도 박물관 내에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건물 건너편 이면 도로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야 했습니다.
입구에 서면 웬만한 개인이 만든 박물관보다 더 작은 규모에 다시 한번 실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초라한(?) 박물관이라니, 람보르기니 이름값과 너무 거리가 먼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2개 층으로 된 박물관은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알차게 구성이 돼 있다는 게 위안이 됐습니다. 역사의 무게감은 덜했지만 그 무엇보다 독특한 콘셉트카와 최신 모델들까지 모두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현재부터 창립 당시까지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과 사진들이 시간 역순으로 벽을 채우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짧은 복도를 따라가면 람보르기니 브랜드 최초의 양산차 350 GT를 가장 먼저 보게 되는데요. 1963년 설립한 그해에 그들은 350 GTV라는 콘셉트카를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합니다. 하지만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줘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1964년, 콘셉트카와는 많이 다른 느낌의 350 GT를 정식으로 내놓습니다. ‘카로체리아 투어링’이 디자인을 담당한 이 모델은 3년 동안 약 120대가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요. 조토 비짜리니 수석 엔지니어가 일찍 회사를 떠나는 바람에 그가 설계를 맡은 엔진부터 이래저래 수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350 GT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고, 그렇게 그들의 역사 첫 페이지가 새겨졌습니다.

350 GT와 함께 1층에 전시된 모델 중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미우라였습니다.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약 760대 넘게 생산이 된 이 아름다운 스포츠카는 람보르기니라는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린 첫 번째 히트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독일 아우토슈타트 편에서 소개를 한 바 있습니다만 카로체리아 베르토네의 명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 작품으로, 그는 이후에 나오는 쿤타치 디자인을 책임졌고, 디아블로 초기 디자인까지 그의 손길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투우용 소를 사육하던 유명 사육사의 이름이었는데요.
미우라는 P400, P400S, 그리고 가장 인기 있었던 P400SV 등으로 파생되었습니다. 여기서 P는 뒤쪽을 뜻하는데 미드십 엔진 모델임을 나타내며, 400은 엔진 배기량을, 그리고 SV는 아주 빠르다는 의미의 슈퍼벨로체 약자입니다.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말해도 될 만합니다.

파란색의 쿤타치 역시 관람객 시선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미우라와 함께 마르첼로 간디니의 대표작 중 하나죠. 비슷한 시기에 한 사람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하기엔 스타일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요. 쿤타치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란치아 스트라토스 제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위로 올려지는 시저도어가 적용됐고, 1990년까지 1980대 이상 판매된 성공적인 고가의 스포츠카였습니다. 쿤타치(Countach)라는 이름은 피에몬테 지역 방언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염병이란 뜻과 ‘젠장’과 같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간디니는 한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로 쿤타치라는 모델명을 만들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유럽 여러 박물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람보르기니 첫 번째 오프로드 모델LM002도 당연히 전시 중이었는데요. 미군 등에 군용으로 납품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여러 이유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7년간 약 300대 생산에 그치며 실패를 맛봤지만 람보르기니는 결국 우루스를 통해 SUV의 꿈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아주 독특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에스파다도 전시 중이었습니다. 미우라와 쿤타치 중간 시기에 나온 모델로1967년부터 1978년까지 약 1,200대 이상 만들어졌습니다. 길고 넓은 차체는 4명이 탑승하기에 어울렸고, 역시 마르첼로 간디니 디자인의 모델입니다. 에스파다는 스페인어로 ‘검’을 뜻하는데 정확히는 투우사가 황소를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검을 의미합니다.

나란히 놓인 노란색과 오렌지 색상의 디아블로 2대도 인기였습니다. 1990년부터 2001년까지 3천 대에 조금 못 미치게 판매된 스포츠카인데요. 람보르기니 최초의 네바퀴굴림형 모델이기도 해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4.5리터 V12 엔진은 최고속도 320km/h까지 낼 수 있었는데 이 최고속도는 그때까지 나온 람보르기니 모델 중 최고 속도였습니다.

팝업 헤드램프와 시저도어 등으로 무장하며 흔히 말하는 람보르기니 덕후들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전시 차량은 1999년부터 생산된 2세대 디아블로 GT와 GTR입니다. GT는 80대 한정 생산되었고 레이싱에 최적화된GTR은 40대가 생산됐습니다. 연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그런 모델들입니다.

1층 전시실에서 람보르기니 기념비적인 모델들을 통해 브랜드 역사를 알아봤다면 2층에선 콘셉트카와 현재 판매 중인 쟁쟁한 현역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2층은 특별전, 기획전이 주로 열리는 곳이기도 한데요. 강렬한 이미지의 람보르기니 모델들이 한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좁은 전시실이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어느 곳보다 뜨거웠습니다.

2층 전시 차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베네노(Veneno)였습니다. 2013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소개된 이 한정판 모델은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죠. 출시 당시 가격이 400만 달러나 되는 초고가 스포츠카였습니다. 생산은 고작 쿠페 5대, 로드스터 9대, 총 14대뿐이었기에 중고차 가격은 신차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하네요.

베네노엔 아벤타도르에 들어간 6.5리터 V12 엔진을 다듬어 넣었습니다. 최고750마력에 0-100km/h는2.8초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 에드먼즈닷컴에서 선정한 가장 못생긴 자동차 1위에 선정되는 등, 스타일에선 말도 많은 자동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 기괴함을 넘어선 분위기에 그만 압도되고 맙니다.
베네노 옆에는 균형 잡힌 센테나리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탄생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제네바모너쇼에서 공개됐는데요. 탄소섬유 범벅인 이 차는 무게가 1,520kg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출력은 베네노보다 더 높아 최고770PS까지 나오죠. 베네노가 14대 만들어진 것에 비해 센테나리오는 약 40대 정도가 생산되며 그나마 한정판에 갈증을 느낀 팬들 마음을 달릴 수 있었습니다.

2014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콘셉트카 아스테리온(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 이름)도 볼 수 있었는데요. 워낙 독특하고 강한 모델들 사이에서 있어서 그런지 순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차는 4인승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로 우라칸에 들어간V10 엔진과 전기모터가 더해져 최고 910마력의 출력을 자랑합니다. 양산 얘기도 나왔지만 그냥 콘셉트카로만 남기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우라칸 EVO, 아벤타도르 SVJ, 우루스 등 현재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최근 모델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상당했습니다. 거기에 한정판 모델과 콘셉트카까지. 이처럼 다양한 람보르기니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역시 좁은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접근성 좋은 곳에 좀 더 큰 규모로 잘 꾸며 박물관을 새롭게 짓는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많은 방문객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 경쟁력, 그리고 전통을 이어간다는 그런 전략 차원에서도 한 번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페라리를 넘어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출발한 람보르기니의 역사와 현재를 꾹꾹 눌러 담은 곳, 람보르기니 박물관이었습니다.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람보르기니 박물관 (Museo Lamborghini, 또는Lamborghini museum MUDETEC)
브랜드명 : 람보르기니
국가명 : 이탈리아
도시명 : 산타가타볼로냐
위치 : Via Modena, 12, 40019 Sant'Agata Bolognese BO, 이탈리아
건립일 : 2001년
휴관일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오전 09:30~오후6:00
입장료 : 성인 15유로
홈페이지 : lamborghini.com/en-en/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