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6연패했지만..그래도 유쾌했던 '스크린 원정대'

이동환 입력 2021. 4. 22. 19:39 수정 2021. 4. 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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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서울-CGV 함께한 '영화관+K리그' 이벤트
'우리편'만 가득한 영화관, 열광의 도가니
코로나 시대 이색 응원법으로 자리잡을 듯
기성용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FC 서울 팬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CGV아트레온에서 열린 ‘CGV 스크린 원정대’ 서울-제주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입장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걸 진짜로 누가 보러 온다고?’

21일 오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FC 서울, CGV와 함께 기획했다는 ‘CGV 스크린 원정대’를 취재하러 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코로나19 시대, 방역지침 탓에 원정석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며 ‘직관’하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접근성 좋은 영화관에서 중계영상을 틀어주는 이벤트였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내려 신촌 CGV아트레온 지하 3층 프리미엄관 앞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오늘 취재 공치지 않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지만, K리그는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선명한 고화질로 중계된다. 영화관까지 가지 않아도 편안히 집 안에서 누워, 심지어 치맥을 즐기면서 관람할 수 있다. 게다가 이날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경기 전까지 서울은 컵대회 포함 5연패를 하고 있었다. 경기 직전 발표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23.6세. “서울이 아닌 서울의 18세 이하(U-18) 팀 오산고 라인업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취재하러 온 기자도 한 명 밖에 없었다.

기우였다. 상영관 앞엔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고, 간간이 서울의 ‘검빨’ 유니폼을 입은 ‘찐팬’들도 눈에 띄었다. 소셜미디어 홍보글을 보고 예매하게 됐다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는 곳도 서울 팬이 된 시점도 가지각색이었다.

서울 팬 심주안, 김철중씨가 구단 관계자로부터 기성용이 선물한 응원 머플러 선물을 받고 있다. 사진=이동환 기자


10년차 서울 팬 심주안(28)씨는 이날 경기를 보러 경기도 수원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원정경기 때 팬들이 함께 모여 맥주 한 잔 하면서 단체 관람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엔 힘들어졌다”며 “이렇게라도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응원하러 왔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동행한 김철중(30)씨도 “찐팬으로서 응원하러 왔다. 서울 팬들끼리 함께할 수 있는 자리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직 K리그 팬도, 서울 팬도 아니지만 영화관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 전모(32)씨는 “월드컵 때 극장 응원전을 펼쳤던 게 생각나서 신기해 보러 오게 됐다”며 “축구는 경기장에서 한 번도 직관한 적 없어 오늘 이벤트가 더 기대된다”고 했다.

그렇게 영화관에 입장하는 팬들의 손엔 서울 구단에서 준비한 깜짝 응원 머플러 선물이 하나씩 쥐여졌다. 최근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기성용이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고자 자비를 들여 준비했다고 한다. 기성용은 애초 영화관에 와 감사 인사를 전하려 했지만, 코로나19 방역 문제 탓에 참석하진 못했다. 선물을 받은 몇몇 팬들은 “감동적”이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영화관 환경은 축구 경기를 보기 안성맞춤이었다. 축구장과는 달리 ‘일행 간 거리두기’가 허용돼 일행 2~3명씩 줄지어 앉아 함께 응원할 수 있었다. 가로 13m, 세로 5m의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를 보니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전달돼 마치 전용구장 맨 앞줄에서 직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서울 팬들이 상영관 안에서 중계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약 60명의 팬들이 객석을 채운 상영관은 이내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됐다. 권성윤이 1분 만에 얻어낸 페널티킥을 신재원이 성공시키면서다. 상영관 안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고, 미소 짓는 박진섭 감독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자 팬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밀폐된 영화관에서 한 팀을 응원하는 팬들만 모여 경기를 시청하니 2002년 월드컵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서울 선수가 공을 빼앗기거나 반칙을 당하면 “이건 아니지”란 고함이, 골 찬스를 놓쳤을 땐 “아아~”하는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처음 진행하는 이벤트여서 차질도 빚어졌다. 전반전에 중계 화면이 멈추는 일이 발생한 것. 처음엔 “그럴 수 있지”라며 웃어넘기던 팬들도, 문제가 반복되자 하나 둘 스마트폰을 꺼내 깜깜한 영화관에서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했다. CGV와 연맹은 미디어센터에서 열어준 스트리밍 링크에 접속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전반 35분 부턴 포털사이트 플레이어로 중계를 속개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마저도 해상도를 1080p에서 720p로 바꾸는 모습이 스크린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객석 한 편에서 “그래 720p라도 좋다”며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연맹 관계자는 “영화관 지하 네트워크 문제, 영상 재생 프로그램 변경 과정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는 문제가 발견됐다”며 “전에 두 차례 다른 경기를 테스트할 땐 문제가 없었는데, 더 좋은 노트북으로 바꾼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5일 수원 FC전엔 네트워크망 영향을 안 받는 IPTV 수신기를 달아 영상을 바로 재생하는 등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후 CGV는 팬들에게 영화 무료 관람권을 나눠주며 사과했다.

서울 팬 김수진씨와 손하현씨가 기성용이 선물한 응원 머플러를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사진=이동환 기자


관람에 불편함이 있었고, 이날 서울의 어린 선수들도 결국 1대 2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팬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대학생 손하현(19)씨는 “친구들끼리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눈치 안 보고 소리도 지를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도 갈 수 없는 원정경기는 다 보러 올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직장인 정다훈(39)씨도 “솔직히 팀 성적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런 이벤트를 해주는 게 고맙다”며 “대형 스크린으로 K리그를 모여서 본다는 것 자체가 경기 결과를 떠나서 뜻깊다”고 했다.

영화관을 나오는 팬들의 밝은 미소를 보니, 축구와 영화관이 꽤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코로나19 시대에나 볼 수 있는 진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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