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프라다, 버버리.. '명품 선글라스'의 비밀

이 정도면 안경 제국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안경 제조업체 룩소티카는 전 세계 주요 명품 안경 브랜드를 휘하에 둔 회사다. 레이밴, 오클리 등의 자사 브랜드 외에도 샤넬, 프라다, 버버리, 조르지오 아르마니, 불가리, 토리버치, 티파니 앤 코, 랄프로렌 등의 안경 분야 라이선스 제작을 전담한다. 명품으로 알려진 산하 브랜드만 30여 개. 찍어내는 안경 물량만 해도 한 해 6000만 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엔 89억 2900만 유로(한화 약 11조 7500억)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순이익은 9억 유로(한화 약 1조 2000억). 미국 안경테 시장에선 거의 독점적 위치를 차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전 세계로 눈을 돌려도 이 거대한 안경 분야 시장에서 점유율이 16%에 이른다. 사실 룩소티카를 단순히 제조사라고 부를 수도 없다. 도소매 등 유통 등 전 과정까지도 통합한 세계 유일의 안경기업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출처: 룩소티카 공식 홈페이지

룩소티카가 놀라운 점이라면 이 모든 성과를 1960년대 레드오션이었던 안경 시장에 혜성같이 나타나 이뤄냈다는 데 있다. 안경테를 만드는 회사로서 품질 면에선 이전 제품들과 큰 차이도 없고 공방 수준에서 사업체가 난립한 그야말로 레드오션이었다. 그럼에도 룩소티카는 차이점을 만들어냈다.

1961년 이탈리아 벨루노 아고르도에서 10명 남짓 직원을 둔 안경 부품 업체가 10만 명이 근무하는 세계 최대의 안경 제조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노령에도 룩소티카 대표로서 안경 산업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Leonardo Del Vecchio ·84)의 창업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아원에서 자란 룩소티카 창업자,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절실함

출처: 룩소티카 공식 홈페이지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의 사진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는 세계 부자 순위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최근 포브스가 조사한 세계 부자 순위에도 자산 2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2조 원으로 50위를 차지했다. 이 부호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그것도 꽤나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을 우수하게 졸업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델 베키오는 대학 문턱은커녕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고아였다.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전형인 셈이다.

델 베키오의 부모는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를 7살 때 고아원에 맡겼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다섯 형제를 키워야 했던 그의 어머니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린 나이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자동차와 안경 부품 공장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스스로를 부양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일을 하는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다. 노령에도 대부분 회사에 나와서 근무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0시간 이상 근무도 예삿일이다. 1958년 밀라노에 안경 하청을 받는 자신의 사업장을 차렸는데 이 땐 14시간 넘게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언제나 일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하는 청년이었다.

출처: 룩소티카 공식 홈페이지

그는 이 사업장을 기반으로 3년 뒤 부품회사인 룩소티카를 창업한다. 당시 직원은 12명. 이 역시도 결국은 하청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성실한 기업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거기서 그쳤다면 세계적인 부호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에겐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자체 브랜드로 승부해야 한다는 점. 패션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희박할 때에 명품으로서 가치를 높이겠다는 비전이 뚜렷했다. 두 번째는 시장 요구에 대응하려면 유통망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의류시장과는 달리 안경업체는 전문 브랜드 중에서 뚜렷한 강자가 보이지 않았다. 브랜드를 통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영향력은 유통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안경 산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전략적으로 고민한 경영인이다. 견해도 탁월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가지고 차근차근 실현해나가는 실천력도 남달랐다.

안경이 단순 시력교정 도구 이상인 시대... 명품화 전략으로 성장 곡선

그는 1967년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1974년엔 이탈리아 안경 유통 업체인 스카로네를 인수하면서 거대 제국을 위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안경이 단순히 시력 교정 도구를 넘어 패션 아이템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상대로 트렌드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할리우드 산업이 성장하면서 패션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경의 패션화를 시도했던 그는 발 빠르게 움직여 패션 디자이너들의 협력을 구했다. 1988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의 협업은 룩소티카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탑건> 스틸컷

이후 다양한 안경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룩소티카를 주목하는 시선들이 많아졌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관리해오던 샤넬이나 베르사체, 프라다 등과의 협업이 이뤄졌다. 안경산업이 패션으로 치우칠 때 명품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이 빠르게 명품이 된 것이다.

델 베키오는 안경 산업이 패션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협찬을 가장 잘 활용한 경영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 속 주연배우들에게 안경을 협찬하는 방식으로 안경테와 선글라스 명품화를 주도했다. 그가 탁월한 전략가라고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룩소티카는 1999년 룩소티카는 레이벤을 자회사로 인수해 선글라스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데에 이른다. 당시 레이벤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과 <탑건>의 톰 크루즈가 레이벤의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선글라스 브랜드였다.

이 인수를 기점으로 안경 시장에서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로 명실상부 최고의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통합 생산 체제 구축으로 유통망 장악

룩소티카의 성공 키워드 중 하나는 유통망 장악이다. 이는 ‘통합 생산 체제 구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룩소티카는 세계 안경 기업 중 유일하게 설계부터 제작, 도매, 소매, 유통 등의 전 과정을 통합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룩소티카는 유통 업체를 매입하는 전략으로 유통망을 장악해왔다. 사업 초기에만 해도 도매상을 통해 제품을 판매해왔지만, 1974년 이탈리아 유통회사인 스카로네 매입을 통해 자체적인 유통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델 베키오는 스카로네를 통해 경쟁업체를 밀어내고 룩소티카 브랜드 제품만으로 구색한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됐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바슈롬의 안경 사업 부문과 렌즈 크래프터스를 인수했고, 2001년에는 선글라스 소매업체인 선글라스 헛을 인수해 생산부터 판매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것. 레이벤을 인수한 이후 가격을 7배나 올렸지만 오히려 판매량이 늘어난 것은 이러한 유통망 장악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출처: 에실로 공식 페이스북

룩소티카는 2017년에는 프랑스의 안경렌즈 업체 에실로와 인수합병을 발표해 ‘안경 공룡’의 탄생을 알렸다. 세계 최대 안경 제조업체인 룩소티카와 교정 렌즈 선두 업체 에실로가 사업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델 베키오는 “합병으로 안경테와 안경 렌즈가 한 법인 하에 통합적으로 설계, 제작, 유통된다”며 “안경산업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된 기업의 이름은 에실로룩소티카(EsilorLuxottica)로 룩소티카의 창업자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가 경영권 지분 31%를 보유해 델 베키오가 회장을, 에실로의 CEO인 허버트 새그니에르가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회사 경영을 맡고 있다.

미국 내에선 이러한 룩소티카의 전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룩소티카가 디자인, 제조부터 유통망까지 모든 것을 컨트롤해 안경 산업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는 "룩소티카가 안경 산업에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며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다양한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소매업체에 들어가더라도 알고 보면 모두 룩소티카의 제품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회사가 차별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안경 시장에서 홀로 변화를 만들어낸 회사라는 점을 간과할 순 없지만, 지금은 공룡이 돼서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론 최근엔 미국에서도 온라인 영역이 강화되면서 유통 독점을 깨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경 브랜드도 군소 장인 공방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거대 제국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시각은 그래서 나온다.

다만, 한동안 시장 상황이 좋을 것으로 보여서 룩소티카의 사업 전망은 나쁘지 않다. 아시아 등 신흥 시장에서 시력교정 도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세계 명품 시장에서 큰 손이 된 중국이 룩소티카 제품의 주요 구매처로 떠오르는 흐름도 보인다. 룩소티카는 여전히 공고한 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인터비즈 이슬지, 임현석
inter-biz@naver.com
출처: 룩소티카 공식 홈페이지
이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이런 콘텐츠는 어때요?

최근에 본 콘텐츠와 구독한
채널을 분석하여 관련있는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려면?

채널탭에서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