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는 곳, 브리티시 자동차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선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메릴번역에 도착했죠. 남들은 근처 베이커 스트리트에 있는 셜록 홈즈 박물관을 찾는다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가야 했으니까요.
레밍턴 스파라는 작은 기차역에 내리면 다시 버스를 타고 게이든이라는 곳까지 30분가량을 더 가야 합니다.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브리티시 자동차 박물관 주변은 한없이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였습니다. 누가 봐도 시골 어딘가 외진 곳에 지어진 박물관 같았죠. 왜 자동차 박물관이, 그것도 영국을 대표한다는 박물관이 이런 곳에 자리한 걸까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곧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엔 애스턴 마틴의 본사와 공장이 있고, 또 박물관 바로 옆엔 지난해 오픈한 재규어랜드로버의 첨단 제품 개발 센터와 재규어 디자인 스튜디오가 자리합니다. 재규어랜드로버 연구센터는 400만m² 크기(축구장 48개를 합친 것)로 이곳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만 1만3,000명에 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박물관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코번트리엔 재규어랜드로버의 본사와 공장이 있으며, 코번트리 옆 버밍엄은 오스틴 자동차가 시작되었던 곳이고, 박물관과 가까운 옥스퍼드주에선 모리스 모터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포드가 공장을 짓고 롤스로이스가 첫발을 내디딘 맨체스터까지 포함해 박물관 일대는 영국 최고의 자동차 산업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브리티시 자동차 박물관은 주변에 복잡할 만한 구조물도 없는, 매우 조용하고 자연 친화적인 곳입니다. 영국의 자동차 역사와 수많은 자동차를 배우고 감상하는 데 방해될 게 없는 그런 분위기를 하고 있죠. 26만㎡의 넓은 부지 위에1993년 헤리티지 자동차 센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이후 2015년 브리티시 자동차 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됐습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영국 자동차 최대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전시 모델만 300대에 이르며 서류나 사진 등, 역사를 담고 있는 다양한 자료만 해도 100만 개에 달합니다. 규모가 크고 전시물 또한 많아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하루 정도는 온전히 투자를 해야 합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부터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전시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트라이카(Tri-car)로 분류되는, 마치 자전거를 닮은 듯한 자동차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영국의 대표 자동차 회사 중 하나였던 오스틴(Austin) 설립자 허버트 오스틴이 울슬리라는 회사에서 일하며 만든 그의 첫 번째 자동차였습니다.

1기통에 3마력으로 최고속도는 19km/h 수준의 이 단순한 자동차는 이후1900년 이후 오스틴이 네바퀴 자동차를 만드는 기초가 되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그런 모델입니다. 오스틴은 울슬리에서 나온 후 버밍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세우고(1905년)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뛰어드는데요.
쇼룸이 있는 대리점, 정비소 등을 함께 운영하는 등, 다양한 자동차 관련 사업을 펼치며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1922년 미국 포드 T에 자극을 받은 그는 대중적인 차 오스틴 세븐을 내놓는데 이게 흔한 말로 대박을 터트립니다. BMW가 오스틴의 세븐을 가져다가 딕시라는 차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 외에도 미국과 프랑스, 미국 등에도 세븐은 다양한 이름으로 현지 회사들에 의해 만들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1952년 오스틴은 또 다른 자동차 회사 모리스를 인수합니다.

오스틴이 만든 트라이카 옆에는 다임러 컴퍼니가 1897년 내놓은 자동차 ‘다임러 그라프튼 페이튼’이 세워져 있습니다. 원형이 유지된 가장 오래된 영국산 자동차 중 하나로 얘기되는 희귀 모델인데요. 다임러 컴퍼니는 고트립 다임러로부터 라이선스 권리를 얻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드릭 심스라는 엔지니어가 고트립 다임러와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이렇듯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다임러와 파나르 르바소 등 독일과 프랑스 회사들로부터 자동차 제작에 관한 기술을 가져오면서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최초 공식 자동차 회사였던 다임러 컴퍼니는 1910년 버밍엄 스몰 암스 컴퍼니(BSA)라는 신생 회사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1960년 재규어에 합병되는 운명을 맞습니다. 현재 재규어 본사가 있는 코번트리는 다임러 컴퍼니가 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영국 자동차 회사의 가장 오래된 모델을 보며 느낀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그 옆에 있는 ‘랜드로버 시리즈 1(1948년)’이 다시 한번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이 차는 1878년 자전거 등을 만들던 회사로 출발한 로버(Rover)에서 나온 사륜구동 모델로, 당시 전무였던 스펜서 윌크스, 그리고 수석 디자이너 마우리스 윌크스 형제가 자신들의 소유했던 윌리스 지프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모델이었습니다.

로버는 1967년 레일랜드에 흡수되었고, 다시 인수 합병의 과정을 거쳐 브리티시 레일랜드로 바뀝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계속 랜드로버 시리즈는 생산되었고, 성공했습니다. 1970년에는 그 유명한 레인지로버가 출시되었으며1978년, 결국 랜드로버는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자회사로 독립되며 모델명뿐만 아니라 자동차 회사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릅니다. 회사 경영은 이 차를 처음 설계한 마우리스 윌크스가 담당했고, 그렇게 랜드로버 브랜드는 본격적인 그들만의 역사를 써내려갑니다.
영국 자동차 회사들 역사를 훑다 보면 어디 하나 순탄하게 그 역사를 이어온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랜드로버 옆에 세워져 있는 모리스 모터스가 만든 ‘모리스 미니 마이너’ 또한 그런 파란만장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모델입니다.

1912년 자전거 제조사를 설립한 윌리엄 모리스는 1919년 자동차 사업에 본격 뛰어들기 위해 회사명을 모리스 모터스로 변경합니다. 처음 10년 동안 모리스 자동차 회사는 영국 자동차 생산량의 40%가 넘게 차지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데요. 2위 오스틴과 영국 자동차 사업을 이끌다시피 했습니다.
모리스는 1924년 MG라는 자동차 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MG는 모리스 아래에서 스포티한 자동차를 생산했고, 지금은 중국 기업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그 이름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모리스는 허버트 오스틴이 몸담았던 울슬리까지 자회사로 거느렸습니다. 한 마디로 1920~30년대 모리스는 영국 자동차 산업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그런 모리스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작고 경제적인 자동차들이 유행하던 시대에 어울릴 만한 그런 차를 내놓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 사이 1952년 회사는 경쟁사였던 오스틴에 흡수가 되었고, 오스틴과 모리스는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BMC)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납다. 이렇게 어수선한 사이 모리스 출신의 알렉 이시고니스는 가로 엔진, 앞바퀴 굴림, 독립식 전륜 서스펜션과 조향성이 좋은 스티어링 등, 다양한 기술이 반영된 작은 차를 경영진 앞에 약속대로 내놓습니다.
1959년 8월, BMC 소속의 두 회사 모리스와 오스틴은 각각 미니 마이너와 세븐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팔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 작은 차는 영국 최초로 백만 대 판매량을 넘긴 자동차라는 기록을 쓰게 됩니다. 미니스커트와 비틀즈로 대변되는 1960년대 새로운 영국 문화는 모리스 마이너를 타고 세계를 강타했고, 지금까지도 영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함께 있는 팬텀도 의미 있습니다. BMW 인수 후 롤스로이스가 내놓은 첫(2002년) 모델이자 롤스로이스 부활의 신호탄이었죠. 그리고 앞서 잠깐 소개한 바 있는 MG의 1925년형 ‘올드 넘버 원’과 재규어가 자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 E-타입(1963년)도 보입니다. 여기에 2016년 랜드로버가 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해 제작한 레인지로버 스포츠도 역사적 모델들과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최초부터 최근까지, 영국 자동차 역사를 한방에 다 보여주는 그런 인상적인 박물관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930년대 정비사 존 카터가 운영했던 정비소를 그대로 재현했는데, 당시 사용하던 공구와 부속품 일부를 포함할 정도로 정성을 들여 공간을 꾸며놓았습니다. 정비소 옆에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자동차 영상을 상영하는 작은 극장도 있었는데요. 박물관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도 전부터 영국 자동차 역사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영국 자동차 역사를 만나게 될 전시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을 가득 채운 영국 자동차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글, 사진/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