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저속한' 랩이어서 문제? 프랑스 유로 '국대 주제가' 논쟁

아프리카 출신 랩퍼, 프랑스 유로 국대 주제가 발표
극우 인사 중심으로 해당 주제가 비판 가해
"저속하고 유해한 랩퍼…주제가로 인정할 수 없어"
우파 성향 랩퍼를 내세우기도, 표현 넘어 인종 갈등 논쟁
유럽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 중의 하나인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 2021, 공식 명칭 ‘유로 2020’)를 눈앞에 두고 프랑스 사회에서 축구 외적인 논쟁이 일고 있다.
새로 공개된 프랑스 유로 국가대표 공식 주제가(hymne)를 두고 우파진영에서 거센 비판을 가하면서 프랑스 사회 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종 문제가 불거지진 것이다.
프랑스앵포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지난 5월 19일 트위터를 통해 올해 유로 대회에 참가할 프랑스 국가대표 명단과 함께 새로운 공식 주제가가 공개됐다.

◆트위터에 유수파의 랩과 함께 공개된 프랑스 유로 국가대표 명단 ⓒ트위터
이 노래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징하는 색깔이자 애칭인 파랑(bleu)을 활용한 '내 이름을 파란색으로 써(écris mon nom en bleu)'라는 제목의 랩으로 프랑스의 유명 랩퍼 유수파(Youssoupha)가 만들었다. 이번에 발탁된 국가 대표팀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이 노래가 사용됐다. 유수파는 중부 아프리카 현 콩고민주공화국인 자이르 공화국 태생으로 올해 41세다. 지난 2007년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유수파의 프랑스 국가대표 주제가를 두고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앞장서 비판의 포문을 열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평소 유해한(virulent) 랩을 하기 때문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응원가를 맡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전선의 부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Jordna Bardella)는 지난 5월 20일 프랑스앵포에서 “랩을 통해 ‘그들이 우리의 예술작품을 훔쳐갔고 그것들을 박물관에 전시했다'는 식으로 프랑스를 사기꾼 나라로 묘사하는 등 매우 유해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며 유수파와 그를 선택한 프랑스축구협회에 비판을 가했다.
또 우파 성향의 언론으로 분류되는 르피가로가 지난 5월 22일 공개한 212,365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89.22%가 유수파의 랩을 프랑스 유로 국가대표의 공식 주제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유수파의 프랑스 국가대표 응원가를 둘러싼 논쟁은 그의 표현방식을 넘어 프랑스 사회 내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와 인종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 등 극우 인사들의 인종주의 시각에 비판을 가했던 유수파에 대한 비난은 인종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스포츠 담당 장관(ministre chargé des sports)인 록산나 마라시내누(Roxana Maracineanu)는 지난 5월 21일 프랑스앵포에서 “프랑스축구협회도 인종차별 문제 해소에 동참하고 있다”며 “유수파는 대중적인 랩퍼이고 또 인종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파 쪽에서는 ‘프랑스 정신'을 잘 드러낼 인물의 노래를 주제가로 선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르피가로의 6월 1일 보도를 보면 공화당(LR) 소속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프랑스 니스 출신의 랩퍼 카오틱 747(Kaotik 747)의 랩 '조국의 아이들이여 가자(Allons les enfants de la patrie)'를 이번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제가로 선정할 것을 프랑스축구협회 회장 노엘 르 그라에트(Noël Le Graët)에 요구하고 나섰다. 그들은 “유수파의 랩과는 반대로 카오틱의 랩은 프랑스를 ‘하나의 같은 국기’ 아래 모일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카오틱 747은 우파 성향의 랩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28일 누벨옵제바터는 그가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을 나타내는 손동작을 하는 등 극우 성향을 보인다고 보도했으나 카오틱 747은 “단순히 ‘괜찮다’는 의미”라며 이와 관련해 부인한 바 있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당사자 중 한 명인 프랑스축구협회는 발을 빼는 모양새다. 노엘 르 그라에트 프랑스 축구협회 회장은 지난 5월 26일 르파리지앵을 통해 “유수파의 랩은 주제가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했으면 안됐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유수파는 6월 3일 TMC의 방송 프로그램 ‘쿼티디앙(Quotidien)’에 나와 “관련 논쟁과 관련해 거리를 두고 흥미롭게 봤다”면서도 “국민연합이 논쟁을 부추기는 게 짜증난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 이두형 글로벌리포터 mcdjrp@gmail.com
■ 필자 소개
파리 소르본대학(파리 4) 사회학 석사 과정
전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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