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식포럼>'다수 뜻' 앞세운 소수 의견 억압은 민주주의란 이름의 '폭정'

허민 기자 2021. 3. 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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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전승훈 기자

■ ‘文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탐구 - ③ 다수결과 다수의 폭정

檢권력수사 무력화, 선거법·공수처법 개정안 일방처리…

“난 옳고 넌 틀리다”는 巨與… 다수결이‘다수의 폭정’으로

다수 위해 소수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은 전체주의 발상

결정과정에서 ‘비판의 허용’ 이뤄질 때에야 정당성 확보

다수의 뜻에 의한 결정, 즉 다수결은 최고의 민주주의 작동 원리일까. 김영평·최병선 교수 등 7명의 학자가 펴낸 책 ‘민주주의는 만능인가’(가갸날, 2019)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라 해서 다수 국민 또는 전체 인민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의 무제한적이고 무분별한 행사를 허용하면 개인(소수)의 자유가 침해되고(앞의 책, 31쪽)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술팀은 “다수의 의사가 소수의 자유를 간단히 짓밟고 넘어갈 수 있도록 허용해주거나, 소수 의사를 간단히 묵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앞의 책, 118쪽) 분명히 말하고 있다. 문화일보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이 협업으로 진행하는 ‘문재인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탐구’는 세 번째 주제로 문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다수의 결정’이 가져올 ‘다수의 폭정’이란 문제점을 짚어본다.

◇‘민주주의 = 다수결’인가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다수결 방식을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종 수단이라고 보는 것일 뿐이다. 다수결 원칙이 모든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 중에는 다수결을 악용하거나 오용한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의회의 다수파를 구성하는 집권세력이 ‘다수결 제도’를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제1원칙으로 내세워 통치자의 뜻을 국민의 뜻으로 밀어붙일 때 틀림없이 ‘다수의 폭정’이 일어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일부의 자유를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이때 국가권력에 채워졌던 ‘제한적 정부’의 족쇄는 풀려나가고 만다(앞의 책, 118쪽).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다. 통치자와 집권세력이 다수의 힘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킨 역사적 사례는 넘쳐난다. 독일 나치가 정권을 잡아 운영하는 방법이 그랬고, 공산 국가들의 권력 유지 방법이 이와 같았다. 민주주의 국가 중에도 다수의 폭정을 부른 사례가 적지 않다. ‘폭민정’으로 빠진 고대 그리스 민주정이 그랬고, 근대에 들어서는 짐바브웨 같은 나라가 좋은 사례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포퓰리즘으로 흘러서 국가 발전을 퇴보시킨 사례로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을 들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헌법을 제정할 당시부터 ‘다수의 폭정’을 경계했다(앞의 책, 176쪽). 건국의 아버지들은 ‘연방주의자 논고(federalist papers)’에서 강한 정부 수립을 주장하면서도 그로 인해 배제당할 수 있는 소수자의 보호가 핵심 과제라고 생각했다. 다수의 폭정으로부터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견제와 균형에 따른 권력분립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 정권과 다수의 폭정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다수의 폭정’이다(앞의 책, 129쪽). 다수결의 원리에 따르는 게 민주주의라는 단순한 도식에 의존할 때, 그리고 다수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오해를 견지할 때 다수의 폭정은 실체를 드러낸다. 문 정권은 ‘촛불 정부’를 자임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다수의 폭정을 내장한 정권이었다. 문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민주적 통제’를 앞세워 검찰의 권력수사를 무력화하고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거여(巨與)의 힘으로 통과시켰다. 여당은 일련의 반(反)민주 법안을 다수의 완력으로 밀어붙이면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중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봉쇄했다.

다수의 결정이 다수의 폭정이 되는 것을 우려했던 근대 이후 최초의 학자는 알렉시 드 토크빌이었다. 그는 이미 180여 년 전에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다수의 폭정’이 얼마나 미국 민주주의에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토크빌이 염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가 한번 결정하면 이 때문에 피해받은 이들(개인 혹은 소수)이 제기하는 불평에 귀 기울일 잠깐의 시간을 줄 만큼의 장애물도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다수의 ‘결정’은 다수의 ‘폭정’이 된다.

이 대목에서 토크빌은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한다. 그 스스로 ‘모든 권력’이 다수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력의 폭주를 제어할 장치의 부재를 걱정하는 게 모순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와 동등한 인간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줄 수 없다. 그 수가 얼마나 크다 하더라도.” 그는 다수에 의한 지배는 다수가 선동을 당하거나 격렬한 감정에 휘둘려 우매하고 난폭한 군중이 돼버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제한돼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최근 언론 기고에서 “다수결 원칙이 다수의 폭정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개인의 자유와 소수의 존중 등 자유주의 원리로 견제해야 하지만, 전체주의자들은 양자를 적대적 관계로 간주한다”며 문 정권의 국정 운영을 비판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토크빌에 대한 ‘오마주’이다.

◇다수결은 만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리를 수용한 것은 그것이 무조건 옳고 좋아서가 아니다. 다른 더 나은 방법이 없어서일 뿐이다. 다수결은 서로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문제의 성격이 다수결에 적합해야 한다. 복잡성이 높고 매우 전문적인 내용은 곤란하다(앞의 책, 171쪽).

둘째, 다수결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다수결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앞의 책, 172쪽).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이든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비판의 허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판을 통해서만 이성적 판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과 절차를 거칠 때 다수결이 정당성을 얻는다(앞의 책, 174쪽).

셋째, 결정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여건 속에서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반복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묵살하지 않고 경청해야 한다. 비판이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는 한, 다수결에 의존하는 선택은 잘못된 판단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앞의 책, 175쪽).

◇예정된 비극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민주주의를 20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다수의 결정이 다수의 폭정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질그릇 같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저력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척결 대상이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 보고 상호 공존하며 타협하려는 관용의 문화가 눈에 띈다(앞의 책, 230쪽).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나르시시즘’(유창선 평론가),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파벌적 오만’(마이클 린치 교수)에 빠지는 순간 다수의 결정은 다수의 폭정이 된다. 행정·의회·사법 3권의 다수를 차지하고 도덕성을 독점한 뒤 반대파를 적폐로 내모는 ‘문 정부의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폭정’이 싹트는 것은 예정된 비극일지 모른다.

허민 전임기자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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