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소수의견 존중이 대원칙..'타협·양보·합의' 의회주의 복원해야

박준희 기자 2021. 6. 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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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하안송 기자

의회, 국민의 주권위임서 기초

‘토론의 場’이자 합의기관 규정

충분한 토론·공론화 과정 필수

“다수파 단독으로 법안 처리땐

소수 야당의 권한 침해하는 것”

다수결 원리 밝힌 헌재 판례도

특정 黨 의사관철 오용 막으려

국회법 등서 각종 정족수 규정

“의회정치, 정당 힘자랑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가 법률 제·개정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안을 결정하도록 하는 정치방식을 의회주의라고 한다. 이는 의회를 통해 통치 행위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군주나 현대의 대통령 등 집행권(행정권)을 가진 권력자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의원 및 국회 관련 규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의회주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임을 밝히고 있다. 또 의회는 일반적으로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회주의를 통해 국정에 국민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동시에 소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의회주의의 발현과 원리 = 의회주의는 대의제(대의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 국민이 주권의 원천이지만, 모든 국민이 직접 국정을 담당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의회를 두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들로 의회가 구성되고, 그 의회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 원리다.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 의회의 자율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또 이 같은 의회주의는 △국민 주권 △국민의 대표를 통한 토론과 합의에 따른 국정 운영 △다수결 원칙과 소수 의견 존중 등의 정신으로 압축된다.

의회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보면, 국정에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주체가 일부 지배계급에서 국민 전체로 확대돼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대나 중세까지 국정에 관한 회의체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는 귀족·성직자를 비롯해 일부 시민계급 정도였다. 13세기 비상설 의회였던 ‘모범의회(Model Parliament)’를 거쳐 14세기 양원제의 모습을 갖춘 영국 의회가 1689년 권리장전을 통해 근대적 의회주의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을 거치며 각국이 근대적 헌법 체제를 속속 갖추면서, 국민 주권에 기초한 근대적 의회제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권력분립에 따라 ‘입법부’로 변모 = 근대 권력분립 및 입헌주의 원리를 기반으로 태동한 의회는 현대에 접어들어 입법부로 거듭났다.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 권력분립 이론을 정립한 몽테스키외(1689~1755)는 국가의 권력을 입법·행정·사법 등 3가지로 구분하고, 이를 서로 다른 주체나 기관에 맡겼을 때 각각의 권력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법을 제정하는 입법권은 선거나 추첨에 의해 구성하는 의회에 부여하고,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은 군주에게 주는 방식이다. 행정권, 즉 법의 집행은 즉시 이뤄져야 한다는 성격을 감안해 회의체인 의회보다 소수의 행정권자에게 맡기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 결과다. 또 재판 같은 법 해석 권한은 사법부라는 독립적 기관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현행 헌법도 이 같은 권력분립 원칙을 명확히 하고 각 부(府)에 서로 다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국민의 주권 위임이라는 정당성에 기초한 의회주의는 현대 각국의 의회가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또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는 자유 위임의 원리에 따라 의원들이 이성적이고 공개적이며 개방적으로 토론하는 장이자 합의·의결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규정된다.

◇의결의 최종수단에 불과한 다수결 = 대한민국 헌법은 49조에서 국회의 의결과 관련,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동수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며 다수결 원리를 채택하고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다수결은 구성원 중 다수가 찬성한 의사를 논의에 참여한 전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집단의사로 간주하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논쟁이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토론과 표결로 갈등을 정리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다수결로 결론을 내기 이전에 소수 의견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 수렴과 상호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수결은 최종적인 의사결정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다수결 원리에 대한 헌법 정신으로 해석된다.

헌법재판소 판례에서도 이 같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08년 당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수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고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하면서 회의장 출입문을 봉쇄했다.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민주당 의원들은 권한을 침해받았다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다. 이에 헌재는 청구인들의 심의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면서 다수결 원리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헌재는 “다수결의 원리는 소수파가 토론에 참가해 다수파의 견해를 비판하고 반대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합리적 토론을 거쳐 다수의 의사로 결정한다는 데 그 정당성과 근거가 있다”며 “소수파에 출석 기회조차 주지 않고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다수파만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은 다수결 원리에 의한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결정 과정에서 소수 의견 존중과 보호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게 헌법이 채택한 다수결 원리의 정신이다. 의회주의의 정치적 가치는 다양한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를 토론을 통해 조정·통합하는 데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로 독일의 의회 구성 방식은 대연정을 하더라도 소수정당 의석이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소수의 비율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결은 소수를 보호하지 않으면 비민주적인 것이고, 결국 다수결 방식의 방점은 ‘소수 보호’에 있다”고 강조했다.

소수 의견 존중은 또 정권교체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의회는 시대정신 변화에 따라 다수 의견(다수당)과 소수 의견(소수당)의 상호교체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으로 전환돼 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면, 의회주의는 고정된 일당독재와 다를 바 없다.

다수결 원리가 특정 정당의 의사 관철 수단으로 오용되는 것을 막도록 하는 내부적 장치도 마련돼 있다. 헌법과 국회법은 다수결에 신중성을 기하기 위해 각종 정족수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률안 재의,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 건의, 각종 탄핵소추 의결·발의, 헌법개정안 발의·의결 등에 관해서는 헌법에 특별의결정족수를 규정함으로써 일부 정당의 독단적 의안 처리를 방지하고 있다.

◇민의 못 담는 국회 … 행방불명된 협치 = 한국의 입법부인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라고 불린다. 그 자체로 의회주의의 가치를 실현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이 다수당일 때는 날치기 법안 처리와 같은 ‘독주’가, 반대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는 끝없는 정쟁과 의사일정 마비가 되풀이되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 정부가, 특히 김대중·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정권 교체로 들어선 모든 정부가 협치(協治)를 내세웠지만 국회에서 실행에 옮겨진 일은 드물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잦은 국회 파행으로 민생이 내팽개쳐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우리 헌법은 국민투표에 대한 근거를 둠으로써 의회주의를 보완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을 인정하고(72조),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130조 2항) 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요건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어, 대부분 논쟁적 사안은 정치권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국가 기능의 확대와 입법 대상의 증가로 의원의 입법 활동에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성이 요구되는데, 의원들의 소속 정당 예속화가 심해지면서 국회의 입법 기능과 입법부로서의 지위·역할이 점차 약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심지어 행정부가 제안한 법안을 통과만 시켜준다는 비하의 의미인 ‘통법부(通法府)’란 비판이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회 정치란 각 정당의 힘 자랑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타협하고 양보하고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핵심”이라며 “정당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정당들은 여야 모두 그런 정치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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