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전 세계를 누비다

디스커버리 등장

1980년대, SUV 명가였던 랜드로버 판매에 급제동이 걸린다. 토요타 랜드크루저와 미쓰비시 파제로, 이스즈 트루퍼 등 값싸고 성능 좋은 경쟁 사륜구동 차가 줄줄이 등장해서다. 랜드로버는 속수무책이었다. 랜드로버 시리즈는 너무 거칠었고, 레인지로버는 너무 호화스러웠다. 그 사이를 일본차가 파고들고 있었다.


랜드로버는 부랴부랴 1987년 브랜드 세 번째 신차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제이’를 가동한다. 목표는 레인지로버와 랜드로버 시리즈의 간격 메울 한층 대중적인 SUV. 밑바탕은 레인지로버였다. 레인지로버의 사다리꼴 프레임 골격과 구동계를 바탕으로, 값비싼 장비들을 덜어내 만들었다. 또한, 랜드로버 최초로 CAD 프로그램을 활용해 개발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였다.



1989년 프로젝트 제이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로 결실을 맺는다. 디스커버리는 기존 랜드로버 시리즈처럼 불편하거나 투박하지 않았다. 레인지로버처럼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곧 디스커버리는 간판 모델로 떠오른다. 랜드로버 시리즈와 레인지로버를 모두 제치고 브랜드 판매 1위를 차지한다.

이후 디스커버리는 랜드로버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맡는다. 1990년 ‘카멜트로피’ 경주차로 선정되어 1997년까지 랜드로버의 오프로드 성능을 알렸다. 카멜트로피 이후 이어진 오지 원정경기 ‘G4 챌린지’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우람한 덩치는 가족용 차로도 제격. 이후 1998년 2세대, 2004년 3세대, 2010년 4세대로 진화를 거듭하며 2012년 100만 대 누적 판매 기록을 세운다.


디스커버리의 등장으로 랜드로버는 자동차 제조사로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1948년부터 이어온 랜드로버 시리즈와 1970년 등장한 레인지로버 두 모델만 팔던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와 더불어 브랜드와 제품 이름을 확실히 구분했다. 1990년 랜드로버 시리즈에 ‘디펜더’ 이름표를 붙이면서 호화 오프로더 레인지로버, 일상과 험로를 아우르는 디스커버리, 본격 오프로더 디펜더로 라인업을 말끔히 정리했다.

 

전 세계 오지를 누비다


랜드로버 강점은 단연 험로 주파 성능. 그래서 전 세계 오지를 빠짐없이 누빈다. ‘당신이 가는 길은 이미 랜드로버가 지나갔던 길입니다’라고 광고할 정도다. 랜드로버 시리즈와 디펜더는 군용차나 UN 및 여러 국제기구의 관용차로 세계 각지에 퍼져나갔다. 아프리카 탐험과 사막 횡단 등 오지 탐험용 자동차로도 사랑받았다.

그 탐험의 역사에 카멜트로피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 시작한 자동차 원정경기다. 랜드로버는 2회째인 1981년부터 스폰서로 참여했다. 카멜트로피는 세계 오지를 자동차는 물론 카약과 산악자전거로 주파하는 독특한 대회. 2명이 팀을 이뤄 험난한 여정을 안전하게 통과해야만 한다.


해마다 아마존,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남미, 몽골 등 새로운 오지를 찾아 경기를 열었다. 전 세계 모든 대륙 험지를 노란색 랜드로버가 주파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1981~1989년엔 랜드로버 시리즈와 레인지로버로, 1990~1997년엔 디스커버리, 1998년엔 콤팩트 SUV 프리랜더가 대회 차종으로 활약했다.

레이놀즈사에서 주최하던 카멜트로피는 담배 회사의 대대적인 광고를 제한하는 법규에 따라 2000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랜드로버는 카멜트로피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자체적으로 2003년 G4 챌린지를 열어 탐험을 이어갔다. 그러나 재정적 문제에 부딪혀 2008년 12월 G4 챌린지 폐지를 발표한다. 1980년부터 이어온 국제적인 오프로드 원정 경기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격동의 세월

나날이 명성을 쌓아가던 제품과 달리 랜드로버는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로버그룹은 1967년 레일랜드자동차에 흡수된 이후 여러 자동차 회사에 팔려 다니다가 1994년 마침내 BMW 품으로 들어간다. 랜드로버는 BMW의 안정적인 재정적과 기술 지원 아래 1997년 브랜드 최초 유니보디 SUV 프리랜더와 1998년 2세대 디스커버리를 출시할 수 있었다. 3세대 레인지로버 역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BMW 또한 랜드로버 노하우를 바탕으로, 브랜드 최초의 SUV X5를 성공적으로 출시한다.

그러나 2000년 BMW는 이어지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미니를 제외한 로버그룹을 매각한다. 이때 로버는 피닉스 컨소시엄, 랜드로버는 포드로 매각했다. 한창 덩치를 불리던 포드는 당시 볼보, 랜드로버, 재규어, 머큐리, 링컨, 애스턴마틴 등 6가지 프리미엄 브랜드를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으로 묶어 운영했다. 포드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 간 색깔이 흐려지는 역효과도 있었다.


포드 아래에서 랜드로버는 걸출한 신차를 연이어 출시했다. 2001년 BMW 아래에서 개발을 거의 끝마쳤던 3세대 레인지로버를 선보였고, 2004년 현대적인 랜드로버의 시작점인 디스커버리 3를 출시했다. 디스커버리 3는 세계 최초로 버튼만으로 구동계와 하체를 지형에 맞춰 조율하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을 얹고, 사다리꼴 프레임 구조와 유니보디의 강점을 섞은 통합 바디 프레임 차체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포드 아래에서 역사적인 만남도 있었다. 바로 재규어다. 첫 만남은 아니었다. 랜드로버가 1960년대 레일랜드자동차 품에 있을 무렵, 재규어도 같은 그룹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포드 아래에서 두 번째로 만나면서 서로 부품과 엔진을 공유하는 등 협력했다. 오늘날 한 회사로 엮인 ‘재규어 랜드로버’의 시작점이다.

 

‘스마트’하게 변화하다

각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쟁력을 살리지 못했던 포드. 2007년 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랜드로버를 재규어와 묶어 인도 타타그룹에 매각한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 영국의 자랑스러운 자동차 제조사 둘이 넘어간 셈이다. 참고로 타타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큰 굴지의 대기업이다.

타타그룹 품 안에서 랜드로버와 재규어는 ‘재규어 랜드로버’라는 하나의 회사로 뭉쳤다. 당초 인도에 넘어가며 브랜드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기우였다. 타타그룹은 재규어 랜드로버의 독립성을 보장한 채 탄탄한 재정 지원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랜드로버는 색깔을 바꿔간다. 시작은 2008년 공개한 콘셉트카 LRX. 랜드로버 디자인 특징을 고스란히 지키면서도 역동적인 스타일을 완성해 브랜드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2011년 랜드로버는 그 스타일 그대로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출시한다. 디자인뿐만 아니다. 2012년 등장한 4세대 레인지로버는 한없이 무거웠던 이전 세대와 달리 알루미늄 복합 소재를 활용해 무려 400㎏이나 감량했다. 육중하고 우직했던 랜드로버는 점차 말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바뀌어 갔다.

랜드로버 디펜더가 가장 대표적이다. 1983년 등장한 디펜더는 1948년 첫 등장한 랜드로버 시리즈 1의 명맥을 잇는 랜드로버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 디펜더도 변화의 바람을 비껴갈 순 없었다. 안전 및 배출가스 규제를 못 이겨 2015년을 끝으로 생산을 멈춘 후 2019년 첨단 신차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굵직한 프레임 골격도, 좌우 두 바퀴를 하나로 잇는 특특한 리지드 액슬도 없지만 에어서스펜션과 첨단 장비로 이전보다 더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험지를 주파한다.

이제 랜드로버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영국 정부가 2035년을 끝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한 상황. 랜드로버는 연료전지 기술을 돌파구로 삼았다. 영국 정부의 국가적인 지원 아래 연료전지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제우스’를 출범했다. 랜드로버는 2030년 콤팩트 SUV 크기의 수소 연료 전지차를 출시해 브랜드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계획이다.

  

글/로드테스트 편집부

사진/랜드로버

 

*참고문헌

<탱크·장갑차·군용차 백과사전>|휴먼앤북스|로버트 잭슨

<역사 속에 빛나는 세계 4WD 명차>|자동차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