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은 대탈출의 신이다.


‘누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을 가진 추리 소설의 핵심은 ‘트릭’에 있다. 범인은 어떻게든 자신이 범행과 관련이 없음을, 혹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장치를 트릭이라 부른다. 대체로 범인이 탐정(독자)에게 내미는 수수께끼이자 타인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현대로 들어서면서 작가가 독자를 상대로 ‘미스리딩(mis leading)'을 이끌어내는 장치를 ‘트릭’이라 부르기도 한다. 


추리 소설에서 작가는 어떤 트릭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물할까? 미스터리 전문 매거진 《미스테리아》에 소개된 다양한 종류의 트릭들을 살펴보자. 


① 물리 트릭

범행을 위해 도구나 장치를 이용한다면 물리 트릭이라 부를 수 있다. 본격 미스터리 초기에는 밀실을 만든다든지 흉기를 알 수 없게 조작하는 등 불가능한 범죄를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도구나 장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고전적으로는 이러한 물리 트릭에 ‘얼음’이 많이 쓰였는데, 아래로 걸어 잠그는 빗장에 얼음 조각을 받쳐 얼음이 녹으면서 자동으로 밀실이 되게 만든다든지, 얼음이나 딱딱하게 뭉친 눈을 흉기로 사용하여 흔적을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트릭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작위적인 방법들까지 동원되며 현실성이 떨어졌고 또 기술의 발달 때문에 아예 무의미해진 트릭이 속출하면서, 차츰 범행의 주된 방식이라기보다는 다른 트릭의 보조적 역할로 쓰이는 쪽으로 바뀌었다. (중략) 

② 심리 트릭

사람의 심리적 사각을 이용한 트릭을 물리 트릭과 비교하여 심리 트릭이라고 칭한다. 심리 트릭 또한 물리 트릭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구체적인 방법은 아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사건의 진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수법을 통칭하는 용어다. 밀실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다수의 목격자가 이를 확인했는데, 사실 범인은 밀실 안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밀실에 들어온 순간 그 안에 섞여 들어 다수의 목격자 중 한 명인 척하는 속임수는 많이 알려져 있다. 심리 트릭은 보통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속임수를 뜻하긴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등장인물뿐 아니라 독자까지 미스리딩의 대상으로 삼는 서술 트릭이 주요 흐름으로 떠올랐다.

③ 서술 트릭

서술 트릭은 다른 트릭들과 다르게, 범행을 위한 범인의 속임수가 아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를 포함한 등장인물)의 심리적 사각을 파고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서술 트릭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문이나 대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말투로 인적 사항(이름이나 말투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자였다든지,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같은 이름을 쓰는 다른 사람이었다든지,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국인이었다든지)을 오인하게 만들거나, 서술하는 시간을 교묘하게 바꾸거나, 일인칭 시점 혹은 삼인칭 시점에서 작중작구성으로 시점을 변화시켜 화자를 오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략) 

어떤 작품이 서술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때로는 작품의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스포일러에 가장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종류라고도 할 수 있다. ‘서술’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토리를 ‘글’로 전달한다는 전제와 함께 독자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전적으로 이용하는 트릭이기에,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에 많은 부분 기대는 트릭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④ 밀실 트릭

본격 미스터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밀실 트릭은,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났으며 범인이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트릭을 말한다. 이른바 불가능 범죄의 한 종류이다. 범인이 공간 밖으로 나온 다음 공간 내부의 자물쇠를 잠가 밀실을 만드는 방법, 출입구가 실은 열려 있지만 안에서 잠겨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 공간 내부의 피해자가 사망하도록 밖에서 유도하는 방법, 살아있는 피해자를 죽어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나중에 살해하는 방법, 살인으로 위장한 자살, 밖에서 살해하고 밀실 안에서 살해된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 우발적인 사건들이 모여 살인처럼 보이게 된 것 등이 있다. 밀실로 보이지만 사실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따로 있었다는 (반칙이라고 종종 비난받는) 진상도 트릭으로 사용되곤 한다. 한정적인 환경에서 수수께끼 자체에 몰두하게 만들 수 있기에 본격 미스터리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쓰이는 트릭이 바로 밀실 트릭이다. (중략)



출처: 미스테리아 34호 I 글: 임지호 · 지혜림
미스테리아 34호의 특집은 본격 미스터리에 대한 총정리입니다. 일본 미스터리들을 살피다보면 종종 ‘본격 미스터리 걸작’이라는 문구를 접하게 되는데요, 이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정리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원문의 자세한 내용은 미스테리아 34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