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세계선수권 3연패에 빛나는 청주출신 '택견 달인' 이동준[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주말만 되면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과가 일상이 되어버린 필자는 70년대 후반 전북체고에서 레슬러로 활약하면서 양정모배, 문교부 장관배, 전국체전을 휩쓸며 레슬링계 평정 자유형 헤비급에서 3관왕을 차지한 후 한국체대에 진학한 임동술 선배의 부름을 받고 지난 주말 강남 논현동 모처로 향했다.

그곳에는 현역시절 1984년 LA 올림픽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로 셀로나, 96년 아틀란타 올림픽까지 올림픽 4회 연속 레슬링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태우(군산동고-동국대)와 자유형 헤비급에서 난형난제의 맞수이자 현재 케이아이건설 임동술(60년, 익산) 전무와 사업 파트너인 최규언 대표, 그리고 81, 83, 85년 3회 연속 세계태권도 선수권을 탈취한 방송인 이동준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1960년 전북 익산 태생의 임동술 은 의협심 강한 유도 태권도 단증을 보유한 만능 스포츠맨으로 필자와는 간담상조(肝膽相照) 하며 지내는 몇 안 되는 스포츠맨중 하나다.
두 살 터울의 후배 임동술 과 30년 지기로 호형호제 하는 이동준 은 세계 태권도 대회 4회 연속 위업을 달성하고 88년 서울 올림픽 시범종목인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획득, 기네스북에 격투기 부분에서 최다우승 기록으로 등재된 정국현(한국체대)과 쌍벽을 이루는 태권도계의 상징적인 레전드다. 방송인 이동준 은 1958년 10월13일 충북 청주시 청원군 강의면 오송리 태생으로 그가 태어난 1958년을 필자는 근대화의 물결이 울려 퍼진 원년으로 생각하는 뜻 깊은 해다. 왜냐하면 1958년 정부수립 후 최초의 APT인 성북구 종암APT가 지어졌고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한 APT라는 상징성 있는 해 이기 때문이다.

태권도 챔프 이동준이 태어난 청주는 필자가 20년전 청주시 남일면 쌍수리에 위치한 공군사관학교에 2년간 시간강사로 근무할 때 인연을 맺은 도시로 당시를 회상해보면 청주라는 도시는 대한민국 스포츠사 에서 한획 을 그은 슈퍼스타들이 유난히 많이 탄생한 고장 이란 걸 느꼈던 도시다.
청주시는 이번 주 스포츠 산책 주인공인 태권도계의 레전드 이동준을 비롯하여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복싱사상 최초로 동메달(플라이급)을 획득한 한수안 선생(성균 관대)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복싱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홍기호(청주사대), 유도 60년사 에서 최초로 세계선수권(71년 네덜란드)을 재패한 라이트급의 박종학(용인대), 국내 최초로 유도 93, 95, 97년 세계선수권 3연패와 96년 아틀란타 올림픽 86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한국인 최초 유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기영(경기대), 2002 한일 월드컵 거미손 골키퍼 이운재(청주상고-경희대), 최정민, 이회택, 차범근으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계승한 최순호(청주상고 ㅡ광운대)를 배출한 도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청주는 88서울 올림픽에 여고생으로 출전 개인전 단체전 2관왕을 석권한 후 89년부터 세계선수권 2년연속 2관왕에 6개종목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이견이 없는 양궁계의 최강자로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금과 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 3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6개의 메달을 걷어 올렸고 이중 금메달만 무려 4개나 획득한 양궁 신궁 김수녕(청주여고-고려대)의 실질적인 고향이고 88서울올림픽에서 세계최강 발트너를 3:2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 김완과 세트를 주고받는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획득한 탁구 남자단식 은메달 김기택(청주고), 수영에서 90년 북경,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조오련, 최윤희에 이어 3번째로 2연패를 달성한 배영황제 지상준등 이런 명망 높은 각종목별 슈퍼스타가 12명씩 탄생한 도시가 바로 청주다.
각설하고 한시대를 풍미한 이동준이 활약하며 금자탑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국기이자 발원지인 태권도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인만의 태권도가 아니다. 전세계 140개국에 보급된 세계인의 스포츠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태권도는 각국에 퍼진 3천만 명 의 수련인구 중에 태권도2단의 유단자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시절 그에게 태권도를 지도한 스승이 바로 한국인 이행웅 사범이다.
클린턴은 이행웅 옹에게 무술분야의 대원로를 칭하는 Grand master (대사부)라 부를 정도로 사제관계를 형성했고,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도 실력면에선 클린턴보다 더 인정을 받는 인물이다. 또한 스페인 국적의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국왕보다 더 높은 명예 10단으로 전 세계에서 김운용 회장과 단 2명뿐 이다. 1976년 6월26일 일본 무도관에서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일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맞대결을 앞두고 이준구 태권도사범을 초빙 이노키를 때려잡는 특타(特打)를 알리에게 전수하면서 태권도 보급에 일조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대부터 태권도를 수학한 이동준은 1978년 3월 청주기계공고 재학중 출전한 987명이 출전한 태권도 신인대회에서 고기부(3단이상) 웰터급으로 출전 성인선수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태권도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며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예선과 준결승에서 정확한 컨택 으로 연속 KO승을 거두며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라고 협회임원들이 입을 모았던 이동준은 충북 청주시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에서 태어나 강외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 1977년 시카코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2차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한후 그해 제 58회 전국체전에서 충북대표로 출전 고등부 웰터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고교생 답지 않게 게임운영이 노련하고 다양한 공격과 스피드를 무기로 초 고교급 선수란 호평을 받는다.
이때 이동준의 절친인 복싱의 전남대표로 출전한 황충재(영산포 상고)도 웰터급 준결승전 에서 난적 서울대표 김재훈(서울체고)과 치열한 타격전 끝에 판정으로 잡고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했다. 이동준과 황충재가 태권도와 복싱에 나란히 웰터급으로 출전 은메달과 금메달을 목에 걸으며 첫 인연의 서곡이 울린 것이다.

80년 11월 그해 태권도 전국대회에서 3위이상 입상한 2백37명이 선수가 출전한 태권도 전국선수권 대회에서 미들급에서 우승 국가대표에 발탁된 당시 청주대 3학년에 재학중인 이동준은 81년 7월 미국의 산타클라라에서 개최된 제1회 월드게임 국가대표에 발탁 우승을 차지하며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우수선수들의 지속적인 훈련을 위해 병역의무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함에 따라 이동준은 병역면제 혜택을 입게 되었고 체육훈장 기린장 을 수상하였다. 이어진 1983년 덴마크에서 벌어진 제6회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역시 우승하며 태극훈장 백마장 을 받은 이동준은 1985년 11월 제7회 세계 태권도대회 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그를 기다린다.
배드민턴 의 박주봉(한국체대), 복싱의 문성길(목포대) 등13명과 함께 경기력 향상 연금혜택을 받는 수혜자로 뽑힌 것이다. 이제 이동준의 태권도에 입문 국위를 선양하면서 군면제 혜택과 함께 연금수혜자로 선정되면서 그의 앞길에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기대하며 국가에 보은할 수 있는 길이 탄탄대로 황금빛 물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1986년 2월26일 아시안게임 선발전이 열린다. 이동준은 이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8체급에서 1, 2진 16명이 벌인 아시안게임 선발전 미들급에서 일방적인 독주를 거듭한 이동준(당시 제천시청)의 연승행진에 브레이커가 걸린 날이다.
상대는 이동준의 연승행진에 번번 히 재물이 되었던 한수아래 이계행 (조선대) 이었다. 84년 85년 대표 선발전 때마다 항상 이동준에 이어 2위만 차지하여 대표 1진이 못됐던 함평 학다리고 출신의 이계홍이 천하에 이동준을 잡은 것이다. 이동준은 이계홍과의 경기에서 주심으로부터 경고(-0.5점)를 받은 것이 결정타가 되어 패인이 된 것이다. 당시 경기를 관전했던 수많은 태권도 인들은 이동준의 경고에 의문을 표했고 설혹 경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동준의 무난한 승리로 입을 모았다. 심판들의 인맥과 편견에 휩쓸려 내리는 불공정한 판정에 이동준은 희생양이 되어 결국 태권도판을 떠나는 이별의 전주곡이 된다.
태권도계의 지존인 이동준이 태권도계를 떠나자 무주공산에 무혈입성 한 이계홍은 무풍지대를 달린다. 86년10월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요르단의 아마드 알리를 꺽고 미들급 우승에 이어 87년 9월 제8회 세계선수권대회 미들급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그해 연금혜택의 수혜자로 선정된다.
글을 쓰면서 필자는 왠지 쓴웃음이 나오는데 왜 일까? 태권도를 접은 이동준은 그해 10월 영화배우로 데뷔. 영화 '불이라 불리는 여인'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89년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에 출연. 수려한 용모와 남성적인 액션으로 기존 연기자들을 압도하며 89년 제27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 남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 받은 후 1990년 KBS 에서 방영된 '야망의 세월'에서 열연 배우로 자리매김 한다.

탄력을 받은 그는 92년 적색지대에서 여성위주의 멜로드라마가 판을 치는 방송가에서 이동준은 폭력조직의 주먹세계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전세계 태권도 챔피언의 화려한 무술솜씨를 곁들인 특유의 강한 이미지와 액션으로 남성미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태권도 판을 떠난 이동준이 8년만에 태권도 경기장을 찾았다. 94년 12월10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KBS배 태권도 대회에서 동양의 신비와 한국인의 기백이 물들어 있는 새천년 올림픽 종목에 채택된 태권도에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 내외분이 장충체육관을 방문하였을 때 연예인 태권도 유단자 김혜수와 태권도 공인7단 이동준이 대통령에게 도복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 위해 참석을 한 것이다. 이동준이 전달한 도복 상의를 김영삼 대통령은 현장에서 도복을 직접 입고 손을 흔들어 화답을 했다.
이동준은 이후 대하드라마 '먼동' 주말드라마 '남자는 외로워'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열연을 펼쳐 2011년 12월 제19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운동선수출신으로 연예계로 방향을 전환 성공한 케이스로 주목을 받는다. 운동선수출신으로 배우로 데뷔, 스포츠맨의 품격을 높이면서 성공한 케이스로 손꼽히는 방송인 이동준의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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