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규칙, 지정차로

보행 중, 오른쪽으로 통행해야 마주 오는 행인들과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제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규칙입니다. 도로 주행 중에도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죠. 느린 차는 오른쪽으로, 추월하는 빠른 차는 왼쪽으로(좌측통행 국가는 예외). 만국공통으로 운전자들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국내 도로 사정상 정확하게 지키기 힘들기도, 정확한 기준을 몰라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정부에서 현실에 맞춘 새로운 지정차로제에 대한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습니다. 함께 자세히 알아볼까요?
지정차로제 개선 - 일반 도로에서 바뀌는 부분은?
일명 '느린 차'의 3차로 진입

그 동안 '느린 차'로 분류되었던 차들이 '하위 차선에서만 주행'에서, '하위 두 번째 차선까지 허용'으로 바뀐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실제로 시내에서 가장 하위 차선이란, 불법 주정차들이 줄을 잇고, 잘 달릴만하면 버스나 택시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정차를 하는, 말 그대로 서바이벌 같은 차선이었죠.
추월 시에는 일시적으로 왼쪽 차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추월을 위한 일시적 이용이라 주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가장 하위 차선은 아무리 '느린 차'라도, '주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차선이었기 때문에 이번 개선은 해당 차량 운전자들에겐 정말 환영할 만한 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느린 차'는 주로 대형 화물차나 대형 승합차, 특수자동차 등 커다란 차종인데, 이들이 주행과 추월을 위해 잦은 차선 변경을 한다면 그 사이사이를 이용해야 하는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에게도 위협이 될 것이고, 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지정차로제 개선 - 고속도로에서 바뀌는 점
정체 시에는 1차로 통행도 허용

일반 승용차 운전자가 체감할 변화는 고속도로에서의 1차로 추월에 대한 규정일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의 정체를 막기 위한 규칙인 '1차로 추월차선 지정'은 이미 많은 국가에서 규칙이 아닌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존에 고속도로에서의 1차로에 대한 규정은 분명히 있었지만 오랫동안 문서 속의 법규로만 남아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 기존 제도에서는 고속도로의 1차선은 무조건 앞지르기 차로로 제한되어 있었어요.
독일의 아우토반과 같은 방식을 사용한 것인데요, 하지만 국토가 작고 고속도로가 자주 막히는 우리나라 특성상, 그대로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번의 개정에서는 1차선은 추월차선으로 계속 이용하되, 최고속도로 달릴 수 없는 정체 상황에서는 1차로로도 주행이 가능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개정에 앞서, 정부에서도 1차선의 추월 전용 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지난 설 연휴에는, 암행차를 투입하여 1차로에서 주행하는 차량의 운전자들을 단속 후 계도하기도 했으며, 운전면허의 학과시험에서도 지정차로에 관련된 문항을 크게 늘린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차로를 추월차선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앞지르기 차량을 위해 비워두는 운전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지정차로제, 과연 현실적인가?
이륜차의 하위차선 사용, 안전한가?

하지만 지정차로제 자체가 아주 낡은 제도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원동기장치자전거와 이륜차에 대한 것인데요. 기존의 지정차로제에서 이륜차는 항상 도로의 최하위 차선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륜차를 우마차(소와 말이 끄는 마차)와 같은 성능으로 취급했기 때문인데, 현대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의 이륜차(250cc를 초과하는)는 자동차를 능가할 정도로 빠른 속도와 기동력을 갖게 되었지 않나요.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이륜차가 최상위 차선을 이용하게끔 권장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 법규에만큼은 여전히 최하위 차선만 허용되어 이륜차 운행 자체에 불편함을 주고, 버스와 화물차 등 대형차와 함께 운행할 수 밖에 없어 사고를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륜차가 법규대로 좌회전을 하기 위해서는 최하위 차선으로 달리다가 교차로 직전에 1차선으로 갑작스럽게 차선 변경을 할 수밖에 없어, 이륜차 운전자들에게 난폭운전을 요구하고 도로 위 다른 운전자에게 위협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개정 후에는 이륜차가 주행할 수 있는 차선이 한 차로 늘어나, 편도 4차로 시 3차로까지, 편도 3차로 시 2차로까지 이용이 가능해져 상대적으로 이륜차의 편의를 봐 준 것 같지만 아직도 대형차들과 함께 운전해야 하는 이륜차 운전자에게는 공포스러운 악법으로 남아있다는 평입니다.
차량 속도가 아닌 차종으로 분류, 정답일까?

이 분류는 일반 차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에도 적용되는데, 상위 차선을 함께 사용할 승용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성능을 가진 다마스가 이런 차들과 공통 차선에서 달리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차선을 이용함에 있어서 차종보다는 속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법은 기술보다 느리게 움직인다고 하죠. 때문에 현 실정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법규로 인한 불편함도 적지 않은데요. 교통안전을 위해 현실적인 제도와 법규가 제정되는 것도 중요하고, 더불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준수하려는 운전자의 의지 역시도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두 안전운전하세요!
* 이미지 출처: ccOphoto, KBS1뉴스, JTBC뉴스, 한국GM 공식홈페이지
ⓒ 첫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