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 꿈꾸며 무역학과 진학했던 문과 출신 여성의 반전

사람이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 높이 ‘11m’. 비행기 동체 꼭대기가 딱 11미터다. 비행기 위에서 다부진 손으로 스크류를 조이는 여성이 있다. 항공정비사 이보현(30)씨다.


여성 직원 비율이 90%에 달해 항공사의 꽃으로 불리는 승무원과 달리 항공정비사는 남성의 직업으로 알려졌다. 국내 항공정비사 중 여성 정비사는 10% 미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적항공사 아시아나에는 정비사가 1500명 있다. 그 중 현장에서 근무하는 여자 정비사는 33명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스튜어디스를 꿈꿨다는 이보현씨가 항공정비사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보현 항공정비사를 만났다.

출처: 아시아나 제공
이보현 항공정비사가 스크류를 조이고 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아시아나 항공 중정비팀 전기전자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5년차 항공정비사다. 주간 근무를 맡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제2격납고에서 일한다.


-항공정비사는 어떤 일을 하나.

항공기를 보수하고 점검한다. 수 십 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하기 위해서는 정기 정비가 필수다. 중정비팀은 항공기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면서 안전을 점검한다. 항공기 한 대 당 적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달까지 걸린다. 정비팀마다 업무가 다르다. 라인 정비팀의 경우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한 뒤 다음 비행 전까지의 정비 업무를 담당한다. 하루에 4~5대의 비행기를 점검한다.


-왜 항공정비사를 꿈꾸게 됐나.

부모님 고향이 제주도다.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을 보러 갈 때마다 비행기를 탔다. 각 잡힌 유니폼을 입고 능숙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스튜어디스가 멋있어 보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막연하게 스튜어디스를 꿈꿨다. 대학 전공을 고를 때도 일반 대학 중에서는 ‘무역학과’가 항공사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막상 스튜디어스를 준비하려니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과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고객 응대가 기본인 스튜어디스는 영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았다. 또 기업에서 이과 채용을 늘리면서 문과생 취업이 어려웠다. 무역학과를 졸업한 나는 이른바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아버지 지인이 내게 ‘항공사 직원 중에는 기내에서 일하는 승무원도 있지만, 항공기를 운항하는 조종사나, 기체를 점검하는 정비사도 있다’고 말해줬다. 승객과 대면하는 승무원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는 항공정비직이 나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항공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일이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항공정비사가 되겠다고 하니 주변 반응이 어땠나.

‘전기전자, 기계공학 전공도 아니고 무역학과 졸업한 네가 무슨 항공정비사냐’,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인데 여자가 어떻게 하냐’는 등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문과 출신인데 어떻게 항공정비사가 될 수 있었나.

일반적으로 항공정비사가 되려면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항공정비사 자격증은 응시 자격이 까다롭다. △4년 이상 정비 실무경력 보유 △항공 정비 관련 대학을 이수 및 실무경력 보유 △외국 항공정비사 자격을 보유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전문교육기관에서 정비교육 이수. 이 중 1개 이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문과 대학을 갓 졸업한 내겐 선택지가 하나 뿐이었다.


일반학원을 제외하고 국내 항공사 중 국토부가 인정한 전문교육기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곳이다. 어렸을 때 자주 탔던 아시아나항공 항공정비사 기술훈련원에 지원했다. 학비는 무료였다. 오히려 소정의 실습비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서 배우지 않았던 물리, 역학부터 항공기 기체, 장비, 전기 등에 대해 배웠다. 또 현장 작업자로부터 항공기 판넬(Pannel)을 분리하는 방법, 항공기 와이어를 점검하는 방법 등 실무를 익혔다.


기술교육 2년 과정을 수료하고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아시아나 항공에 입사 시험을 치렀다. 기술훈련원에서 배운 용어와 지식을 활용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지금까지 항공기 정비는 몇 개나 했나.

중정비 팀은 한 달 평균 2~3대의 항공기를 정비한다. 5년 동안 100대 이상 점검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 8시. 출근하자마자 모든 공구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공구 점검 후 전체 업무 브리핑을 진행한다. 각 파트별 선임이 하루 동안 정비해야 할 사항을 알려준다. 이어 소그룹 브리핑 시간을 갖는다. 정비 업무는 혼자 일을 수행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점검 결과를 이중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그룹은 2~4명으로 구성된다. 전체 브리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8시 20분부터는 제2격납고에서 항공기 정비 작업을 시작한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후 5시까지 업무가 계속된다.


오후 5시. 하루 일과는 공구 개수와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항공기에서 작은 나사 하나라도 빠지면 대형 항공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구를 철저하게 확인한다. 한 번은 작은 소켓 하나가 없어진 적이 있었다. 팀원 30명이 2시간 반 동안 소켓을 찾아 헤맸다. 쓰레기통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은색 소켓을 찾았다. 7시 30분이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항공 정비 파트 성비가 어떻게 되나.

전기전자파트의 경우 다른 파트에 비해 여성 항공정비사 비율이 높은 편이다. 전체 30명 중 4명이 여성 직원이다.


-여자라서 힘든 점은.

여자라서 힘든 점은 없다.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더 유리하다. 체구가 작아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남녀 모두 무거운 장비를 이용할 때 가장 힘들어 한다. 항공기 속도·고도 측정 장치가 잘 작동하는지 점검할 때 쓰는 ‘에어 데이터(Air data)’는 35kg을 훌쩍 넘는다. 서너 명이 힘을 합쳐야 장비를 들 수 있다.

-위험하지는 않나.

항공기 꼭대기의 각종 안테나를 장착할 때는 작업대를 밟고 올라 작업해야 한다. 스패너 같은 작은 공구라도 10~15m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안전 보호 장비를 착용이 의무다.


-돈은 얼마나 버나.

대형 항공사의 경우 업계 최고 수준의 초봉을 받는다. 여기에 추가 근무 또는 야간 근무를 할 경우 수당을 받는다. 또 항공정비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면 추가 수당을 받는다. 현장 근무 보상 개념으로 휴일근무 수당도 지급한다. (항공정비사 평균 초봉은 3500만원~4000만원선이다. 대형 항공정비사는 4000만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해서는.

청력이 좋아야 한다. 항공기 중심 뼈대이자 승객이 탑승하는 동체가 균일하게 이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공기 갑판을 두드려본다. 이 때 소리로 정상 작동 여부를 체크하고 결함 유무를 판별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정비 팀은 전 직원이 매년 청력 검사를 받고 있다.


또 영어를 잘해야 한다. 항공기를 해외 업체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정비 매뉴얼이 모두 영어다. 매뉴얼을 정확히 해석해야 정비 작업이 가능하다. 결함을 발견했을 때는 해당 내용을 영어로 기록하기 때문에 독해뿐만 아니라 쓰기 능력도 필수다.

-항공기를 정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을 갖고 정직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 자기가 맡은 작업에서 실수해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혹여 실수를 했을 때에는 잘못을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 작은 실수로 인해 몇 백 명의 승객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과 정직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최근 참여한 교육 봉사 활동에서 정비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아 놀랐다. 항공정비사가 되고 싶다며 준비해온 포트폴리오를 꺼내 보여준 여학생도 있었다. '문과생이라 힘들다', '여자라서 힘들다'는 말은 옛 말이다. 누구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항공정비사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글 jobsN 김나영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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