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서 다시 군부 쿠데타.. 아웅산 수치 구금

조회수 2021. 2. 1.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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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전했다.
수치 여사는 한때 미얀마를 통치해온 무자비한 군부를 상대로 시위하며 수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인권의 등대로 여겨졌다

미얀마 군부가 1일 오전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자이자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주요 인사를 구금했다.

수치 여사와 정부 고위 관료들의 구금 소식이 전해진 뒤 미얀마군 TV는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며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전했다.

권력 이양의 이유로는 선거 부정을 언급했다. 현재 수도 네피도와 최대 도시 양곤의 거리엔 군 병력이 투입됐다. 지금까지 대규모 시위나 군부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 국영 방송사 MRTV는 이날 오전 기술적 문제로 방송이 중단됐다고 발표했으며, 양곤 및 주요 도시에서는 데이터 연결 및 이동통신 서비스가 중단됐다. BBC와 CNN 등 해외 언론사의 방송도 끊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NLD는 구금 상태인 수치 여사의 발언을 전한 성명에서 "국민들은 이 사태를 용납하지 말고 군부의 쿠데타에 대응하고, 전폭적으로 반대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최근 선거 결과를 번복하거나 미얀마의 민주적 정권 이양을 저해할 그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수치 여사를 포함한 모든 정부 인사들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을 석방하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버마인들의 민주주의, 자유, 평화와 발전에 대한 염원과 함께한다"며 "군부가 즉각 이러한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군부의 '선거 부정' 주장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얀마 총선 당시 군부가 부정 의혹을 제기한 이후 발생했다.

NLD는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총선에서 전체 선출 의석의 약 83%를 차지하며 승리했다. '문민정부 2기'의 시작이었다. 버마로 흔히 알려진 미얀마는 2011년까지 군부의 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패배 이후 선거가 부정하게 치러졌다며, 대통령과 선거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대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군부는 이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하지만 선거위원회는 부정 선거 혐의를 기각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군부 연계 정당을 누르고 승리한 NLD는 이날 처음 의회를 소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 당국은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이날 열릴 예정인 의회 소집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군부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전했다

BBC 동남아시아 특파원 조너선 헤드는 이번 사태가 완전한 쿠데타로 보이며, 군부가 지난달 10여 년 전 초안한 헌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헤드는 군부가 헌법상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수치 여사와 같은 정치 지도자를 구금하는 일은 도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이며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묘 뉜 NLD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통화에서 윈 민 미얀마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이날 새벽 군에 의해 구금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인도 구금될 예정이라면서 "국민이 성급하게 대응하지 않길 바라며, 법에 따라 행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금된 고위 인사들의 가족들은 군부가 장관들도 데려갔다고 말했다.

아웅산 수치는 누구?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이다.

아웅산은 미얀마가 1948년 영국 식민 통치에서 독립하기 직전에 암살 당했다.

당시 수치는 두 살이었다.

수치 여사는 한때 미얀마를 통치해온 무자비한 군부를 상대로 시위하며 수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는 등 인권의 등대로 여겨졌다.

그는 가택 연금 생활을 이어가던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힘 없는 자의 힘을 보여준 뛰어난 예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11월엔 25년 만에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군부를 상대로 그가 이끄는 NLD당이 압승했다.

비록 미얀마 헌법이 외국인 자녀가 있는 수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금지했지만, 올해 75세의 수치는 이후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다만 수치는 국가 고문이 된 이후 무슬림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대우로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2017년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라킨 주 경찰 초소 공격에서 촉발된 미얀마군의 무자비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방글라데시로 떠난 바 있다.

국제 사회는 이 과정에서 수치가 미얀마 군부의 강간·살인·학살 가능성을 막기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처음에는 일각에서 그가 복잡한 역사를 가진 다민족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실용적인 정책을 펼친 것뿐이라고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2019년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청문회에 직접 참여해 군부에 행동을 변호하며, 남아있는 명성조차 흩어지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다만 수치 여사는 로힝야족을 적대시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불교 신자가 대부분인 미얀마 국민에게 여전히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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