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에 지배당한 인생, '자유의지'대로 살고 있나요?

한번 자문해보자. 오늘 하루 내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순간이 얼마나 됐는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마존의 알렉사로 온 집안의 가전제품 전원을 켜고, 구글 캘린더에서 일정을 확인하며,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이동 동선을 짜고, 포털 사이트가 추천하는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영상을 보다 잠드는 현실.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 기계의 도움 없이 내 자유의지대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동한 순간은 과연 있었던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소비 욕망 대신 비물질적 삶에 주목한 ‘물질 없는 세계’, 격변하는 시대의 교양을 탐구한 ‘앞으로의 교양’으로 잘 알려져 있는 편집자 출신 작가 스가쓰케 마사노부가 던지는 세 번째 화두다. 스스로 ‘AI 문외한’이라고 밝힌 저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러시아의 스콜코보, 중국의 선전 등 AI 개발의 메카를 찾아 다니며 가장 중요하지만, 놓치고 있었던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선다.

저자가 만난 전문가들은 크게 세가지 부류로 나뉜다.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AI가 등장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거라 믿는 AI 유토피언, AI가 인간을 위협하고 멸망에 몰아넣을 거라 경고하는 AI 디스토피언, 세 번째는 AI 능력이 인간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AI 회의론자들.
낙관과 비관, 양극단을 달리는 미래 전망 속에서 저자는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일은 당장은 없을 것이라 결론 내린다.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기억 용량이 방대해도, 인간의 자율적 사고, 호기심, 감정, 상상력은 혁명적인 기술의 진화가 있지 않고서야 AI 프로그래밍에 탑재할 수 없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인간은 이미 AI에 많은 것을 빼앗기고, 지배당하며 인간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 가장 위험한 신호는 인간 스스로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AI가 정교하게 구축한 알고리즘의 추천 기능은 우리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AI의 방대한 추천 정보에 ‘나는 따른다, 고로 존재한다’는 상태가 된 것. 저자는 인간과 기계의 일체화가 인간의 동물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필터버블(웹상에서 가치 지향이 유사한 정보만 보이는 경향) 현상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연성’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AI 네트워크 사회에선 우연한 발견마저도 인위적으로 설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연성이 제거된 삶은 어떠할까. “빅데이터는 과거를 성문화한다. 빅데이터에서 미래는 결코 태어나지 않는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캐시 오닐은 자동화된 삶, 무의식적 생활에 익숙해진 인간은 결코 새로운 것을 낳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실수하기에,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길들여질수록 생의 실감을 잃은 채 정체된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동물과 기계에서 벗어나’ 책 제목은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권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물도, AI를 무조건 신봉하고 거기에 의존하는 기계도 되지 말고 인간의 길을 찾아보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핵심은 자유의지다. “나는 무모하게도 그 어느 쪽과도 거리를 두는 자유의지를 믿어보려 한다. 자유의지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동물도 기계도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당장 실천 할 수 있는 건 디지털 단식이다. 시애틀의 앨런 뇌과학연구소 크리스토프 코흐 소장은 상시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중독을 “정신의 정크푸드”에 빗대며 과식과 과음을 하지 않듯 인터넷 사용 역시 절제심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의 AI유토피언들도 한 달에 3일동안은 철저하게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고 인간성 회복을 노린다고 한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인간다워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자”고 제안한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단순 반복 노동에서 해방되고, 경제적 정체성보다는 문화적 정체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 시대, 인간에게 주어진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인간이 더 인간다워질 때, AI와의 공존도 가능해질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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