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다짐, 넌 무얼 했느냐

한겨레 입력 2021. 5. 18. 13:26 수정 2021. 5. 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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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바깥길]조문하고 위로하러 친구들이 찾아갔다. 거기서 배가 침몰한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만신창이 고철 덩어리 같은 배를 이리저리 기워서 바다로 내보냈다. 선원들이 걱정하고 항의해도, 그건 그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에 불과했다. 배는 예정된 운명을 맞으러 바다로 나갔다. 울며 붉어진 친구들의 눈은 불타올랐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바다가 저지른 '횡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이상헌의 바깥길]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온갖 젊은 것들이 피어나는 오월 이른 날에 사진 한장을 본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이라고 쓰인 플래카드 뒤로 젊은 친구들이 나란히 섰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보겠다는 친구는 ‘함께 여행 가자’는 다른 친구들과의 살뜰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싸늘하게 죽어 돌아왔다. 남은 친구들은 길거리에 서서 “죽음의 사업장 동방”을 하얀 만장처럼 펼쳐 올렸다. 대학교 3학년, 23살.

그때가 생각났다. 우리가 그만큼의 나이를 먹었을 때, 88년 올림픽의 찬가가 넘실거릴 때, 친구가 죽었다. 홀어머니가 꾸리는 어려운 살림이라 대학 진학은 접고 일찌감치 배 타고 돈을 벌겠다는, 무심한 듯 살가운 친구였다. 그렇게 시작한 첫 항해길에, 필리핀 어디선가, 배는 침몰하고 그는 실종되었다. 바다에서 실종은 사망의 유예된 이름일 뿐이다. 살았으리라는 희망을 말하면서 누구도 그 희망을 믿지 않는 시간이 이어져갔다.

조문하고 위로하러 친구들이 찾아갔다. 거기서 배가 침몰한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만신창이 고철 덩어리 같은 배를 이리저리 기워서 바다로 내보냈다. 선원들이 걱정하고 항의해도, 그건 그저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에 불과했다. 배는 예정된 운명을 맞으러 바다로 나갔다. 울며 붉어진 친구들의 눈은 불타올랐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바다가 저지른 ‘횡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산업재해’라는 말을 알지 못했거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우리는 몸을 보챘다. 사무실 서류를 뒤지고, 전문가를 만나고, 광목을 끊어다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제야 지역 언론도 움직였고, 검찰 수사도 시작되었다.

지리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손을 내밀어볼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시간만큼 지쳐갔다. 해양 관련 정부부처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 또한 난망했다. 몇달의 공방 끝에 유족들은 정부 관청으로 행진했고, 예정에도 없던 일까지 했다. 모두 관청 안으로 진입했다. 그 끝은 마치 사납게 다가오던 파도가 백사장에서 포말로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어떤 이는 잡혀가고, 어떤 이는 수배받는 처지가 되었다. 친구 몇몇은 잡혔고, 나는 도망갔다. 선박회사는 서둘러 유족과 합의를 종용했다. 검찰 수사도 유야무야로 끝났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마무리되었다. 유족이 회사와 보상금에 합의한 뒤, 친구들은 바닷가에서 불콰해진 얼굴로, 이미 바다로 나가버린 친구를 다시 바다로 떠나보냈다. 눈물범벅인 약속과 다짐이 어찌 없었겠는가. 우리 다시는 이렇게 친구를 잃지는 말자.

그리고,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더 알고 겪으면서 그 다짐을 벼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세월의 풍화 작용은 집요하고 섬세했다. 기억마저 조금씩 윤색해가면서 나는 매일 안녕하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내 발뒤꿈치의 갈라진 상처를 세상의 전부인 양 들여다보고 아파한다. 그러다가 저렇게 까만 옷을 상복처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거리에 나선 ‘죽은 친구’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소멸시키는 친숙함에 화들짝 놀란다.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차마 뒤돌아보질 못한다. 우리는 무얼 했나.

먼저 내게 물었다. 나는 무얼 했나. 잘못 인쇄된 책처럼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글을 쓰긴 했다. 반복이 잦다 보니, 많이 썼다. 일하다가 죽은 사람들. 세상에 알려진 죽음, 또 내 주위의 그늘에 숨겨진 죽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두운 막장 같은 죽음. 먹고살려면 일해야 한다고 주야장천 외치려면, 최소한 일하다가 죽는 것은 막아야지 덜 뻔뻔한 사회가 아니냐는 뻔한 말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인가. 예전에는 정치적 힘이 없음을 탓했는데, 그런 힘이 좀 생겼다는 지난 몇년에도 산업재해 숫자는 꼼짝하질 않았다. 작년에 산재사망자는 외려 늘었다. 나의 글은 몇몇 읽는 이에게 ‘따뜻한 사람’이라는 지독한 착각만 남겼고, 나는 잠시 자위하다가 별것 없이 아웅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거리에 나선 적도, 멱살을 잡은 적도, 이도 저도 못해서 돌멩이 하나 거칠게 차본 적도 없다.

그래도 좋아지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옆에서 목소리를 높여주며 도와주는 사람이나 단체도 많이 늘었고, 정부도 예전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이다. 언론도 민감해졌다. 산업재해 숫자도 ‘추세적으로’ 줄긴 했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했느냐고 물으면 답은 궁색하다. 거대한 댐에 겨우 조그만 구멍 하나 내고 담수량이 점차 줄어든다고 환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줄지만, 더디고도 더디다. 게다가 이런 ‘개선’의 착시 현상도 만만치 않다. 법과 제도가 바뀌는 것은 좋으나, 그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되고 그 이면의 그늘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는 계약 형태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고 죽을 확률을 결정하는 ‘엇갈린 운명’을 정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만큼이라도 바꾸었으니 인정해달라고 말하지 말자. 이제는 유력 정치인들이 조문하고 유족 얘기를 듣고 위로하지 않느냐고 하지 말자. 보탠 것 없는 처지이지만 내가 민망하다. 그런 것만으로 일터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다들 안다.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기업과 정부가 아무리 애써도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고, 더러는 안전사고가 대부분 개인 부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기업이 책임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 잘못으로 생긴 사고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유독 한국에서 이런 개인책임론의 목소리가 높다. 생산의 의무는 강조하면서 비용과 위험은 노동계약의 바깥에 두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개별적 산업안전 위험을 체계적으로 줄이는 것이 기업 안전책임의 핵심 사항인데, 사고가 날 때마다 손가락은 서둘러 노동자 개인을 향한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 친구의 죽음을 두고 선박회사 임원 한명은 “젊어서 모르겠지만, 이게 다 제 팔자”라고 했다. 30년이 지나 더 이상 젊지도 않은데, 나는 아직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팔자’의 위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내 친구들은 추석이 되면 선원탑을 찾는다. 바다에 묻은 친구를 찾을 곳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멀리 살고 있다는 핑계로 거길 가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시간이 날까 두렵다. 소주 한잔 올리고 인사 올릴 엄두가 안 난다. 그동안 넌 무얼 했느냐. 내가 죽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일터로 향해가는데, 너는 그 젊은이들이 친구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무얼 했느냐. 답은 겉돌고 바람만 파도를 거세게 올려붙일 것만 같아서, 나는 맴돌고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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