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내려온다? 호랑이가 왜 내려오는 걸까요?" 안나 예이츠 [대화한잔]
지난해 9월, 서울대 국악과 '최연소 교수' 임용
석사과정 중 우연히 접한 '판소리' 인생 바꿔
"판소리 매력 알리는 사람 되고 싶어"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만난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국악과 교수 [사진=우원희 PD]](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3/13/ned/20210313183349369qfsf.jpg)
[헤럴드경제]"판'소리'라고 하잖아요. 새가 '뻐꾹 뻐꾹', 바람이 '뽀르르르'. 자막을 보지 않아도 소리꾼의 소리와 몸짓으로 다 이해할 수 있었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서울대학교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 안나 예이츠(Anna Yates-Lu·32)가 생애 첫 판소리 공연을 봤을 때의 소회다. 판소리가 좋아서 갔던 공연은 아니었다. 전통음악 수업을 듣던 중 티켓 값이 저렴해서 공연장을 찾게 됐단다. 하지만 강렬했던 '첫인상'은 그의 인생 '판'을 뒤집어 놨다. 자신의 연구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치학을 전공했던 그는 판소리에 빠진 후 인류음악학과 판소리로 자신의 연구분야를 바꿨다.
헤럴드경제는 최근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공공한옥에서 안나 예이츠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 9월 서울대 조교수로 임용된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 학기를 앞두고 인터뷰와 학사 일정 준비로 스케줄이 빡빡한 편이다. 하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판소리에 대해 알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오면 내가 진짜 학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껴요. 판소리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만난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국악과 교수 [사진=우원희 PD]](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3/13/ned/20210313183349756rmwb.jpg)
-전공까지 바꾸게 한 판소리의 매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영국에서 석사과정 중에 음악과 정치의 관련성을 연구하다가 학점이 조금 부족했어요. 그래서 아시아 전통음악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티켓 값이 싸다는 말에 우연히 한국문화원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됐죠. 〈적벽가〉 공연을 보는데 자막을 보지 않아도 무사가 활을 쏘는 모습, 배가 출격하는 모습 등 장면 장면이 바로 제 눈 앞에 그려지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서 호기심이 생겼고 이후로 모든 전공 과제들을 판소리에 대해 작성하게 되었죠. 마침 정치학은 나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하던 참이라 연구 분야를 갈아타게 되었습니다(웃음).
-판소리를 잘 모르는 대중들이 눈 여겨 볼만한 재미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특히 대중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부분은 '이야기'죠. 판소리 안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많아요. 예를 들어 요즘 새로 나온 이날치의 〈여보나리〉를 살펴보면, 이 곡은 〈수궁가〉 중 별주부가 토끼를 찾으러 뭍으로 나가게 되자 별주부의 마누라가 별주부를 걱정하는 장면인데요. '내가 뭍으로 나가거든 옆집 남자가 나랑 비슷하게 생겼으니 부디 헷갈리지 말아라!'라고 별주부가 마누라에게 이르는 그런 내용도 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범 내려온다〉의 배경 이야기도 궁금해지는데요. 노래에서 '범내려온다'라는 얘기가 반복되는데, 범은 대체 왜 자꾸 내려오는 건가요?
=별주부가 토끼를 찾으러 뭍으로 나왔잖아요. 그런데 물 속이 너무 추워서 그만 입이 얼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저 멀리 토끼가 보이니까 ‘토 선생!’이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그만 입이 얼어 버려서 ‘호 선생!’이라고 외치게 된 거죠. 그 소리를 듣고 주변에 있던 호랑이가 '나? 나랑 얘기하고 있니?' 하고 궁금해서 내려오는 그 장면이 바로 〈범 내려온다〉이지요.
![판소리 중인 안나 예이츠 [서울대 유튜브 갈무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3/13/ned/20210313183350796azem.jpg)
-연구 활동 중 민혜성 명창께 직접 판소리 지도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실까요?
='외국인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너도 잘 해야 한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기준이 똑같았던 거예요.
-나에게 배우는 만큼 너도 일정 수준은 해야 한다?
=네. 그런데 그런 말씀이 저는 좋더라고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어디를 가든 제가 외국인이니까 '얼씨구!'만 하면 '와 소리 잘한다!'라고 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있는데 저는 그게 사실 좀 싫었거든요.
조용수 선생님께 지도 받던 중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번은 저를 부르셔서 '이 부분에서는 이것에 좀 집중해봐라' 지적하셨어요. 지적하신 자체가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지적을 하신 거잖아요.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쁘더라고요.
지금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즐겁지만, 그때가 참 그리워요.
-2015년 유럽 판소리 대회에서 〈춘향가〉 중 〈이별가〉를 불러 1등하신 전력이 있으세요.
=대회에 참가한 것도 연구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대회라는 것을 한번 경험해봐야겠다는 개념으로 나간 것이고요. 사실 제가 우승을 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당시 한국에서 민혜성 선생님께 수업을 받던 중이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은 멀리 이국 땅에서 혼자 연습해서 참가한 분들이었거든요.
가끔 서울에서 판소리 공연에 가면 관객들이 추임새를 잘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파리의 관객들은 추임새를 '얼씨구!' 이렇게 제대로 하는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별가〉도 무척 마음 저린 곡입니다만, 역시 국악하면 '한의 정서'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한'이라는 감정에 쉽게 이입이 되던가요?
=제가 보기엔 이 일련의 코로나 시국이 지난 다음엔 한이 없는 사람이 없을걸요(웃음)?
![밴드 이날치. [매니지먼트 잔파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3/13/ned/20210313183352143cqpf.jpg)
-밴드 〈이날치〉의 폭발적인 인기가 교수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와 우리 국악인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저 뿐 아니라 국악인들이 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일단 너무 신나죠. 작년 Agust D(BTS 슈가)의 〈대취타〉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기존에 제가 연구하고 있던 것이 온라인 콘텐츠를 통한 국악 홍보이기도 했거든요. 딱 제 연구 주제였기 때문에 더 신이 났지요.
사실 당연히 음악이 좋기 때문에 인기를 끈 것인데, 모든 좋은 음악들이 이 정도의 인기를 끌진 못 했잖아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아직 명확한 이유는 찾지 못 했지만 일단 그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판소리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크게 계획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故 박송희 선생님에 대한 연구입니다. 판소리의 근대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에 항상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선생님의 인생을 되짚어보면서 판소리의 근대 역사도 함께 살펴보는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통 문화도 현대 사회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더욱 현대 국악인들의 영상 콘텐츠 활용이나 SNS 활용법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bbok@heraldcorp.com
기자·진행 신보경 / PD 신보경, 우원희, 이채연, 정아휘 / 디자인·CG 허연주, 변정하 / 제작책임 이정아 / 운영책임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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