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주 오가며 찜질방서 생활하던 그녀, 대박 터졌다?

박씨가 물고 온 희망 만채농장 처녀농군 염하나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만채농장은 귀농 5년 차 ‘초보 농부’ 염하나 씨와 부친 염기용(57) 씨가 운영하는 부녀 농장이다. 만채는 ‘만인의 채소’라는 말로, 몸에 좋은 채소를 키워 만인의 밥상에 올리겠다는 부녀의 포부가 담긴 이름이다. 2013년 아버지 염씨가 특용작물인 삼채를 재배하기 위해 여주에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네 딸 중 맏이인 하나 씨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함께 귀농했다.


“처음에는 농사가 아니라 농가에 삼채 모종을 파는 유통업을 했어요. 미얀마에서 모종을 수입해 포트에 담아서 팔았는데, 삼채가 몸에 좋다고 알려지며 블로그나 카페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저에게 온라인 판매를 부탁했죠. 11번가나 G마켓, 네이버 스토어팜 같은 온라인 스토어에서 삼채를 팔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어요.”


예로부터 박은 풍요로운 대보름의 상징이었다. 산 위로 휘영청 달이 떠오르면 초가지붕 위 둥근 박이 달빛을 받아 더욱 복스럽게 보였다. 흥부의 집에 제비가 물고 온 박씨처럼 여주에도 뜻밖의 희망을 안겨준 ‘박’이 열렸다.


삼채는 달고 맵고 씁쓸한 세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고 혈당과 체지방을 낮춰주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며 수요가 늘어 농가에서는 고소득 작물로 인기를 끌었다. 삼채의 가능성을 본 아버지 염씨는 서울에서 가까운 여주에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도 저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요. 농자재조차 몰라 3년을 고생했어요. 특용작물은 해외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알려진 재배법도 없었고요. 맨땅에 헤딩하듯이 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서울과 여주를 오가거나 농장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부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첫 농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삼채는 고산지대 식물이라 한여름 땡볕을 못 견뎌 뿌리가 녹아버렸다. 주위에서 넝쿨식물을 심어 볕을 가리라고 조언해줬다. 그때 심은 작물이 박, 수세미, 여주다.“특용작물은 대중매체에 소개되면 잠깐 반짝했다가 들어가요. 꾸준하게 먹지는 않죠. 몸에 좋다고 하면 잠깐 먹어보고 유행 지나면 잘 안 찾아요. 값이 내려갈 땐 인건비도 안 나올 정도죠. 4계절 내내 소득을 안정적으로 내기 위해 석잠풀(초석잠), 인디언감자(아피오스) 등 고소득 작물과 박, 수세미, 여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부녀는 처음 여주로 들어와 땅 661㎡(200평)를 빌려 농사를 지었고, 한 달 후에는 1983㎡(600평), 이듬해 봄에 6611㎡(2000평)로 늘렸고 다시 1만 3223㎡(4000평)를 더 빌렸다. 땅을 늘리면서 농사가 잘되는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주인이 갑자기 땅을 내놓으며 급하게 농장을 옮겨야 했다.“땅을 새롭게 빌린 뒤에도 택배를 계속 보내야 해서 정신없었어요. 한 번에 다 못 옮기고 1톤 트럭을 38번이나 옮겨 파이프 같은 자재를 실어 날랐죠. 처음으로 땅 없는 설움을 절실히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도 염하나 씨는 농사일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농사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여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아카데미 교육과 농촌체험관광 교육을 수료했다. 또 유기농업기능사와 종자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최근에는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농부들과의 네트워크를 쌓는 데도 힘쓰고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 

만채농장의 일 년은 바쁘다. 봄에는 각종 작물의 모종을 팔고, 여름에는 줄콩, 박, 수세미, 여주를 따다 판다. 가을에는 색동호박이나 약호박, 작두콩의 수확기다. 식용 박도 이때 따야 제맛이다. 겨울이 되면 초석잠과 아피오스, 삼채 등 특용작물의 뿌리가 자라 이를 캐다 판다. 바쁜 중에도 염하나 씨는 농한기 틈틈이 박을 따다 속을 긁어내고 팔팔 끓인 물에 삶고 말려 바가지를 만들거나 수세미 속을 말려 천연 수세미도 만든다.


작물 재배는 날씨나 주변 상황에 따라 작황 상태가 달라진다. 꾸준하게 돈벌이가 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염하나 씨가 아이디어를 낸 게 박공예다.“박은 1년생이에요. 아열대식물이어서 한여름에 미친 듯이 자라요. 꽃피고 박이 열리고 겨울에 단단해지죠. 처음에는 박을 재배할 목적이 아니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첫해 200개가 달렸어요. ‘박씨’라는 것만 알고 심어 키웠지, 어떻게 생긴 박이 나올지는 몰랐죠. 처음에 호리병 모양의 박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마냥 넋 놓고 있다가 먹는 시기를 놓쳤죠. 그때 주변 농가에서 박 속을 긁어내 삶으면 단단한 바가지가 된다고 알려줬어요.”


신세대 농군답게 인터넷으로 박 삶는 방법을 찾아낸 염하나 씨는 그때부터 바가지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누렇게 색이 오른 바가지를 보고 있자니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즐겼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그에게 바가지는 새로운 놀잇감이었다.


“바가지는 소재가 독특해요. 캔버스에 그림 그릴 때와는 다른 재미가 있죠. 처음에는 인두 작업을 시도했어요. 그러다 붓으로 색을 칠하거나 그림도 그려봤죠. 어느 날은 제대로 잘 여문 바가지가 아닌 여러 조각으로 금이 간 바가지가 나왔는데, 자연 그대로의 모양이 좋았어요. 휴대폰으로 불빛을 비춰보니 조명으로 써도 손색이 없었죠. 그때 아이디어를 얻어 박 조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박공예의 매력에 푹 빠진 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대학에서 전시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업종에서 2년을 일한 그가 만드는 작품은 전통 공예라기보다는 현대적인 인테리어 소품에 가깝다. 핼러윈 특집으로 만든 ‘호박 등(jack-o'-lantern)’이나, 크리스마스트리에 걸기 좋은 호리병 눈사람, 직접 배운 캘리그래피로 좋은 글귀를 적어 넣은 장식품 등 톡톡 튀는 젊은 감각이 묻어난다. 못난이 박도 그의 손에서는 하나같이 작품이 됐다.


서울 생활을 접고 올 때만 해도 시골에서의 농사만 생각했지 이런 길이 열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 농사일로 지친 젊은 농군에게 활력으로 작용했다. 염하나 씨는 틈이 날 때마다 청계천과 을지로를 다니면서 조명기구를 샀다. 박에 모양을 내는 데 쓸 공구도 직접 구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에게 항상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박공예는 남들 눈에 우아한 작업 같겠지만, 한겨울 농한기에 작업해야 해서 사실상 막노동이나 다름없다. 콧물 줄줄 흘리며 박 껍질을 숟가락으로 벗겨내고, 장작불을 지펴 끓는 물에 삶고, 또 드릴로 박에 구멍을 뚫는 일 모두가 노동이다. 그러나 그런 노동조차 그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즐거움이다. “박은 한줄기에서 자라도 모양이 다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죠.우리는 10종류 이상의 박을 심어요. 공예를 하려면 다양한 모양이 필요해서 종류별로 심었어요. 중국 사이트를 모두 뒤져 독특한 모양의 박 씨앗을 사들였어요. 박은 토양과 기후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이 나와요. 특히 벌이 꽃가루를 옮기는 과정에서 독특한 모양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이게 박의 매력입니다.” 

노력의 결과로 2015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주최하는 박과 채소 챔피언대회에서 호리병박으로 금상을 받았다. 무심코 심은 박씨가 안겨준 뜻밖의 성과다. 박을 따서 삶아 바가지를 만들고 그걸 조명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누군가가 ‘함바가지’로 쓴다고 사고 싶대요. 신부 집에 함 들어갈 때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바가지를 깨는 풍습이 있다고 해요. 또 짝 맞는 바가지에 볏짚을 넣어 가게 입구에 걸어 놓으면 장사가 잘 된다는 말도 있고요. 전통악기에도 박이 들어가요. 물을 뜨거나 씨앗을 담는 용기로도 박을 썼다고 해요.”


새롭게 알게 된 박의 다양한 쓰임에 농부도 신이 났다. 만채농장의 박은 크기별로 판매한다. 20cm 이하 작은 사이즈는 6000원대에, 40cm 이상 큰 사이즈는 2만 원 선에서 팔린다. “농사하면서 처음으로 박을 접해봤어요. 박을 잘 모르니까 무조건 반을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밑에 구멍만 뚫어서 박 모양을 이용하기 시작했죠. 또 좋은 소금을 넣으면 단단하게 여문다고 해서 삶을 때 꼭 천일염을 써요.”


만채농장에서는 관상용 박 말고도 식용 박도 키운다. 박과 채소는 조선시대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다. 박은 만두소에도 쓰이고, 국물을 낼 때도 넣는다. “연포탕에는 무가 아닌 박이 들어가야 시원하다”고 귀띔했다. 염하나 씨는 최근 박공예 체험을 준비하며 공방을 겸한 카페도 알아보고 있다. 이를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 놓을 만큼 부지런하다.


“저는 농사를 잘 몰라요. 여주에 내려온 것도 아버지를 돕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였어요. 처음에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그립고 농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곳이 조용하고 편안해요. 지금은 이 일이 좋아서 해요. 박농사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으니까요. 제대로 된 박공예 체험장을 꾸며 제가 만든 조명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jobsN 서경리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잡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