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극장] 그 화장품 쓰면 공주병 걸린 사람으로 보여?

한겨레 2021. 2. 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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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 안녕하세요, 공주님!" 2005년, 에뛰드하우스에 이런 인사가 처음 울려 퍼졌다.

1996년 김자옥 '공주 신드롬' 이후 2000년 후반까지 공주패션이나 분홍빛 색조화장은 줄곧 인기였다.

대중이 공주 마케팅을 꺼리기까지 그것을 추동한 배경에는 페미니즘 세대교체가 있었다. 이들은 공주패션과 꽃무늬, 분홍색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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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극장 :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span style=\"color: #18bc9b;\">[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span>
<span style=\"color: #b26369;\">제34화 아모레와 화장품 광고</span>
에뛰드 ‘플라워캔디’를 광고하는 송혜교. 송혜교는 2001~2006년 에뛰드 모델이었다. 티브이 광고에서는 “난 원래 공주였다” “어? 왕자님 오셨나?” 같은 대사도 했다. 2006년에는 고아라로 교체됐다. 2001년 3월 광고 이미지다.

“까꿍! 안녕하세요, 공주님!” 2005년, 에뛰드하우스에 이런 인사가 처음 울려 퍼졌다. 직원들은 분홍색 치마 차림에 반짝이는 왕관 머리띠를 썼다. ‘모든 여자는 공주다’라는 슬로건에 충실한 마케팅이었다. 공주 마케팅이 폐기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여성들은 더 이상 ‘공주’를 원치 않았다. 여성들은 ‘GIRLS Do Not Need A PRINCE'(걸스 두 낫 니드 어 프린스·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었고, 성별 고정관념이 강한 마케팅은 도태되었다. 화장품은 당대의 인식이 첨예하게 반영되는 산업이다.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아모레퍼시픽과 에뛰드를 중심으로 화장품 마케팅의 역사를 살펴봤다. 해설 강나연

“까꿍! 안녕하세요, 공주님!”
에뛰드의 선풍적 공주 마케팅이
창피함으로 변한 데엔 페미니즘이
명품백 갖고 싶으면 남자친구를?
2012년 유리 내세운 광고 자책골
1990년대 이영애 광고보다 후퇴

2013년 12월 서울 명동 에뛰드하우스 내부. 분홍색 벨벳 소파, 샹들리에, 레이스 커튼 등을 이용해 ‘공주풍’으로 꾸몄다. 왕관과 가면을 착용하며 ‘공주놀이’를 하는 ‘프린세스 존’도 있었다. 에뛰드에서 제공했다.

송혜교가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말한다. “오빠? 나 집인데, 화장을 다 지워서 못 나가.” 거짓말이다. 송혜교는 집이 아닌 차 안에 있고, 립스틱을 바르는 중이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등장한 다른 남성이 누구랑 통화했는지 묻는다. 송혜교는 또다시 천연덕스럽게 뻥친다. “응, 엄마야!” 뒤이어 깔리는 광고 카피. “네 입술, 비밀이 너무 많아!” 2003년, ‘혜교의 여우짓’이라는 콘셉트로 제작된 에뛰드 광고다.

여성을 메이크업하지 않으면 외출도 못 하는 존재로 그린 성차별적 시각, 바람피우고 거짓말을 해도 ‘예쁘기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고 ‘여우짓’일 뿐이니 기를 쓰고 아름다워지라는 여성혐오, ‘젊고 예쁜’ 여성을 이른바 ‘어장관리녀’로 납작하게 일반화한 성별 고정관념. 2021년에 나왔다면 소셜미디어 조리돌림을 피하지 못했을 이 광고는 18년 전만 해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6년 문화방송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에서 공주병 환자로 출연하고, 노래 ‘공주는 외로워’를 발표하며 ‘공주 신드롬’을 일으킨 고 김자옥씨. 공주패션을 비롯한 공주 콘셉트를 유행시켰다. ‘모든 여자는 공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에뛰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1997년 11월4일치 <한겨레> 지면.
엘지(LG)생활건강 브랜드 라끄베르 모델 김남주. 2001년 3월 광고 이미지로, 당시에는 이렇게 분홍색을 베이스로 한 메이크업이 공주패션과 함께 주기적으로 유행했다. <금발이 너무해> <프린세스 다이어리> 같은 공주영화도 인기였다.

에뛰드는 그때부터 잘나갔다. 전지현, 송혜교 등을 모델로 삼아 인지도를 높였고, 2005년 공주 마케팅을 도입한 뒤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4년 287억원, 2013년 3185억원. 매출만 9년 새 11배를 웃돌았다. 한국 사회가 당시 ‘공주 콘셉트’에 호의적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1996년 김자옥 ‘공주 신드롬’ 이후 2000년 후반까지 공주패션이나 분홍빛 색조화장은 줄곧 인기였다. <한겨레> <씨네21>에도 ‘우아한 공주패션 바람’ ‘공주영화 신드롬’ ‘분홍빛 입술 봄 누빈다’ 같은 기사가 꾸준히 실렸다.

화장품, 패션, 전자제품까지 분홍색이 인기라는 기사. 2006년 4월13일치 신문에 이정훈 기자가 썼다. 기사 본문에 삽입된 아모레퍼시픽(옛 태평양) 라네즈 모델 전지현 사진이 눈에 띈다. 분홍색 입술에 분홍색 팔찌를 했고, 배경도 분홍색이다.

에뛰드가 위기에 빠진 건 2014년부터다. 2014년 2분기 12억원 적자를 내며 2년 연속 매출이 감소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 한한령과는 무관했다. <한겨레> 2017년 11월 기사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매출이 급감한 건 중국 내 혐한 정서가 정점을 찍은 2017년 4월 이후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필 에뛰드가 휘청거릴 때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은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다. ‘이니스프리’ ‘설화수’ ‘라네즈’ 같은 브랜드가 흑자를 내는 동안 유독 에뛰드만 뒷걸음했다는 뜻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1~2013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체 매출액과 향후 전망. 2014년 10월3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타격을 받은 2017년 전까지 아모레퍼시픽은 최고 실적을 해마다 경신했다. 에뛰드만 2013년 최고 매출을 찍고, 2년 연속 역성장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대중이 공주 마케팅에 피로감을 느꼈다. 레이스 커튼과 분홍색 소파가 있는 매장부터 분홍 리본과 하트가 달린 화장품 케이스, ‘피치 못할 핑크’ ‘프린세스 주얼리 글로스’ 같은 제품명까지. 과거에 대중에게 소구한 모든 매력이 어느새 독이 되었다. <한국경제>에는 2016년 “소비자 사이에서는 ‘에뛰드 제품은 가지고 다니기 창피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공주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이유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이유라면 단순하지 않았다. 대중이 공주 마케팅을 꺼리기까지 그것을 추동한 배경에는 페미니즘 세대교체가 있었다. 에뛰드가 승승장구하던 시절만 해도 여성운동 주류는 리버럴 페미니즘이었다. 이들은 공주패션과 꽃무늬, 분홍색 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20세기 이후 수십년간 여성의 근대화를 이끌어온 모토 ‘걸스 윌 비 보이스’(Girls will be boys)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2004년 4월27일 <한겨레> 기사는 당시 패션 및 화장품 업계에 유행한 꽃무늬와 분홍색을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되찾은 여성성’. “‘청바지에 티셔츠, 무채색 바지정장’이라는 70~8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제복’이 세대가 바뀌면서 남성성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분방한 ‘사복’ 체제로 변하고 있다.”

한 여성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사진. 립스틱과 섀도, 마스카라 등 본인의 화장품을 망가뜨려 ‘탈코르셋’에 동참했음을 인증했다. 2018년 7월6일치 사진이다. ‘탈코르셋’ 하면 짧은 머리, 맨얼굴, 바지와 헐렁한 티셔츠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도 여러 담론과 분파가 있다.

역사는 정반합이라던가. 래디컬 페미니즘은 그렇게 급부상했다. 정말 공교롭게도 에뛰드 쇠락 전후로 말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지금껏 리버럴 페미니즘이 해결하지 못한 성차별을 타파하려면 성별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며 2015년부터는 ‘탈코르셋’ 담론을 주도한다. ‘탈코’는 ‘꾸밈노동’뿐 아니라 ‘과장된 여성성’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다. 동시대 유행과 정치운동이 레고블록처럼 맞아떨어진다거나 ‘탈코’에 동참한 여성이 압도적 다수인 건 아니나, 이런 흐름이 여성들의 인식 변화, 공주 마케팅이 도태된 배경과 어찌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에뛰드의 추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차원에서도 징후는 있었다. 광고를 집행하다 보면 슛도 넣고 똥볼도 차게 마련이지만, 2012년 소녀시대 유리를 모델로 내세운 마몽드 광고는 심각한 자책골을 넣어 최종결정권자의 성인지 감수성을 의심케 했다. 피부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답시고 “명품백이 갖고 싶을 땐 (투잡이나 저축 아닌) 남자친구를”이라는 카피를 쓴 이 광고는 여성을 비싼 명품백이나 사달라고 조르는 존재, 경제적 자립을 못 한 채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그려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1994년 2월28일치 <한겨레>의 태평양 아모레 마몽드 ‘산소 같은 여자’ 지면 광고. 이영애가 형사, 보디가드로 일하거나 운동, 사격 등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무척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었다. 이 광고를 시작으로 드봉에서 박주미는 전투기 조종사로, 쥬리아화장품에서는 이승연이 여성 대통령으로 나왔다.
‘나의 삶은 나의 것’ ‘결혼이 생의 목표일 수는 없다’ ‘스스로 선택으로 주체가 되는 여자’ ‘성취는 남자만의 것이 아니다’ 같은 카피로 소녀시대 유리를 모델로 기용한 2012년 마몽드보다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1991년 11월1일치 <한겨레> 마몽드 지면 광고.

이때 1990년대 마몽드 광고가 비교 대상이 된 점은 흥미롭다. 이영애가 출연한 ‘산소 같은 여자’ 시리즈는 ‘결혼이 생의 목표일 수는 없다’ ‘스스로 선택으로 주체가 되는 여자’ ‘나의 삶은 나의 것’ ‘성취는 남자만의 것이 아니다’ 같은 카피로 2012년 마몽드보다 오히려 진보적인 광고로 회자됐다.

왕자를 필요로 하는 공주는 여성이 아닌 남성의 판타지일 뿐이었을까. 2015년, 에뛰드가 대표이사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난 뒤에야 공주 콘셉트를 벗어던진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슬로건도, 매장도, 제품도 ‘공주풍’을 버리자 에뛰드의 실적은 크게 향상되었다. 2016년에는 ‘마블리’로 불리는 배우 마동석과 가모장 캐릭터로 유명한 김숙이 출연한 광고를 만들어 차별화에도 성공했다.

성공이란 참 묘하다. 물 들어온다고 노 젓다가 오히려 팔이 빠지니 말이다. 2017년, 에뛰드는 내친김에(?) 방송인 전현무를 모델로 썼다가 광고를 내리고 사과문을 게시하는 곤욕을 치렀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혐’ 발언을 한 전현무의 전력 탓이다. 2016년, 역시나 여혐발언 전력이 있는 개그맨 유상무가 미국 화장품 브랜드 ‘맥’과 모델 계약을 맺었다가 불매운동을 당한 일을 교훈으로 삼지 못한 것이다. 2017년 4월13일 <한겨레> 기사는 이때 일을 자세히 기록하며 현직 카피라이터의 말을 전한다. “인권 감수성은 광고 제작에서 고려해야 할 것 중 우선순위가 가장 낮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다. 설득력이 문제다. 마케팅의 본질은 소비자를 설득하고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가. 설득하려면 어떤 설득이어야 하는가. 누구를 대상으로 한 설득이어야 하는가. 18년 전 ‘혜교의 여우짓’에 환호하는 소비자인가, 아니면 전현무의 여혐 발언에 반발하는 소비자인가. 그것은 이제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 19화 해설자인 강나연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입니다. <엠비엔>(MBN) 사회부에 취재기자로 입사해 법조 및 중앙부처들을 출입했고, <한겨레> ESC팀에서 객원기자로 일하며 라이프·젠더 기사를 썼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다양한 젠더 이슈이며, 문학과 심리학을 좋아합니다. 맥주는 더 좋아합니다.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사진, 기사, 지면 이미지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관련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 사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시즌3인 25~36화는 주로 기업·기업인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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