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여성스럽고 분홍색을 띤 모든 것에 집착한다. 아이는 두 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진분홍색 꽃무늬 드레스에 끌렸다.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에게 나중에 축구를 해보는 건 어떨지 물었다. 아이는 "여자는 축구 경기를 하지 않아요"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나는 축구를 하는 여자아이도 더러 있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설득되지 않았다.
물론 내 딸은 소년 같다고 여겨지는 행동도 한다. 등산과 뛰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딸이 너무 단호하게 남녀 역할이 다르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해 놀랐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성 역할을 강조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내 아이의 반응은 전혀 놀랍지 않다.
아이들의 성별 고정관념이 처음엔 별것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관념이 아이들의 정체성 파악과 의사 결정 과정, 행동 양식에 영향을 끼치는 걸 고려하면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성적 고정관념은 우리 사회가 해로운 남성성과 연관된 가치를 자기도 모르게 갖게 하고 이를 공고히 한다. 해로운 남성성은 지배성, 경쟁심, 감정 표현의 억제 등 사회 통념상 남성적이라고 생각되는 가치 중 부정적인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성별 고정관념이 어떻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까?
몇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했다. 과학계는 오랫동안 남녀 간 지능 차이의 근거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수많은 연구에서 이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회는 아직도 완강히 성차별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가 영아들과 놀아주는 방식을 보자. 물론 부모와 돌보미들이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남녀 아이를 다르게 대한다.
이런 경향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산모들이 태아의 성별이 남자인 걸 알면 태동을 묘사하는 단어조차 틀리다. 남아의 움직임은 '활기차다' '힘세다'라고 표현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 성별을 모를 땐 표현상 차이가 없다.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된 이래 사람들이 예비 부모에게 묻는 제일 첫 질문은 아들인지 딸인지다. 그 이전에는 산모의 배 모양과 크기로 아이 성별을 유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방식은 유아 발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놀이로 삶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흥미를 알아간다.
블록 놀이로 뭔가를 짓는 것에 흥미를 갖고, 인형 놀이로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배운다. 다양한 놀이 경험은 분명히 중요하다.
미국 켄터키 대학의 크리스티나 브라운 심리학 교수는 "인구의 절반에게 하나의 기술만 가르치는 장난감 놀이 문화만 주입한다면 인구의 절반은 특정 기술과 흥미만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또한 작은 탐정처럼 끊임없는 주변 관찰로 자신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파악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신이 어떤 성 역할에 맞는지 파악한 순간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그 역할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두 살 때부터 여자아이들은 분홍색 물건을 가까이하지만, 남자아이들은 분홍색을 피한다. 내 두 살배기 딸은 옷이 약간만 남자다워 보여도 입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심지어 아이에게 일부러 너무 공주같은 옷을 입히려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취학 전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별로 의식한다는 건 놀랍지 않다. 특히 부모들은 장난감을 선택할 때도 남녀 성별을 구분하니 말이다.
호주 멜버른 대학의 코델리아 파인 심리학 교수는 "아이들이 어떤 성별에 속하는지 알게 되면 성별 특성에 더 반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아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장난감의 외형만 바꿔도 아이들의 생각은 바뀐다. 여아들은 남아들이 갖고 놀법한 장난감이라도 분홍색이면 관심을 가졌다. 만약 남자아이에게는 인형이나 미용 세트를 주지 않고 여자아이에게만 준다면 자연스레 여자아이들은 그런 쪽으로만 관심을 두게 된다. 남자아이들은 장난감이나 자동차로 대표되는 더 활동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물론 인형이나 유모차를 가지고 노는 남자아이도 있다. 부모들이 일부러 남자아이들에게 이 물건을 가지고 놀게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아들은 자신의 여동생처럼 장난감 아기를 안고 장난감 유모차를 미는 것을 좋아한다.
브라운 교수는 "남아라도 생후 1년 차엔 돌보는 걸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며 "하지만 어른들은 남자아이에겐 그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아주 일찍 가르치며 처벌한다"고 말했다.
만약 유아기부터 남자아이들이 여성스러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한다면 남자아이들은 크면서 필요한 기술을 못 배우게 될 수도 있다. 남자아이들이 또래 놀이를 통해서는 인형을 접할 기회가 없고 엄마가 육아의 대부분을 맡는 것을 보게 된다면 이 아이에겐 육아는 누구의 몫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런 고정관념은 "생물학적 본질주의(biological essentialism)"의 일환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모든 생물은 각기 본질을 갖고 있다고 보는 개념이다.
장난감뿐이 아니다. 부모가 묘사하는 아이들의 성향 또한 성별 고정관념을 따르기 쉽다.
부모들은 남자아이의 경우 떠들썩하고 거칠게 놀았다고 얘기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온화하고 온순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는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은 해당 대상이 어떨 것이란다고 보는 기대감에 기반한다.
부모들은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화난 얼굴은 남자아이의 것으로 기쁘고 슬픈 얼굴은 여자아이의 것으로 분류한다.
엄마들은 남자아이들의 신체적 특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더 크다. 남자아이에겐 여자아이보다 더 모험적인 목표를 설정하면서 말이다. 엄마들은 딸보다 아들이 더 잘 기어 다닌다고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기어다는 데는 남녀 간 신체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부모의 편견은 아이에게 전해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은 더 강화된다.
언어 또한 강력한 역할을 한다. 여자아이들은 말문을 일찍 트는 거로 알려졌지만 이게 아이가 잘해서라기보단 엄마들이 여아에게 말을 더 많이 걸어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엄마들은 또한 여아에겐 감정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 바꿔말하자면 우리는 모르게 여자아이는 더 수다스럽고 감정적이고 남자아이는 공격적이고 육체적이라고 믿도록 키운다는 것이다.
브라운 교수는 이런 고정관념이 지속하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앉아 있는 남자아이, 집 주위를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여자아이 모두 우리 눈엔 띄지 않습니다. 우리의 두뇌는 고정관념과 부합되지 않는 정보는 건너뛰는 경향이 있죠."
부모들은 또한 성 중립성을 위해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쓸법한 장난감과 옷을 사주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것 자체가 우리가 성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력을 준다.
남성은 항상 지배적이고 강력한 성으로 간주하여 왔는데, 이는 부모들이 노골적으로 그러진 않았더라도 남자아이가 조금이라도 여자 같은 걸 좋아하는 걸 싫어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파인교수는 "이런 것은 마치 성에 계층이 있다는 그런 인식이 보이는 사례"라면서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자다운 것'과 연결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부모들은 여자아이가 남자 옷을 입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아이가 여자 옷을 입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이는 여자인 내가 어릴 적 '선머슴' 말괄량이였던 게 왜 칭찬 거리였는지를 설명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기들은 주변 눈치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차이점을 발견한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부모나 또래다. 이들은 아이에게 어떤 특정 행동을 기대하고 조건화한다. 이 경우, 아이가 남녀 이분 체계를 겪으며 걱정스러운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치원생들 사이에선 수학 성적으론 남녀 간 성별 차이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나중에 교사의 영향과 자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남녀 간 수학 성적 차이가 벌어진다.
파인 교수는 이러한 강화된 성 고정관념이 "성별이 당신의 관심사나 미래를 결정해선 안 된다는 현대의 성 평등주의 원칙과 상충하기 때문에 특히 문제"라고 말한다.
남자아이에게 판매하는 특정 장난감은 공간 인식과 관련된 뇌 인지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 여아에게 3개월간 테트리스 게임을 시킨 결과 이 아이들의 시각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더 큰 거로 나타났다.
만약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에게 다른 취미를 하게 하면 두뇌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신경과학자이자 작가인 영국 애스턴 대학의 지나 리폰이 설명하듯이, 우리 사회 자체가 성별로 구분됐기 때문에 뇌 역시 이를 반영한다. 그 결과 남자아이들은 남자 다운 행동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래에 의해 배제당하도록 길든다.
우리는 이렇게 성별에 따른 차이에 주목하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과학을 더 잘하고 여학생들이 보살피는 것을 더 잘한다는 일종의 신화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런 경향은 성인이 돼서도 지속한다.
수학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 물으면 여성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남성들은 점수를 부풀린다. 또한 사전에 어떤 시험에서 여성들은 부진했다고 미리 알려주면 그 말을 들은 여성들은 시험을 잘 보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편견은 학교, 대학,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어릴 적부터 강조되고 길드는 남성성이 나중엔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의 심리학자 메간 마스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들은 높은 '적대적인 남성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남성성은 남자들은 선천적으로 폭력적이고 성적 성취감이 필요하며, 여성들이 자연적으로 순종적이라는 일련의 믿음을 말한다.
메간 마스 교수는 한 연구에 따르면 '공주 놀이'에 푹 빠진 여자아이들은 외모에 더 신경 쓰고 자신을 성적 대상화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혔다. 또한 "성차별적인 성 고정관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여자아이일수록 지능과 관련된 부분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울러 다른 한 연구에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매력을 "지능이나 능력과는 양립할 수 없는 존재"로 본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브라운 교수와 동료들은 2020년 보고서를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 사건이 흔한 이유로 어릴 때부터 주입된 가치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주입된 가치관은 부모, 학교, 언론 그리고 또래에게서 비롯된다.
브라운교수는 특히 "여아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매우 일찍 시작된다"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성에 따른 고정관념과 이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녀의 뇌가 선천적으로 다르다고 믿는 보고서들이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남녀 간 뇌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뇌 영상연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내용 대부분은 성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이 또한 편견을 부수기 역부족이다. 편견에 반하는 내용의 보고서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학계에선 '파일 서랍' 문제라고 말한다. 문제에 대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아 언급되지 않거나 아예 자세히 조사되지 않는 거다.
작게라도 남녀 간 뇌의 차이를 발견한 연구 내용을 봐도 이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이들이 얼마나 엄격히 문화적 요소나 고정관념을 배제한 채 연구됐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인의 뇌는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로 딱 자르듯이 구분할 수 없다.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과 동료들은 1400개의 뇌 촬영 사진을 분석한 결과 전반적으로 남녀의 뇌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남녀 모두 회백질과 백질, 그리고 연결 조직의 분포도가 상당 부분 비슷합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비디오 게임을 할 때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여성이 상대가 자신의 성별을 알지 못한다고 알려졌을 경우 그랬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이 여성은 덜 공격적으로 게임을 했다.
이 실험 결과는 여성은 덜 공격적이고 공감력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사회적 통념과 연결된다.
사실 여성과 남성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상황에 대해 생리적으로는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공감력은 여성적인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감정을 더 표현하도록 사회화됐을 뿐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성적 고정관념과 관련된 중대한 변화를 끌어내려면 우선 자신의 편견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입견이 판단력을 흐리는 건 아닌지 유념해야 한다. 남녀 성 역할에 대한 기대가 처음엔 작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왜 우리는 남자아이라면 떠들썩하겠지 하고 여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젠 이런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걸 인지할 때다.
내 딸은 확실히 자기 오빠만큼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내 아들은 요리 놀이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이런 예시가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격파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전형적인 남자아이 혹은 여자아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아닐 거다. 신경 쓰지 않았다면, 나는 우리 아들은 여기저기 올라타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 딸은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거다. 우리 딸이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아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데도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이분법적인 성별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다른 예를 들어줄 수 있다. 예로 여자아이도 축구를 할 수 있고 남자아이도 긴 머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말이다. 젠더와 상관없이 다양한 장난감을 소개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마스 교수는 아이들에게 "이분법적 젠더 사고에서 벗어날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점 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이런 고정관념에 비춰 키운다면, 우리의 세계는 앞으로도 젠더 이분법에 갇힐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남자아이에게 '얼마나 용감한지', 또 어린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완벽한지' 말해주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멜리사 호겐붐은 BBC Reel의 에디터이자 '마더후드 콤플렉스'를 쓴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