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일하기 싫어서" 40대 퇴사 부부의 '계획적 은퇴'

조회수 2021. 4. 23.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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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일기]<3> 마흔, 마흔여섯 이른 은퇴, 꿈★은 이루어진다

《'직장인은 항상 사직서를 품고 산다'는 말을 실천한 우리 주변 평범한 퇴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가슴 속 사직서를 던지기 전 엿보고 싶은 남들의 '퇴사 일기'.》

결혼 후 남편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세계여행을 떠나자 했다. 농담처럼 꺼낸 그 말에 나의 꿈도 은퇴가 되었다.
– ‘idle’의 브런치
큰일이다. 성실하던 아내가 나에게 물들었다. 부부가 결혼하자마자 둘 다 백수가 되려 한다. 양쪽 부모님들에게 이걸 설득해야 한다.
– ‘민현’의 브런치

“노는 법을 모르는 평범한 회사원인 내 삶이 우울해”라고 말하던 여자.

“회사는 싫더라도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고 말하던 남자.


서른다섯, 마흔하나의 나이에 조금 늦은 결혼을 한 idle, 민현 부부는 지난해 마흔, 마흔여섯의 나이로 조금 이른 은퇴를 했다. 회사원으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이제 자발적 백수이자 브런치 작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요즘은 행복한 두 달짜리 제주살이를 체험 중이라는 부부에게 퇴사 후의 삶에 대해 물었다.

마흔, 마흔여섯의 ‘은퇴 부부’가 되기로 결심하다.

출처: idle,민현 부부 제공

- 안녕하세요. 두 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dle> 안녕하세요, 브런치 필명으로 인사드릴게요. 작년에 은퇴해서 이제 자발적 백수가 된 idle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마흔 하나가 되었어요.

민현> 안녕하세요 민현입니다. 남들에게 나이를 말할 일이 별로 없어서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헤아려보니 마흔 일곱이네요. 언제 이렇게나 나이가 많아졌을까요.


- 두 분은 원래 무슨 일을 하셨나요?


idle> IT 서비스 기획을 했어요. 포털 서비스 회사에서 검색, 쇼핑, AI 서비스를 기획했고 은퇴 직전에는 통신사로 이직해서 AI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16년정도 일했네요.

민현> 아내와 같은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을 했어요. 회사생활을 19년정도 했고요. 개발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동료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저는 재미없었거든요.

처음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였던 두 사람은 곧 함께 출퇴근하는 사이가 됐고, 나란히 은퇴한 부부 사이가 됐다. 당초 마흔살에 은퇴를 꿈꿨던 건 민현 씨였지만 가정을 이루니 돈이 들었다. 좀 더 일하고 돈을 모으고, 민현 씨는 지난해 5월 마흔 여섯의 나이에 비로소 은퇴를 했다. 대신 같은 해 아내인 idle 씨가 ‘마흔 은퇴’에 성공했다. 원래 은퇴할 생각이 없었던 그가 퇴사하게 된 건 남편의 영향이 컸다. 천천히 퇴사를 준비하려했지만 건강문제로 idle 씨는 9월 휴직계를 냈다. 퇴사를 고민해보라는 회사의 배려, 그러나  올해 2월 공식적으로 사직서가 수리됐다. 비공식적으로 마흔 살이 되던 지난해 은퇴한 셈이다.


- 은퇴 전 건강이 안 좋아지셨나봐요. 지금은 어떠세요.


idle> 일을 하면서 긴장될 때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식은땀에 두통에.. 머리 한 쪽이 부풀 정도였는데 병원에서는 MRI까지 찍어도 이상이 없다고 했어요. 정신적인 문제 인 것 같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긴장하면 증상은 여전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니까 긴장할 일이 별로 없어요.

민현> 사실 아내가 일하면서 느낀 힘듦은 저라면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것들도 많았어요. 저는 회사에서 잘 되고 싶다는 욕심도 적었고 회사는 회사, 나는 나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하지만 아내가 잘못된 건 아니죠. 그래서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다며 위로할 수 밖에 없었어요.


- 두 분은 어떤 마음으로 퇴사를 함께 결심하게 되셨나요.


idle> 전 원래 은퇴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결혼하고 남편이 같이 세계여행을 가자고 해서 그때 처음으로 은퇴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얘기하면 할수록 설레더라고요. 원래 일에 몰두하는 편인데 지쳐가고 있었어요. 기획 일을 오래 하긴 했지만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거든요.  은퇴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으니까요.

민현> 회사 일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긴 시간 동안 힘들었고요. 마흔까지만 회사에서 버티고 마흔 이후에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은퇴라기보다는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었죠.


- 콕 찝어 ‘마흔’을 은퇴의 나이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남편 분은 계획보다 늦어지셨지만요.


idle>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전 원래 좀 더 다닐까 생각했었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생각보다 빨리 은퇴했어요. 남편의 꿈이 마흔 은퇴였기에 ‘내가 당신 꿈 이루어 줄게’ 하면서 은퇴했죠.

민현>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었을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자며 마흔이라는 나이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니 허황된 꿈이더군요. 가정을 이루고 난 후 드는 생활비는 혼자 살 때와는 비교도 안되었고요. 무엇보다 전세 대출금을 갚아야 했어요. 아내가 저의 꿈이었던 마흔 은퇴를 대신 이루어서 조금은 질투도 납니다.

퇴사하면 이런 기분입니다.

출처: idle,민현 부부 제공
처음에는 퇴사 후 세계여행을 꿈꿨던 부부였지만 지금은 계획이 바뀌었다. "한 번에 끝내버리는 세계일주가 아니라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을 많이 떠나기로 한 것. 물론 지금은 해외여행을 떠나기에 알맞은 시기는 아니다.

- 회사에 최종적으로 ‘퇴사’를 알릴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idle> 결심하고 말하기까지 너무 떨렸어요. 팀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많았고요. 언제 어떻게 얘기를 꺼내면 좋지 계속 눈치만 보고 있었어요.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현> 저의 경우는 회사에 퇴사를 이야기할 때 두근두근 했어요. 몇 년 동안 마음속에 간직해오던 말이었으니까요. 드디어 이 말을 하는구나 싶었죠. 셀장에게, 팀장에게, HR팀에게 각각 이야기했는데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그들이 제가 퇴사를 말하면서 애써 웃음을 숨기는 모습을 봤을지도 몰라요.


- 부부가 모두 퇴사한다고 했을 때 가족과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idle> 가족들에게 꽤 오래전부터 얘기했거든요.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생각해서 별다른 말씀 없으셨고요. 진짜 은퇴할 때쯤은 이미 세뇌가 되셔서 포기하셨죠. 친한 사람들 한테도 은퇴할 거라고 말해왔어요. 다들 직장인이 흔히 하는 투정인 줄 알았던 거 같아요. 진짜 은퇴하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로또 당첨된 거 아니냐면서요.

민현> 저 같은 경우는 저 혼자 마음의 결정이 될 때까지 아내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퇴사를 하고 난 이후 살아갈 준비를 다 하고 나서야 부모님에게 말씀드렸어요. 많이 놀라셨죠. 큰 걱정을 끼쳐드린 건데 많이 죄송했어요. 퇴사한 이후 저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신 지금은 괜찮으세요. 친구들은 아직도 잠시 쉬는 거라고 생각해요. 곧 다시 회사를 다닐 거라 여기죠. 아무래도 우리 나이 때의 은퇴는 생각하기 힘드니까요. 굳이 설득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아요. 한 3년쯤 지나면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볼지도 모르죠.

돈도 계획도 준비 완료, 충동적 결정이 아닌 ‘단단한 은퇴’.

영원한 퇴사가 될 ‘은퇴’를 결정하기 위해 두 사람은 계획을 세웠다. 지금의 벌이로 얼마나 돈을 모아야 생활이 가능할지 계산해 은퇴 시기를 정했다. 은퇴를 위한 준비 기간은 5년. 아내 idle 씨는 현재 자산과 지출 내역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미래 설계를 했다. 지출을 줄여 자금을 모으고, 현금 가치 하락을 대비해 부동산에 투자하고, 매달 들어오는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부어오던 연금을 점검했다. 남편 민현 씨는 “(계획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긴다”며 “아내의 존재가 참 든든하다”고 말했다.


- 은퇴 전부터 스프레드시트까지 만들어 은퇴 후 자금 계획을 차곡차곡 준비하셨다고요.


idle> 당시 쓰던 가계부를 보면서 은퇴 후 생활비를 얼마나 쓸지 계산했어요. 연금을 받기 전까지 얼마를 모으면 될지를 알아야 은퇴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생활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돈은 5억이었어요. 얼마나 모으고 은퇴했는지는 비밀이에요.

민현> 저는 스프레드시트를 쓰지 않아요.

출처: idle,민현 부부 제공
부부의 은퇴 후 생활비 내역. idle씨는 예상 관리비부터 용돈까지 꼼꼼한 계획을 세웠다.

- 아내 분께서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이직까지 하셨다고 들었어요.


idle> 그때 월급의 대부분은 대출금을 상환했어요. 은퇴 전 대출을 다 갚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현금이 부족한 거에요. 돈을 좀 더 모아야겠다 싶어 이직을 결심했어요.

민현> 저는 그럴 필요는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의 기준으로는 이미 자금은 충분했거든요. 물론 세세히 따져서 연금을 받기 전까지 우리가 계획한 생활비로 버티기엔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은 살면서 다른 걸로 채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아내를 말릴 수는 없죠. 아내의 불안감은 아내가 가지는 감정이니까요. 은퇴 이후의 삶은 아내와 저 둘 다 불안함이 없어야 하니 아내의 말을 따랐어요.


- 지금은 재테크를 하고 계신가요? 어떤 수입으로 생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idle> 은퇴 전 모아둔 현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그걸로 투자도 좀 해야 하는데, 요즘 주식 시장은 변동성이 크니까 두려워서 언제쯤 들어갈지 지켜보고 있어요. 각자 용돈으로 주식 투자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용돈 투자는 두렵지 않은데, 생활비는 잃으면 안 된다 싶으니까 좀 두렵더라고요.

민현> 재테크는 아내가 담당하기로 했어요. 전 인생 한방을 외치거든요.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고 무모하기도 해요. 저도 이런 제가 무서워서 은퇴 자금은 제가 손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퇴사 이후, 앞으로의 삶

- 요즘은 제주에서 살고 계시고... '낯선 곳에서 살아 보기'를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idle> 원래 여행도 좋아하고요. 오래 머물면서 그 도시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게 즐거워서요.

민현> 낯선 곳에서 살아 본다는 건 여행하고는 달라요. 여행으로는 볼 수 없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죠. 그 낯선 곳이 외국일 필요는 없어요. 도시 도시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다르고 환경이 달라요. 그런 걸 보는 게 재미있어요. 저의 생각이 다양해진다는 것도 느끼고요.


- 다시 회사로 돌아갈 계획은 없으신가요?


idle> 네,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지금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민현> 돌아가려 해도 회사에서 아마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 이제 나이가 꽤 되거든요.


- 궁극적으로는 서울을 떠나 살기로 결정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idle> 저희가 준비한 은퇴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집이에요. 집을 처분하고 집값이 저렴한 곳에서 살아가려고요. 아직 수도권을 떠난 건 아니고 여행 중이에요.

민현> 아내와 농담처럼 이곳에서 쫓겨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전 원래 서울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없거든요.

출처: idle,민현 부부 제공
idle씨의 퇴사 후 하루 일과

- 두 분 모두 앞으로 회사 생활이 아닌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걸 목표로 하고 계신가요. 두 분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idle> 그냥 해보고 싶었던 일을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어릴 때 꿈이 작가였거든요. 최근에는 제안을 받아 언론사 연재를 하게 되었고 에세이 출간도 준비 중이에요. 생각보다 빨리 꿈을 이루게 되어서 얼떨떨합니다.

민현> 돈 버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이 먼저에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좋아하는 일을 몇 년 꾸준히 하다 보면 그때쯤 돈 버는 방법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니어도 상관없고요. 대신 하루하루 좋아하는 일로 잘 채워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글도 쓰고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영어 공부도 하고요.


- 은퇴 부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idle> 은퇴 후의 시간은 길어요. 은퇴 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일로 시간을 보낼지 고민을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의 현재 소비습관을 살펴보고,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길들이는 게 필요해요. 은퇴 후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도록요.

민현> 브런치에 저희의 은퇴 이야기를 쓰면서 저희처럼 은퇴를 꿈꾸시는 분들이 참 많이 계신다는 걸 알았어요. 쉽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각자가 처한 현실은 모두 다를 테니 조언을 드리기가 참 어렵고요. 다만, 꿈꾸시는 은퇴를 잊지 않고 계속 꺼내서 되새겼으면 해요. 그런 시간들이 모여서 계획이 다져지고, 구체화되고 결국 현실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요.

인터뷰를 이어가며 불현듯 ‘퇴사하는 것도 용기 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도 용기’라는 한 독자의 말이 생각나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용기가 없어서) 퇴사한 거니까요”라는 민현 씨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에, 저에게는 퇴사가 출근보다 더 큰 용기였어요”라는 idle 씨. 서로 정말 다르다고 강조한 두 사람은 “그게 상호보완적이라 좋다”며 웃었다. 인터뷰의 끝,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시라”고 인사한 기자에게 두 사람은 “저희만 즐거울 것 같아서 어떡하냐”며 정리할 인터뷰 원고가 쌓여있는 기자를 위로했다.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쩌랴. 퇴사 선배인 두 사람을 보며 “저도 이제 퇴근이라 즐겁습니다”라고 답할 수 밖에.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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