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혼혈은 예능, 동남아혼혈은 다큐"..차별에 멍드는 다문화2세

이진한,김금이 2021. 5. 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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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성년 100명 중 3명꼴
어디서나 '이방인 신세' 호소

◆ 그늘진 가정의 달 ① ◆

"학교에서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수업이 많아 정체성 혼란을 많이 겪었어요. 또 베트남에 가면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는 얘길 듣기 일쑤였죠. 어딜 가도 이방인으로 쳐다봅니다."(한·베트남 다문화가정 2세 박 모씨)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급속히 글로벌화하면서 다문화가정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한 세대(30년)가 지나도록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시민 인식은 안착되지 못했다. 다문화가정 2세들은 엄마와 아빠의 나라 어디를 가도 이질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4일 다문화가족지원포털 다누리에 따르면 국내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 수는 총 26만4626명(2019년 말 기준)으로 10년 전(10만7689명)에 비해 2.5배 늘었다.

국내 19세 이하 인구가 876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100명 중 3명이 다문화가정 2세인 셈이다.

거주 지역에도 변화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농촌에서 국제 결혼한 부부의 자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2세가 절반을 넘어섰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다문화가정 2세들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문화가정을 가정 폭력에 노출된 저소득층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을 사회적 다양성의 한 축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통합정책이 필요하다"며 "기존의 흡수·동화주의적 정책에서 벗어나 다문화가정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 한국인인데, 김장행사에 왜 부르나요"…韓 다문화 포용 낙제점

차별에 멍드는 다문화 2세들

개방성 등 평가하는 다문화지수
韓 10년째 100점 만점에 50점대

이방인 취급 거리두기에 상처
"취업때 유학생으로 여겨 당황"

"백인 혼혈은 TV 예능 출연
동남아 혼혈, 다큐서 동정 유발"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다문화대안학교에서 다문화가정 2세들이 음악 수업을 듣고 있다. [한주형 기자]
"다문화 2세들이 모이면 '백인 혼혈이면 예능하고, 동남아 혼혈이면 다큐 하냐'라고 우스갯소리를 해요. 다문화가정은 다 불쌍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너무 올드하지 않나요?"

우스갯소리라고 웃어 넘기기에 박모 씨(22)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박씨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2세다. 하노이에서 치열한 대학 입시를 거친 뒤 국내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여러 도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박씨는 "항상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며 "베트남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외국인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4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다문화수용성지수는 100점 만점에 52.81점(2018년 기준)으로 낙제 수준이다. 지수는 문화개방성, 국민정체성, 고정관념·차별, 일방적 동화 기대, 거부·회피정서, 교류행동의지, 이중적 평가, 세계시민행동의지 등 8개 지표를 점수로 환산해 평가한다. 3년 주기로 평가가 이뤄지는데 2012년 첫 평가에서 51.17점, 2015년 53.95점 등 50점대 초반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올해 평가에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매일경제신문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문화가정 2세들의 얘기를 폭넓게 들었다. 이들은 '이런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보다, '다문화가정'의 테두리에 가두고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거둬달라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다르게 보는 시선'에 대한 토로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예림 씨(25)에게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다문화가정통신문이란 것을 만들어서 친구들 앞에서 나만 불러 나눠줬다"며 "다문화를 다룬 캠페인, 홍보영상에도 모두 형편이 어렵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묘사돼 있어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되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동생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다문화 대상 김치 만들기'라는 이상한 프로그램에 불려가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같은 다문화가정이라도 동남아 혼혈은 외모가 달라서 차별받고 중국·일본은 정치적 갈등으로 상처받는 등 상황이 모두 달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며 "다문화가정이란 용어 자체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경계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대만인 출신 어머니를 둔 박혜림 씨(22)는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들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배경보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역설했다. 학벌주의와 극심한 빈부격차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다문화가정에도 그대로 투영돼 문제를 가중시킨다는 얘기다. 다만 박씨는 피부색을 비롯한 외형적 특성 등 개인 간 격차가 크다는 점을 전제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확산과 2018년 미세먼지 사태 등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짱깨' 등 특정 혐오발언이 사회적으로 빈번해진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혐오 표현을 직접 들은 적은 중학생 시절 이후에는 없었다"며 "특히 또래 세대는 유튜브 등을 통해 외국인과 쉽게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심리적 장벽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LG 연암문화재단 다문화학교 1기 졸업생으로 교사로 재직 중인 바수데비 씨(26)는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다문화가정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부모님의 인종과 국적은 물론 비자 상태에 따라서도 당사자에게 필요한 지원과 정책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다문화가정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모든 사람을 포함하기에는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데비 씨는 지난해 쿠바 국적의 남편과 결혼해 2대에 걸쳐 다문화가정을 꾸렸다. 데비 씨 동생 혜나 씨(22)는 2017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진학해 현재 4학년 학생으로 지내고 있다.

혜나 씨는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면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또는 유학생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더 자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대학에 입학하고 국제학생회에 지원을 했는데, 한국 학생은 면접을 보고 외국 학생은 면접을 안 봤다. 그런데 나도 면접을 안 봐 당황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이진한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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