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성적 취향' vs '성적 모욕'.. 재점화된 리얼돌 수입허가 논란

조회수 2021. 2. 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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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이후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여성의 인권이 맞붙었다.

사람의 전신을 본떠 만든 성인용품인 '리얼돌'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법원이 '리얼돌 통관 보류는 불법'이란 판결을 내자 이에 불복해 관세청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찬반양론이 심화됐다.

성인용품일 뿐이며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인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부딪히고 있다.

논란 재점화 계기된 법원 판결

리얼돌 논쟁이 재점화된 것은 최근 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보류한 세관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단을 내리면서다.

지난달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박양준)는 최근 성인용품을 수입·유통하는 A업체가 지난해 1월 중국 업체로부터 리얼돌 1개를 수입하려다 김포공항 세관에서 수입 보류되자 이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물품(리얼돌)은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했다고 볼 순 없다"고 밝혔다.

이는 1년 7개월 전 대법원에서 내린 판결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리얼돌을 수입하려던 한 업체가 수입 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1심에서 기각됐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은 여성의 성기 모습을 단순화한 남성용 자위기구에 기능적 중점을 뒀다"면서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의 개인적 활동에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고 적시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올해 나온 판결의 경우, 김포공항 세관이 지난 2일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새 라운드에 접어들게 됐다.

항소에 앞서 관세청은 "아동·청소년이나 특정 인물 형상의 리얼돌 유통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며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통관 보류처분 취소 판결이 최종 확정된다고 해도 리얼돌 수입이 전반적으로 허용되는 게 아니라 동일 제품에 대해서만 통관이 허용될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관세청은 현재 사법부나 조세심판원이 수입을 허용한 특정 모델의 리얼돌을 제외한 대부분의 리얼돌에 대해 통관을 막고 있다.

'성적 취향' vs '성적 모욕'

판결 이후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여성의 인권 관련 주장이 맞붙었다.

리얼돌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리얼돌은 사생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헌법과 사법부를 무시하고 리얼돌 통관을 무조건 불허하는 관세청을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리얼돌 통관을 불허하는 행위는 국가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결혼을 포기한 사람, 노인, 혹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욕의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4일 오후 5시 기준 이 청원엔 2300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반면 시민단체 및 여성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리얼돌 수입을 반대하고 있다.

앞서 2019년 7월 게시된 리얼돌 판매 금지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당시 청원인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가졌지만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겠느냐"며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라"고 호소했다.

리얼돌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성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국대 부설 몸문화연구소 윤지영 교수는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논문에서 "인형은 일방적으로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주며 사랑해주는 대상임과 동시에, 언제든 맘에 들지 않으면 짓이거나 훼손 가능하며 대체·폐기 가능한 취약성을 의미한다"며 "인형 위상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남성들의 치료와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여성 신체가 형상화되는 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인격침해나 심리적·신체적 훼손을 유발하는지, 어떤 측면에서 트라우마적 요소가 될 수 있는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관련 법은 공백 상태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현행법상 리얼돌에 대한 관련 법은 없다.

이 틈새를 파고 들고 리얼돌의 종류와 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의 '질막'까지 리얼돌에 만들어 '처녀막'이라며 판매하는 업체를 비롯해, 연예인이나 주변의 실존 인물 형상을 본떠 주문 제작을 받는 업체도 생겨났다. 아동의 신체를 형상화한 리얼돌 관련해서도 제한 규정은 따로 없다.

리얼돌 체험방도 전국에 70여 개가 넘게 생겨났다. 리얼돌 체험방은 대부분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에 리얼돌을 비치해놓고 시간당 이용금액을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리얼돌 자체를 금지하자는 논의는 아직 진행된 것은 없지만, 아동 형상이나 교복을 입힌 리얼돌에 대해선 제작·판매·소지를 모두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아동·청소년 형상 성기구를 제작·수입 또는 수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재 영국, 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아동 형상 리얼돌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영국과 호주에서 성인 리얼돌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영국 검찰청은 2019년 아동 리얼돌 유통하거나 구매할 시 최대 12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한다는 내용의 검찰 규정을 만들었다. 앞서 데이비드 터너라는 초등학교 운영위원이 성적으로 대상화한 아동 사진 3만4000개와 100cm의 아동 형상 리얼돌을 갖고 있다 적발된 일이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호주에서도 아동 형상 리얼돌 수입이 증가하자 당국이 규제안을 마련했다. 아동 형상 리얼돌의 소지와 판매, 서비스 등을 하면 구금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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