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로 보는 '알랑말랑' 소주 탐구생활 (17)]
비대면 시대에도 '술자리'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단순히 '만나야 비즈니스가 된다'는 이유여서가 아니다. 모니터 너머 상대와도 술잔은 맞댈 수 있다. 핵심은 ‘주도(酒道)’를 알고 있느냐다. 술자리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예절이다. 가장 대중적인 술인 소주를 마실 때도 나름대로의 예절이 있지만, 술자리에서 구전될 뿐 그 방법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주도는 격식 있는 자리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편한 사이에도 주도를 지키면 서로를 배려하며 마실 수 있어 과음을 줄일 수 있다. 올바른 음주문화를 위해 '알랑말랑한' 소주 마시기 방법을 탐구해 본다. -필자 주-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단체로 술을 마실 때면 술마시기 게임을 하곤 한다. 게임을 통해서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게 하는 놀이다. 술게임은 대부분 동년배의 젊은 세대들이 한다. 에너지가 많고 흥이 넘치고, 술을 좀 마실 수 안다는 이들이 주로 즐긴다. 빨리 취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빨리 유쾌해진다. 반면, 잘 못마시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주령구

술자리 놀이는 통일신라시대(7~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경주에서 참나무로 만든 14면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를 발견했다. 말 뜻 그대로 술과 관련된 명령을 내리는 도구다. 주령구를 굴려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규칙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술자리 놀이로는 가장 오래됐다. 현재도 주령구를 응용해 술자리 게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잔 한번에 다 비우고 크게 웃기(원샷)
삼잔일거 (三盞一去)- 술 석 잔을 한번에 마시기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 있기
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놀려도) 참기
임의청가 (任意請歌)-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월경일곡 (月鏡一曲)- 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 수 읊기
양잔즉방 (兩盞則放)- 두 잔이 있으면 즉시 비우기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도깨비 부르기)
주류마블

주류마블은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숫자만큼 이동해 게임판에 적혀 있는 지시 사항을 이행하는 술 게임이다. 한국의 보드게임 중에 가장 대표적인 '부루마블(Blue Marble)'을 응용한 것이다. 앞에 주류(술의 종류)와 마블(대리석)을 붙여 술을 마시는 판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주류마블을 판매하고 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직접 종이에 지시사항을 적어 게임판을 만들기도 하다. 대표적인 지시사항은 술 마시기, 안주 먹기, 장기자랑이 있다.
안주 먹기 : 먹기, 옆사람 주기 등 안주와 관련한 다양한 지시사항
장기 자랑 : 노래 부르기, 댄스 타임 등 자신만의 특기 보여주기
기타 : 주사위 한 번 더, 한 번 쉬기, 처음으로 돌아 가기 등
소주 병뚜껑 업&다운 게임

병뚜껑 안쪽에 번호가 있다. 이를 두고 제조일자로 소주 맛의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실제로는 마개 제조사의 금형 생산라인 숫자다. 문제가 생겼을 때 품질 조사를 위해 참고할 수 있도록 표시한 것이다.
이 숫자를 이용한 게임이 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은 소주 병뚜껑 하나를 집어 자신만 번호를 보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휴지로 막는다. 이후 오른쪽 사람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숫자를 말한다. 그 숫자가 병뚜껑 번호보다 높으면 ‘다운(낮춰 봐)’이라고 하고, 낮으면 ‘업(높여 봐)’이라고 하면서 힌트를 준다. 몇 번을 돌다가 누군가가 번호를 맞추면 좌우에 있는 사람이 소주를 마시는 게임이다.
소주병 마이크

소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를 때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마이크가 있다. 소주병과 숟가락을 사용해 마이크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사회자 격인 사람은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두 개의 숟가락과 두 개의 소주병을 이용해 만든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술 마시는 분위기는 고조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아주 편한 친구들의 모임이나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서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됐을 때 허용된다. 이미 빈 술병이 최소 2병 이상이 돼야 가능한 응용법이다. 술자리에 앉자마자 숟가락 소주병 마이크를 만들거나 처음 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작업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상황을 봐가며 행동해야 한다.
소주병에 숟가락 두 개를 꽂는다. 이 때 오목한 부분이 서로 마주 보도록 해 중간에 두 번째 소주병을 잡을 수 있도록 한다. 힘으로만 벌려 소주병을 끼우려고 하면 숟가락이 휠 수 있음으로 숟가락을 첫 번째 병에 넣을 때의 깊이를 조절해 가며 두 번째 병을 꽂도록 한다.
'마라조'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소맥 제조장치도 있다. 소주병을 덮은 마개 위에 있는 빨간 꼭지를 돌려 취향에 따라 소주 주입량의 비율을 10%, 20%, 30% 중 선택한다.
'웰믹스'

소주병 위의 연두색 조절기를 돌려 소주와 맥주 비율을 2:8, 3:7, 1:9로 조절할 수 있다.
독자 중에는 위에서 열거한 여러가지 놀이 중에 한 가지를 하다가 안좋았던 추억이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술자리의 놀이들은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 절대 강권해서는 안된다. 주의해야 한다.

필자 퍼니준(소주아티스트) / 일러스트 퍼니준
인터비즈 윤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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