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북아메리카 여행, 나누는 행복과 버리는 행복(2)

“필자 이동근은 지난 2016년 6개월간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을 출발, 시베리아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22,838km를 달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로카곶의 바람을 느끼고 돌아왔다. 진짜 행복이 뭔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박하게 고민했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의 끝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그저 삶의 순간순간이 행복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나는 순간의 의미는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것또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중부사막을 지나 알래스카까지 13,000km를 달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횡단을 끝내고 미국 알래스카까지 약 40,000km를 완성하는 두 번째 북반구 횡단 프로젝트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번 북아메리카 대륙 횡단에는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그리고 '친구 강성웅 씨가' 함께했다.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연재한다.”_편집자 주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www.ridema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98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8


2017.05.25 날씨 폭우 / DELAWARE -> 펜실베이니아


총 운행 거리 : 177.31km

간밤에 소스라치게 추워 잠에서 깨니 텐트 천장에서 빗방울이 목을 향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레인 플라이가 없으니 이너 텐트만으로 비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침낭도 다 젖어버려 더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쫓기듯이 짐을 꾸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25km를 달려 근방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 서둘러 들어왔다. 비를 피해 가방에 구겨 넣은 텐트, 침낭, 담요, 스토브 등을 던지듯이 끄집어냈다. 물이 흥건했지만 좁은 방이라 말릴 곳이 없다. 아무렇게나 천장에 매달고 땅바닥에 던져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리를 마치고 숙소 앞길 가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여기서 시작된 일이 나중에 귀중한 경험으로 돌아왔다.) 들어서자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것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꼼꼼하게 하나씩 챙겨주었고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친절하고 편안하게 응대를 해주어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가 있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팁을 두고 가려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어 보았다. 나는 밥을 39불을 먹었는데 5불과 20불이 주머니에 있었다. 잠깐 고민을 하다 20불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50%가 조금 넘는 금액을 팁으로 주고 나왔다. 웨이트리스는 정말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에게도 큰 금액이었지만, 나로 인해서 오늘 하루만큼은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분은 충분히 행복을 전염시킬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렇게 나는 사소한 배려로 작은 기쁨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글과 사진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으니 답답하여 바람을 쐬러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땅에 떨어진 50불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달러가 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돈인지 그냥 전단지인지 구분이 힘들었다. 나는 빗물에 젖은 50불을 주워들고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돈을 주워 본적이 드문 일인데 여기서 이렇게 큰돈을 주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방에 가지고 들어와 탁자 위에 말리기 위해 펴놓고 생각을 해보니, 오늘 레스토랑에서 선의로 베푼 일이 나에게 돌아온 것인가 싶었다. 모든 일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을 처음 온 몸으로 느끼게 된 계기였다. 선하게 그리고 기쁨을 나누며 사는 법을 세상이 조금씩 알려 주는 중인 것 같다.


ps.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인류가 가진 행복도 일정한 에너지의 양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글을 빌어 50불을 잃어버려 속상해할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한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9


2017.05.26 날씨 소나기 / 펜실베이니아


총 이동 거리 & 시간 : 263.1km

애팔래치아 산맥 초입에서 만난 할아버지.


펜실베이니아 주를 가로지르는 여행 중이라고 한다.


두 번째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셨다는데, 어떤 말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가 가진 오래된 자전거, 장비는 그가 지나온 흔적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13


2017.05.30 날씨 폭우 / 펜실베이니아 


총 이동 거리 & 시간 : 449.82km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내리는 오후,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 한줄기에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두 대의 자전거가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고 청년은 거친 숨소리에 귀가 멎어버려 몇 대의 차가 줄지어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다행히, 인내심이 강한 그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청년들이 오르막길의 정상에 다 달았을 때 차는 일제히 옆으로 지나가며 경적을 울리고는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그때 그중 한 대가 청년 앞으로 가로막고는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를 차가운 빗속에서 꺼내주신 분은 State College의 목사였다.


“차가 자전거보다 낫지?”


“하하 당연하죠.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거의 죽을 뻔했어요.”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이것저것 물어왔다.


“알래스카로 간다고? 대단해. 나도 두 번이나 갔었는데 정말 가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곳이야.”


“정말 기대돼요, 그런데 자전거로 여행하려니까 너무 힘이 드네요.”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내일 일해야 하는데? 그것보다 낫지 않겠어?”


“아, 네 그렇죠!”


맞는 말이었다.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행운을 빌어, 너의 꿈을 위해서!”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14


2017.05.31 날씨 맑음 / 펜실베이니아


총 이동 거리 & 시간 : 507.62km

하루하고도 일주일 만에 비가 그쳤다. 뭉게구름이 피워 오른 것을 보니 며칠간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간절한 바람일 뿐이었다. 물을 사기 위해 작은 카페를 들렀을 때, 주인아주머니께서 큰 태풍이 남부에서 올라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동안, 비를 뿌리는 양을 보니 무엇이라도 올 것 같았지만 태풍은 예상치도 못한 변수였다. 숙소에 도착하여 기상 예보를 보니 이번 주에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간다고 태풍경보를 알린다. 아직 애팔래치아 산줄기 하나를 더 넘어야 하는데 설상가상이다. 한 마디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더 나쁜 뉴스는 사실, 자전거를 타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시샘하는 듯 딴생각에 잠기려 하면 다리에서 그리고 엉덩이에서 신호를 준다.


며칠 동안 보아 온 것이라고는 눈앞에서 버티고 있는 높은 언덕과 우거진 녹음이 전부였다.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가자, 쉬자, 목마르다, 덥다, 춥다 따위의 인간이 가진 생리적 욕구뿐인 것이 나는 그동안 아쉬웠었다.

이날 밤, 성웅이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너무 조바심을 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알래스카까지는 아직 12,000km가 남았고 우리는 이제 고작 500km를 왔으니 여러 가지 시험을 해 볼 시간은 많지 않겠냐고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욕심과 조바심이 그동안 나의 눈을 가렸을지도 모른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15


2017.06.01 날씨 맑음 / 펜실베이니아


총 이동 거리 & 시간 : 551.14km

오랜만에 그동안 해온 인터뷰를 꺼내보았다. 욕심에 관해서 기록해놓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 카잔에서 만난 그녀의 이름은 Diana였다. 메모를 꺼내어 보니 그때의 순간이 쉽게 다시 떠올랐다. 작은 다락방에서 이루어진 그녀의 인터뷰는 그만큼 인상이 깊었었다.


“한 가지만 물어볼 게, 너에게 행복은 어떤 거야?”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음, 나는 행복을 캐리어 가방에 빗대고 싶어. 캐리어도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행복도 다양하다고 믿어. 여기서 캐리어에 손잡이가 없다고 상상해봐 더 이상 캐리어를 적은 힘으로 가지고 다니기는 힘들겠지. 이처럼, 행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우리는 어떤 일로 인해서 손잡이가 없어진 “행복”을 끙끙대며 가지고 다니려고 해. 그런 짐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야. 무조건 행복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줄 알지. 나는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이런 것을 느껴왔었고, 더는 짐이 되어버린 행복에 대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어. 내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행복을 버리는 것. 그게 나의 행복이야.” -다이애나 인터뷰 ‘버리는 행복’ 중에서


욕심이 너무 많은 나는, 아메리카에서 무엇을 버리며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볼 때인 것 같다.

< 계속.......이동근과 강성웅의 자전거로 떠나는 북아메리카 횡단 여행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건너는 아름다운 두 청년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글/사진: 이동근 
제공: 라이드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