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수출 자동차는 리어엔진 버스

*1966년 부루나이행으로 부산항을 떠나는 국산 수출 버스 1호

 

* 드럼통 버스왕의 위업

 

1960년대 초까지 리어 엔진 버스는 모르던 시절이었다. 서울의 자동차 정비업자 최무성씨가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시발’을 만들어 낼 무렵인 1950년대 중엽, 또 한 사람의 자동차공업 개척자가 있었다. 바로 6․25사변 부산물인 드럼통을 펴서 국산 버스를 만든 서울의 하동환 씨이다. 50년대에서 60년대 말까지 버스업계에서 하동환 보디(차체)로 이름을 날렸던 그를 보는 사람마다 세 번을 놀란다고 했다. 첫째는 나이보다 너무 젊게 보이는 동안이고, 둘째는 상당히 나이 많은 사업가로 나이를 의심하는 것이고, 셋째는 기름투성이 작업복을 입고 종업원과 같이 일하는 현장이 그의 사무실이라는 점이다. 

 

1960년 우리나라로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국산 자동차인 하동환 버스 1대를 세계 제1의 부자나라인 부루나이로 수출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업원들과 같이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은 황무지 상태였다. 차에서 즁요한 엔진, 변속기, 차축등을 포함한 구동부분인 섀시를 만들 수가 없어 그래서 디젤차량 메이커였던 일본 닛산 디젤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고는 버스 섀시 1대를 이 회사로부터 도입하여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다. 이때 처음으로 도입한 수출 버스용 섀시는 엔진이 후부에 달린 리어 엔진(rear engine) 버스 섀시였다. 국산 리어 엔진 버스 제1호인 셈이다. 

 

섀시가 부산항에 도착하기 1주일 전에 닛산 디젤에서 섀시의 카탈로그와 도면이 왔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하 사장이 지나다가 내 어께를 툭 치며 “밥 먹고 내 방으로 와.”하고 간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사장실 문을 열었더니 얇은 책자와 도면 하나를 획 던저 주며 “수출버스 섀시야, 디자인 한번 해봐”한다. 바로 수출버스 섀시 카탈로그와 도면이다. 당시는 컴퓨터라는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때라 오직 제도판 위에 도화지를 붙여놓고 T자와 삼각자, 컴파스로 그리던 원시 시대였다. 

*부루나이행 국산 수출버스를 축하하는 교통부장관 안영모(왼쪽에서 네 번째)
 

* 한국 최초의 국산 수출차는 버스

 

나는 우선 각각 다른 모양의 외형 스케치 7장을 섀시가 경부선 화차로 도착하는 전날까지 완성했다. 이것들을 그리느라 거의 밤잠을 못잤다. 엔진, 변속기, 차축, 브레이크, 핸들 등 구동장치가 달려 제발로 달리는 마치 해골처럼 생긴 베어 섀시(Bare chassis)가 공장 마당에 도착하자 하 회장은 디자인 스케치를 가져오라며 마당에 출고 대기중인 하동환 버스의 모양을 한번 더 자세히 살피고 회장실로 오란다.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회장실로 들어섰더니 한번 쓱 훌터 보고는 결론적으로 밤잠 설치고 그린 7장의 디자인 스케치는 모두 퇴짜를 놓았다. 이유인즉 현실성이 부족한 공중에 뜬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하 사장은 현재 만들어 내고 있는 하동환 버스의 디자인을 모방하되 앞,뒤 모양만 바꾸란다. 이렇게하여 3개월만에 완성된 국산 고유모델 최초의 자동차인 하동환 리어엔진 버스는 1966년 7월에 등장하면서 큰 환영을 받았다. 비록 1대이지만 미끈한 국산 리어엔진 버스 1호, 당시 안경모 교통부 장관, 김현옥 서울시장의 전송을 받으며 경부고속도로가 없던 때라 제발로 경부 국도를 타고 부산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부르나이행 선박에 선적 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경사는 계속 이어져 다음 해인 1967년에는 베트남으로 하동환 리어엔진 버스 자그만치 20대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려 국산자동차 수출길을 개척했다. 

*1966년 최초의 리어 엔진 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