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입양된 아이의 잘못입니까

김영준 기자 입력 2021. 1. 22. 03:29 수정 2021. 1. 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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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양부모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을 대통령이 얼마나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낸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입양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입양 아동을 보호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게 ‘입양 부모의 마음이 변하면 일정 기간 내 파양하거나 아이와 맞지 않을 경우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실제 의도는 달랐을지 몰라도, 사건의 책임을 정인이에게 돌린 듯한 발언이었다. ‘양모(養母)가 입양 아동을 자신과 더 잘 맞는 아이로 바꿀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입양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인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2021.1.13 박상훈 기자

법정에 선 정인이 양모 측은 살인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육아 스트레스로 정서적·육체적 학대를 가한 사실은 있다”고 했다. 대통령 논리대로라면 양모에게 맞추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안겨준 16개월짜리 아이가 문제의 발단이란 말이 된다. ‘친딸에게 같은 성별의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정인이를 입양한 양모는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울면 걱정은커녕 화가 났다고 했다. 양부는 아이가 재밌어하는 줄 알았다며 우는 아이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고 억지로 손뼉을 치게 했다. 입양한 아이가 정인이가 아닌 다른 아이였다면, 16개월짜리 아이가 췌장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숨진 비극이 없었을까.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입양 제도만 손보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정인이 사건에서 입양 제도의 여러 부실함이 드러나긴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숨졌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정인이 양부모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앞에는 부모의 학대로 숨진 아동 12명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정인이처럼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당한 ‘달래’, 친부와 새 엄마의 학대 끝에 숨져 암매장당한 ‘원영이’, 집에서 돈 2300원을 들고 나가 젤리를 사먹었다는 이유로 친모에게 맞아서 숨진 ‘서현이’···. 각 영정 위에는 아이들 이름과 함께 “○○아 미안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법원 앞에는 이른 새벽부터 부산, 인천, 원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100여명이 모였다. ‘딸이 보육교사에게 학대 피해를 당한 적이 있어서···’, ‘둘째가 정인이와 동갑이라 남 일 같지 않아서···’ 모인 이유는 각기 달랐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같았다. “일반 가정, 입양 가정, 어린이집, 유치원, 그 어디서도 어른들 때문에 고통받는 정인이·달래·원영이·서현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대통령에게까지 닿지 못한 모양이다. 대신 사과한다. 정인아 미안해. 죽어서도 또다시 외면당한 달래야, 원영아, 서현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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