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석의 푸드로지>소주 부르는 기름진 맛.. 돌고돌아 '냉삼'

기자 2021. 4. 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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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육절기로 썰어낸 냉동삼겹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바삭하고 기름기가 쫙 빠지는 냉동삼겹살이 인기다. 사진 아래는 서울 강남 신사동 ‘영동자연석돌구이’의 옛날식 대패삼겹살. 양파와 마늘, 김치를 불판에 함께 얹어 구워 먹는다.
서울 중구 금돼지식당의 본삼겹살.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국민 단백질’ 삼겹살

‘소주엔 삼겹살’ 공식 생겨나며

1980년대부터 안주로 대유행

불판에 김치·미나리 등 올리면

고소한 돼지기름과 ‘찰떡궁합’

두껍게 썬 생삼겹살 인기 끌다

육절기로 썰어낸 ‘대패’ 이어서

젊은층은 ‘냉동삼겹살’에 열광

어떻게먹든 ‘쌈’으로 식탁장악

“비가 내리니까 소주에 삼겹살이 생각나.”(0CD의 ‘소주와 삼겹살’) “나는 삼겹살에 소주만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데.”(강백수밴드의 ‘삼겹살에 소주’)

삼겹살에 관한 노랫말이다. 이외에도 많은 가수가 삼겹살을 노래했다. 대전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삼겹살’(2017년)도 있다. ‘삼겹살 애가’(이만주)라는 시집도 나왔다. 식육마케터 김태경 박사는 ‘삼겹살의 시작’이란 인문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다. 유통업체가 삼겹살을 싸게 파는 ‘삼겹살데이’(3월 3일)도 있고,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가 실시하는 ‘한돈데이’(10월 1일) 특별 이벤트도 있다. 고작 가축의 특정 부위(갈비 밑 뱃살)인데 어쩌면 우리 삶 속에 이토록 깊이 녹아들었을까. 목살이나 우둔살 등 여타 정육 부위가 노래로, 시로 나온 적이 있었나. ‘가브리살데이’나 ‘오소리감투의 날’ 같은 축일은 들어본 적 없단 얘기다. 이쯤 되면 삼겹살을 빼고 현대의 한식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삼겹살 소비가 늘어난다는 봄날에, 삼겹살의 역사를 뒤집어 가며 살살 구워봤다.

◇국민 단백질이 되기까지 = ‘도야지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이 부위(部位)가 만치아니하나 뒤넙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三枚라하는)이 第一맛이 잇다하고.’(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 자 6면 게재 기사 ‘조선요리-3’)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처음 신문에 언급된 ‘세겹살’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59년부터 등장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 갑자기 삼겹살이란 단어가 대유행했다. 개그맨 고 김형곤이 ‘공포의 삼겹살’로 자칭하며 이 생소한 이름을 알린 공로자다. 로스구이라 부르던 것을 이후 너도나도 삼겹살로 외쳤다. 가히 폭발적인 인기 행진이 시작됐다. 그 인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수출만 하던 돼지고기가 오히려 내수용으로 부족해지는 시점이 왔다. 참고로 1970년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도 돼지를 길러 수출하던 대단위 양돈사업장이었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식생활이 개선되니 서민들이 고기를 찾기 시작했다. 한우는 비싸니 돼지고기가 인기를 끌었다. 1978년 초 국내 돼지고기 부족 현상이 일자 정부는 수급 안정화를 위해 수출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만(당시 자유중국)으로부터 시험적으로 냉동육 300t을 수입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80년대 중후반쯤엔 거의 모든 식당에서 삼겹살을 팔았다. 호프집이나 선술집에서도 삼겹살을 팔았다.

삼겹살의 대유행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정육점마다 도입된 냉동 육절기와 식당의 가스화덕, 그리고 엉뚱하게도 소주가 그 주인공이다. 삼겹살을 구워 먹기 좋게 되도록 얇게 썰 수 있었던 건 냉동 유통시스템과 육절기 덕분이었다. 삼겹살의 특성상 식탁에서 바로바로 구워내야 하는데 마침 이 시기에 프로판가스 화덕이 식당에 대중화됐다. 굳이 불판 전용 식탁이 없어도 ‘부루스타’라 불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나오면서 모든 가게에서 삼겹살을 팔 수 있게 됐다.

◇삼겹살과 친구들 = 시스템의 발전에 힘입어 삼겹살이 널리 퍼진 것이야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면 소주는 어떻게 삼겹살 대중화에 기여했을까. 막걸리 중심의 술 문화가 희석식 소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65년. 식량난에 따라 정부가 쌀로는 모든 술을 빚지 못하게 한 원년이다.

몇 년이 지나도 밀 막걸리가 입에 맞지 않았던 이들에게 원래부터 쌀은 주정이 아니었고 그나마 저렴했던 희석식 소주가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1977년 전국 희석식 소주 통폐합 과정을 거치며 회사별 유통구조가 개선되니, 다들 소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상을 묘사한 소설이나 방화 등 대중문화에도 이전에는 막걸릿집 일색이었던 것이 1970년대 중반부터는 소줏집 배경 일색으로 스크린에 투사됐다.

1980년대 들어 마침 삼겹살(로스구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안줏거리가 딱히 필요 없던 막걸리와는 달리 소주에는 배를 채우고 위벽을 보호할 만한 기름진 것이 필요했는데 마침 시중에 풀리기 시작한 돼지고기 로스구이가 딱이었다. 이때 ‘파전에 막걸리’ ‘맥주에 노가리’ ‘삼겹살에 소주’란 공식 아닌 공식이 생겨났다. 햄과 소시지도 거들었다. 국내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도시락 및 반찬용으로 햄과 소시지를 찾게 되자, 식재료를 대단위로 확보해야 하는 식품기업이 등장했다. 기술적, 경제적 이유로 가공육 생산에 필요한 부위와 필요 없는 부위가 나뉘었다. 이렇다 보니 정형 유통 과정에서는 가공식품에 쓰이는 부위와 시중에서 파는 부위를 따로 유통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구이용 돼지갈비나 등심·안심 등 비싼 인기 부위만 따로 찾았고, 대부분 정육점에선 그냥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라고 했던 것이 삼겹살 등 구이용을 분류해 판매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전문 축산물 시장까지 가지 않고도 동네 정육점에서 구이용 고기를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너도나도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시대가 왔다. 필자도 1982년도에 처음 삼겹살을 맛봤다. 여성잡지에 나온 대로 소금과 후추, 참기름을 갠 기름장에 찍어 먹는데, 바삭하고 고소한 지방 맛의 삼겹살은 단숨에 입맛을 사로잡았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구이용 삼겹살과 족발, 불고기용 앞다리살 등을 앞세운 돼지고기가 ‘국민 단백질’로 등극한 순간이다.

◇편하고 맛있고 값싼 삼(三) 매력 = 그냥 사다 구우면 되니 식당이나 집에서도 간편했다. 계곡에 갈 때도 등산을 갈 때도 모두 삼겹살을 챙겼다. 양념 국물이 흐르는 소불고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미리 돼지고기를 양념에 재우지 않고 바로 로스구이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침 양돈산업의 현대화와 품종 개량이 함께 이뤄진 덕분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특유의 구린내가 없어졌으니 기름장만 가지고도 구워 먹기 좋았다. 당시엔 저렴하기도 했거니와 조리가 필요 없어 식당 메뉴에 올리기 편했다.

고기도 다양하게 쏟아졌다. 처음엔 육절기로 썰어낸 냉동삼겹살과 대패삼겹살이 주류였다가 얼리지 않고 두껍게 썬 생삼겹살로 유행이 바뀌더니 다시 돌고 돌아 냉동삼겹살이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장년층엔 익숙하지만 생고기만 봐온 젊은 소비자들에게 바삭하고 기름이 쫙 빠지는 냉동삼겹살은 생소한 음식이다. 와인숙성 삼겹살이나 저온숙성 삼겹살, 제주 흑돼지 삼겹살 등 방식과 지역에 따른 유행도 시곗바늘처럼 계속 돌고 있다.

삼겹살과 함께 먹는 곁들임 메뉴는 어느 정도 정착한 분위기다. 파채(파조리개)와 신김치 등은 불멸의 궁합으로 자리를 잡았고 새송이버섯이나 콩나물, 미나리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템이다. 어떻게 먹든 자신의 취향대로 삼겹살은 다양한 조합으로 쌈이 돼 식탁을 장악 중이다.

삼겹살의 견인 덕에 2019년 기준 우리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6.8㎏으로 전체 육류의 절반 가까이(49.1%)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해 닭고기 소비량(14.8㎏)과 쇠고기 소비량(13.0㎏)에 비해 크게 앞선다. 물론 이 중에서도 삼겹살이 으뜸이다. 국민 단백질 삼겹살은 여전히 그 특유의 기름진 맛으로 깔깔한 봄날의 입맛 회복을 책임지고 있다. 그뿐인가. 삼겹살을 미나리, 파조리개, 상추, 김치 등과 충분히 곁들여 먹으면 실제 건강식이라고 하니 스트레스도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도 좋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대원집 = 도심 한복판인 다동 고색창연한 기와집에서 옛날과 다름없는 냉동삼겹살을 구워 먹다니,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인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도심의 고깃집이다. 당연히 냉동삼겹살을 판다. 이른바 ‘냉삼’은 직접 자르지 않아도 한입 크기로 나오니 회식 때 막내들이 좋아한다. 바삭하게 구워내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속에 남는다. 익은 김치까지 구워내면 삼합이 따로 없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0-4. 1만3000원.

◇금돼지식당 = 미쉐린 가이드북에 등재(?)된 삼겹살집이다. 본삼겹. 독특하게 큼지막한 갈빗대가 붙어 있다. 돼지갈비와 삼겹살을 함께 맛보는 느낌이다. 그 덕분에 마니아층이 많다. 두꺼운 고기를 통째 돌려가며 구운 다음 다시 한입 크기로 썰어낸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뼈에 붙은 고기가 맛있다. 삼겹살 특유의 진한 맛이 첫맛부터 착착 붙는다. 서울 중구 다산로 149. 본삼겹살 1만7000원(170g).

◇신촌대구삼겹살 = 1977년부터 연세대 학생들을 사로잡은 맛이다. 냉동삼겹살을 판다. 테이블은 5개에 불과하지만 단골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시원한 콩나물 냉국에 ‘저래기’(파조리개의 대구 사투리), 새콤 아삭한 김치가 세월을 거스른 채 여전히 상에 오르고 있다. 후춧가루를 뒤집어쓴 선명한 핑크에 순백의 줄무늬, 가끔 하얀 연골이 딱딱 박힌 삼겹살이 냉기를 뿜으며 식탁에 등장하면 포일을 겹겹 싼 불판 위에 올렸다 먹으면 된다. ‘끝내기 볶음밥’은 꼭 먹어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18. 1만2000원.

◇우야우야대패삼겹살 = 일산 신도시 라페스타 끄트머리에 있는 집인데 우선 반찬이 끝내준다. 꽃게장까지 한 상 가득 차려 나오는 삼겹살집이라니. 육절기와 냉동고를 갖추고 생고기를 얼려서 대패삼겹살로 썰어준다. 신선한 돼지기름에 지져 먹을 수 있는 비엔나소시지, 가래떡 등을 함께 내준다. 특히 얇게 썬 감자를 기름에 구우면 즉석 포테이토칩이 된다. 야외 테이블도 있어 한결 여유롭게 삼겹살 외식을 즐길 수 있다. 후식으로 맛보는 된장국밥이 별미. 생삼겹살도 있다. 고양시 일산동구 무궁화로 43-50. 각 1만4000원.

◇영동자연석돌구이 = 강남 신사동에서 옛날식 대패삼겹살을 맛볼 수 있는 곳. 얇디얇은 삼겹살은 차돌박이처럼 순식간에 익어버리지만, 워낙 삼키기 좋은 까닭에 바로바로 사라진다. 타버릴 걱정이 없다. 돌판의 복사열이 좋아 휘휘 스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익은 모양새가 딱 불고기 같다. 양파와 김치를 함께 구워 먹으면 별다른 양념 없이도 간이 딱 맞는다. 곁들임 찬도 좋고 찌개도 맛있어 많이들 찾는 맛집이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148길 9.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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