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스포츠오늘] NBA에 '24초 공격제한시간'이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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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전 오늘, 미국프로농구(이하 NBA)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24초 공격제한시간'이 도입되었다.
1949년에 탄생한 NBA는 원래 1954년까지 이전까지 5시즌 동안 공격제한시간 규정이 없었다.
1954년 4월 22일 구단주 투표를 통해 '24초 공격제한시간' 도입이 공식화되었다.
비아손은 '공격 제한 시간의 아버지'로 불리며 NBA의 흥행을 가능케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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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제한 시간' 제시한 비아손, NBA 흥행 돌풍 일으켜
[MHN스포츠 박혜빈 기자] 67년 전 오늘, 미국프로농구(이하 NBA)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24초 공격제한시간'이 도입되었다.
'24초 공격제한시간'이란 공격 시작 후 24초 이내에 슛을 하지 않으면 공격권을 빼앗기는 규칙이다.
![[사진=NBA 홈페이지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4/22/HockeyNewsKorea/20210422144620699pavl.jpg)
1949년에 탄생한 NBA는 원래 1954년까지 이전까지 5시즌 동안 공격제한시간 규정이 없었다.
제한시간이 없다 보니 각 팀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비슷했다. 이기고 있는 팀의 에이스 선수가 공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끌었고, 견디다 못한 상대팀이 공격권을 가져 오려고 파울을 내면 자유투를 얻어 득점하는 식이었다.
4쿼터쯤 됐을 때 경기는 파울과 자유투가 남발하는 난장판이 되었다. 1953년 보스턴과 시러큐스전에서는 '한 경기 자유투 128개'라는 기록이 나왔다.
공격 자체를 안 하기 때문에 저득점 경기도 속출했다. '19대18'이라는 NBA 역대 최소 득점도 1950년 당시 포트웨인과 미네아폴리스와의 경기에서 세워진 기록이다.
게임이 재미가 없다보니 관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많은 팀이 파산 위기에 빠졌다.
![대니 비아손 [사진=NBA 홈페이지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4/22/HockeyNewsKorea/20210422144619667ehgg.jpg)
그때 대니 비아손이라는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비아손은 원래 볼링장을 운영했었다. 1953-54시즌 시라큐스 내셔널스(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팀을 헐값에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비아손의 아이디어는 공격시간에 제한을 둬서 득점을 더 많이 낸다면 관중이 많아질 거라는 것이다. 그는 한 게임 당 평균 120개의 슛이 나온다는 통계에 따라 전체 플레잉 타임(2,880초)을 120으로 나눠 '제한시간 24초'라는 결론을 냈다.
시범경기에 초대된 구단주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격하게 환영했다.

1954년 4월 22일 구단주 투표를 통해 '24초 공격제한시간' 도입이 공식화되었다.
단지 규정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이때부터 저득점의 느릿느릿한 공 돌리기 농구에서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가 시작되었다. 평균 득점은 13.6점이나 늘었다.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도 바뀌었다. 기존 인기 선수 조지 미칸(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은 민첩한 플레이를 하지 못해 결국 코트를 떠났다.
비아손은 '공격 제한 시간의 아버지'로 불리며 NBA의 흥행을 가능케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다.
NBA 공식홈페이지에서는 '비아손이 리그를 구했다', '24초 제한시간 도입은 NBA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24초 공격제한시간'은 농구 경기를 박진감 있게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이제는 공격제한시간이 없는 농구 경기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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