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원짜리 헬로키티 시계..
안녕. 난 디에디트의 신제품 코너 소개를 맡고 있는 객원 필자, 올드리뷰어 기즈모다. [기즈모 pick]은 디에디트의 인싸인 에디터H나 에디터M의 간택을 받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이 놓치면 섭섭한 제품들을 모아 소개하는 코너다.
오늘도 신제품인지 구제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제품들을 몇 가지 준비했다. 이걸 소개하면서도 과연 이걸 사는 사람이 있을까 고민이 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다. 문득 이 원고를 4~5번으로 나눠 쓰면 원고료로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유대인 같은 디에디트 대표와 악마의 계약을 맺었으니 할 수 없다. 오늘도 쉽게 찾기 힘든, 이상한 4개의 제품을 준비했다. 시작한다.
레트로가 계속 유행하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유물론자들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유물론자는 음원스트리밍 업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믿지를 못한다. 저작권료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멜론’을 보라. 데이터만이 유일한 증거인 세상은 플랫폼 업체가 어떤 조작을 해도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내가 들으려는 음악은 바이닐이나 CD로 소유해야 하고 최소한 MP3 파일로 다운받아야만 한다.
카메라 업계도 유물론자 덕분에 레트로 방식이 살아 있다. 즉석카메라다. 폴라로이드가 발명한 즉석카메라는 즉석에서 찍고 즉석에서 인화해 사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즉석카메라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인화지 가격이 너무 비싸고 또 같은 사진을 두 장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통장을 펴서 잔고를 확인해야 했고, 우연히 잘 나온 한 장의 사진을 서로 가지기 위해 머리채를 잡아야 했다. 과연 손에 잡히는 것을 좋아하는 유물론자들이다.
다행히 후지필름의 즉석카메라 브랜드인 ‘인스탁스’가 자사 최초의 하이브리드 카메라인 ‘인스탁스 미니 리플레이’를 출시하며 이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 제품은 디카처럼 사진을 찍어 SD카드에 저장하고 맘에 드는 사진만 골라서 출력할 수 있다. 저장 파일이 남으니 잘 나온 사진은 여러 장 출력할 수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스마트폰이나 디카로 찍은 사진을 포토프린터로 출력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레트로 앞에 너무 많은 의문을 품으면 아무것도 못 산다. 외장 하드만한 CD에 10곡밖에 안 들어가는데 사는 사람도 있다. 의문을 품지 말지어다. 가격은 20만 원대로 오늘 소개하는 제품 중에 그나마 가장 살 만한 제품이다.
나는 15년 전쯤에 모토로라 ‘레이저(RAZR)’라는 스마트폰을 리뷰하면서 내내 감탄했다. 이렇게 완벽한 디자인과 스타일의 휴대폰이라니! 예상대로 모토로라의 레이저는 대히트하며 전 세계 1억 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런데 이후로도 모토로라가 신제품을 내놨다고 계속 제품을 보내오는데 계속 레이저였다. 검은 레이저 다음에 형광색 레이저, 핑크 레이저, 골드 레이저, 레드 레이저, 작은 레이저, 큰 레이저…끝도 없이 레이저를 5년간 보내왔다. 이렇게 끈질긴 레이저라니!
모토로라는 최근에도 폴더블 레이저를 내놓겠다며 15년간 레이저를 우려먹고 있다. 노벨 반복상이 있다면 휩쓸 것 같다. 그런데 모토로라가 이번에는 레이저 대신에 좀 새로운 전화기를 내놓았다. 무려 가정용 전화기다. 이름은 AXH01.
2019년에 가정용 전화기를 내놓았다는 것에 놀라지는 말자.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여전히 가정용, 심지어 유선 전화기를 내놓고 있다. 대신 모토로라는 내부에 알렉사(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를 내장해 가전제품을 제어하거나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어쨌든 가정용 전화기가 그리운 분들은 하나쯤 구매해 보자. 카메라는 붙어 있지 않으니 후지 인스탁스 미니 리플레이를 같이 구매하면 된다.
해외 전자제품 박람회에 가면 삼성전자나 LG전자 또는 소니, 파나소닉 등은 저마다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장식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LG전자는 지난 CES에서 260장의 OLED 패널을 이어 붙인 OLED 폭포를 만들어 많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번에 삼성전자도 압도적인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열린 ‘인포콤 2019’에서 홈 시네마용 디스플레이 ‘더 월 럭셔리’를 선보였다. 이 디스플레이는 무려 146인치, 219인치, 292인치의 3가지 크기다. 참고로 292인치는 7m 40cm로 일반적인 아파트 벽에는 부착이 불가능한 크기다.
모듈형 디스플레이식으로 제작한 제품으로 이론상 크기는 무한대로 확장 가능하지만 무한대의 집은 없으므로 저 3가지 크기만 제공한다고 한다. 역시 친절한 삼성전자다. LED 방식이지만 두께는 3cm에 불과해 벽에 설치하면 벽이 커다란 디스플레이로 변신한다. 여기에 2000니트의 밝기, 120Hz의 주사율, HDR10+ 등의 화질은 고급 삼성전자 TV와 흡사한 규격이다. 다만 가격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는데 이 제품은 맞춤형 설치가 필요한 제품이기 때문에 별도 유통경로를 통해 견적을 받아야 한다. 아마도 억대 가격이 확실해 보인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200인치급 확장이 가능한 200만 원짜리 프로젝터를 구입하면 되겠지만 집 벽이 292인치가 넘는 사람들이 합리적일 리가 있나?
스위스 시계는 아주 값비싸고 우아하며 역사가 깊다는 편견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잘 찾아보면 아주 재미있는 브랜드도 있다. 오늘 소개하는 RJ(Romain Jerome)라는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이 시계 메이커는 2004년 설립된 신생 브랜드로 전통 시계 산업에 마블, DC코믹스 등과 제휴한 시계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포켓몬, 닌텐도, 반다이 등과도 제휴를 맺어 스위스 시계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고 있다. RJ는 올해 6월 국내에 진출하며 앞으로 국내에도 이들의 신제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RJ의 대표적인 컬렉션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 시계는 애로우 시리즈의 ‘투페이스’ 모델로 배트맨의 ‘투페이스’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이다. 다이얼 한쪽이 마치 화상을 입어 근육이 드러난 투페이스처럼 무브먼트가 노출돼 있고 다른 한쪽은 투페이스 상징인 동전이 새겨져 있다. 심지어 케이스조차 한쪽은 검게 그을려 있고 시곗줄도 반쪽이 다르다. 유치하지만 왠지 갖고 싶다. 다만 아무나 살 수는 없다. 가격은 21,800스위스프랑(약 2,590만 원)으로 100개 한정판이다. 성공한 이중인격자들에게 잘 맞는 시계다.
이 시계는 스카이랩 시리즈의 ‘배트맨’이다. 역시 DC코믹스와 제휴한 모델이다. 다이얼에는 배트맨의 상징인 박쥐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다. 75개 한정판으로 이미 2016년에 완판됐다. 세상에는 배트맨이 참 많은 것 같다. 압권은 형광 기능이다. 야간에는 멋진 배트맨 로고가 형광빛으로 빛난다.
그 밖에 동키콩, 팩맨, 스페이스 인베이더, 테트리스 등의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도 있다. 다만 게임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디자인적 요소다.
헬로키티 마니아들을 위한 깜찍한 헬로키티 시계도 있다. 가격도 깜찍한 9,100스위스프랑(약 1,080만 원)이다.
여러분도 성덕(성공한 오덕)의 상징인 RJ워치에 도전해 보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시계가 유용하냐고? 오덕의 명언으로 소개를 마칠까 한다.
“덕심에 효용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법도다.
오덕은 그 자체로 미의 기준이며 오로지 덕의 깊이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