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이동근은 지난 2016년 6개월간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을 출발, 시베리아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22,838km를 달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로카곶의 바람을 느끼고 돌아왔다. 진짜 행복이 뭔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절박하게 고민했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의 끝에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그저 삶의 순간순간이 행복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나는 순간의 의미는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것또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중부사막을 지나 알래스카까지 13,000km를 달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횡단을 끝내고 미국 알래스카까지 약 40,000km를 완성하는 두 번째 북반구 횡단 프로젝트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이번 북아메리카 대륙 횡단에는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그리고 '친구 강성웅 씨가' 함께했다.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연재한다.”
프롤로그

북반구 대륙을 혼자서 달려보겠다는 결심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과연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 좀 더 진지한 확신의 과정, 그리고 몇 개월 동안 학교를 멈춰두고 일을 하며 거대한 짐과 복잡한 서류를 꾸리는 기나긴 과정과 같은 것 말이다.
결심의 과정이 지나자 모든 계획이 단숨에 머릿속에 그려졌다. 앞으로 어딜 가야 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머릿속에 가득 찬 그것을 하나하나씩 분리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이런 작업을 할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행복을 느꼈다.
나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하고 싶었고 ‘행복’이라는 누구나 궁금해할 주제의 답을 찾기를 원했다. 그리고 생각을 담아내는 방법부터 그것을 세상에 꺼내는 방법까지 고통에 가까운 고민의 과정은 늘 쇳가루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차례 넓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상상을 했고, 특별한 의미가 없더라도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공기, 밤하늘의 별 이것만으로도 시작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살아 숨쉬는 대지와 빛나는 별무리 사이에서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또, 여정동안 불행한 일을 당해도 적어도 나는 그토록 갈망하던 과정에서 끝을 맞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후회가 없는 죽음은 없지만, 후회가 없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났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나의 여행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았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후 5개월 뒤, 마침내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5개월 동안 횡단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해둔 것이 거의 없었다. 캠핑 장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전거에 관한 장비는 무지했고 심지어, 자전거는 브랜드 없는 중국산 자전거 한 대를 지인에게 받아둔 상태였다. 그렇게 말도 되지 않는 준비로 출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운명이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기는 싫었는지 여행 준비 막바지에 이번 여정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도움으로 자전거와 필수 장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요한 장비가 남아 있었기에 부지런히 비행기 안에서 가져온 정보를 비교하고 검토해야 했다.

반나절의 곱절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북반구 횡단의 종착지인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우리는 곧, 커다란 자전거 박스와 짐을 차에 밀어넣고 뉴욕 맨해튼으로 향했다.
사실,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 자전거 숍을 다니며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숍에서 페니어백이나 전조등 같은 장비를 다루지 않았다. 숍또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큰 아웃도어 매장을 발견했고 우리는 그 건물로 향했다. 그곳은 자전거 용품과 캠핑 용품을 다루는 큰 숍이었고 여기에서만 지점이 몇 개나 더 되는 듯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필요한 모든 물품을 다 구매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페니어 백을 설치하는 것부터 전조등, 속도계 기타 장비사용법을 숙지하고 옷가지를 팩킹하고 균형을 맞추는 데에 6시간이나 걸렸다. 우리의 준비는 이제야 막 끝났고, 눈앞에 던져진 돌이 어떤 물살을 만들지 그때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4
2017.05.21 날씨 맑음 / 뉴욕 맨해튼 출발-> 뉴저지
총 운행 거리 & 시간 : 42.47km / 3:20:57

페달에 발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후회했다. 시원하게 도로를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된 것만 같았다. 몸통만한 페니어 백은 페달을 밟는 동안 뒤꿈치에 걸렸고 투박하게 매달아 놓은 가방은 균형이 맞지 않아 휘청거렸다.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욱신거려 왔고 팔목은 아려왔다. 30kg이 넘는 짐덩이를 안정적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어설펐다.
맨해튼을 벗어나기까지 1시간 22분 45초가 걸렸었다. 늘 그랬듯이 오랫동안 써왔던 내비게이션에 의존했었지만, 그것은 보란 듯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허드슨강을 한참 동안 따라간 뒤 마주한 것은 돌아가라는 표지판뿐이었고 수많은 표지판은 도통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 갈피를 주지 않았다.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해 머리는 어지러웠고, 멍청하게도 목마름을 달래줄 물 한 병 사지 않고 움직였다.
길을 물어가며 조지워싱턴 다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맨해튼을 빠져나올 때는 몸살기운까지 더해져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성웅아, 내 몸이 좋지 않다.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오늘 거기서 캠핑하자.”
나는 어리석었고, 자만했으며 멍청했다.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고 그냥 하면 될 줄 알았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한 걸음씩 천천히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첫날부터, 나의 여행은 흔들리는 의자처럼 보였다.
[북반구 횡단: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 D+5
2017.05.22 날씨 흐림 & 소나기 / 뉴저지-> Budd lake
총 운행 거리 & 시간 : 108.97km / 8h 48m

아침에 눈을 뜨니 피부가 너무 아렸다. 약을 세 알이나 먹고 잤지만 효과가 크게 없었다. 바람은 면도날을 움켜쥐고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만 같았다. 감기몸살이 생긴 것이 확실했다. 목구멍에는 커다란 사탕이 걸린 듯 침을 삼킬 때마다 거대해진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출발한 지 이틀 만에 몸져누울 수는 없었다. 종합 감기약 한 알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지금 먹는 감기약이 효과가 있든 없든 그것은 나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았다. 평소에 행운을 부르는 부적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믿어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하기로 하고 주변에 풀어놓은 짐을 하나씩 주워 담을 때 문득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시 시작하기는 했구나’

벌써 5개월 전의 일이라 아침 해가 뜰 때 가방을 꾸리고 매듭을 짓는 행위의 신비를 잊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짐꾸러미를 결속하는 단순한 행위는 하루의 균형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매듭이 느슨해서도 너무 단단히 해도 안된다. 적당한 리듬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 적당함을 알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동반했지만 말이다.
다시, 나는 약속을 지킬 필요도, 사회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지도 않아도 되는 ‘삶’으로 들어왔다. 의무가 있다면, 매일 아침 이슬이 맺히는 순간과 붉게, 혹은 푸르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 짐을 챙기고 자전거를 천천히 움직였다. 비는 부스스 내렸지만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그것보다 오늘은 어떻게 달려야 할 지가 더 중요했고, 걱정되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업힐을 마주했을 때,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고 내 숨은 거칠어졌다. 자전거를 즐겨 타지 않았기에 기어비에 대한 감각도 없었고 무턱대고 허벅지의 힘으로 올라가려니 금방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거대한 쇳덩이를 몸으로 지탱해서 올라가려고 애를 썼을 때는, 차라리 타고 올라가는 것이 더 편하겠다고 생각도 했다. 사실, 타는 것도 힘들었고 끌며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온몸에 열이 금방 달아올랐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방식이든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힘들 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과 숲속에 난 길을 따라갈 때였다. 특정한 대가가 없는 단순 노동 같은 이 여행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되었다. 또, 어둑하게 밤이 드리운 산길을 달릴 때의 고요함은 기분을 다시 좋게 해주었다. 주변에 보이는 작은 집은 늦은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지 작은 미등을 켜놓았고 덕분에 주변을 은은하게 드리운 빛은 몽환적인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5시간 30분을 달렸고 또 달렸다. 몇 번을 쉬었는지 셀 수는 없지만, 어제보다는 20km를 더 달렸고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틀동안 라이딩하며 느낀 이 여행의 장점은 하루하루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뿐이다.
언제까지 자전거가 주는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때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이 여정 또한 자연스레 여행이 아닌 그 자체의 삶이 되리라 믿는다.
< 계속.......이동근과 강성웅의 자전거로 떠나는 북아메리카 횡단 여행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건너는 아름다운 두 청년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