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폭력 가해자를 일진이라고 할까?

학교폭력 가해자를 지칭하는 말 ‘일진’.

한자로는 이렇게 쓴다. 하나 일(一) 무리 진(陣).

뜻을 풀이하자면, 하나의 무리 또는 무리(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학교 폭력 가해자를 학교 폭력 가해자라고 부르지 않고, 일진이라고 하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일진이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일진이란 말이 언제부터 지금의 의미처럼 쓰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관련 연구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학교를 중심으로 ‘일진’이란 말이 사용됐고, 90년대 들어서‘일진회’라는 조직의 형태로 실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청소년 폭력 집단에 대한 연구, 이동진, 2003,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실제로 1990년대 이후학교 폭력 조직인 ‘일진회’가 경찰에 의해 어려 학교에서 적발되면서 매스컴을 장식했다. 

심지어 경찰이 최고형량이 사형인 ‘범죄조직구성죄’를 적용한 사례도 있었다. 그만큼 당국이 상황을 엄중하게 봤다는 뜻이다.

일진회 문제가 심각해진 이때를 기점으로, 일진이란 말의 쓰임이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양아치, 깡패, 잘나가는 애 등 다양한 개념을 포함했던 ‘노는 애’라는 말을 일진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의미도 변했다. 여기서 일진이란 개인이 아닌 집단을 의미한다. 노는 애가 아니라 노는 애‘들’이라는 거다. 

학교 폭력 연구자들은 일진이란 말이 노는 애를 대체하면서부터, 학교 폭력 양상도 변화했다고 본다. 

노는 애들이 ‘퇴학’ 당하지 않기 위해 학교 밖에서 교사들의 눈을 피해 활동하는 ‘비주류’였지만, 일진들은 학교의 주류세력으로 교실을 지배하는 권력이 됐다는 것이다.

일진이란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역시 불분명하다. 

어디까지나 추정만 있을 뿐인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일본 만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다. 

당시 경찰에 적발된 일부 일진회 소속 학생들이 일본의 학원 만화를 모방했다고 진술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일 학교 내 폭력조직을 결성해 폭력을 휘둘러온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서울 S중 3학년 신모군(15)등 3개 중학교 학생 26명은 경찰에서 모두 일본 만화책에 나오는 폭력조직의 이름을 따 ‘일진회’ ‘MS’라는 이름의 폭력서클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폭력 방법도 일본 만화책이나 홍콩의 폭력 비디오 영화 등에서 본 것을 흉내냈다고 말했다

이들이 언급한 일본 만화는 모리타 마사노리의 ‘로쿠 데나시 블루스’. 

1980년대 후반에 출시돼 90년대 내내 인기를 누렸던 학원 만화인데. 

한국에서는 ‘비바 블루스’ ‘캠퍼스 블루스’ ‘못말리는 블루스’등의 해적판이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힘의 서열에 따라 일진(一陣), 이진(二陣), 삼진(三陳)으로 구분되는데, 학생들이 따라했다는 것은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 만화에 ‘일진’이란 말이 등장했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불법 복제본인 해적판의 ‘번역’일 뿐. 

일진이란 용어가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보기엔 힘들다. 실제로 일본에선 일진이란 말을 쓰지 않고, 번장(番長·불량서클의 우두머리)이란 말을 쓰기 때문이다. 

즉 ‘로쿠 데나시 블루스 해적판’의 일진은 번장을, 일진회는번장 집단을 한국어로 번역한 말로서, 일진이란 말은 본래 한국 학교에서 쓰이던 말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동진 부연구원은 2003년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학생들이 일본의 만화에서 나오는 일진회를 모방하여 일진회를 결성한 것은 아니고 일진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서 자신들을 일진회라고 하였거나 주위에서 이들을 일진회라고 불렀을 것”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동진 부연구원

일진이 어디에서 유래했고, 언제부터 쓰였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학교 폭력 가해자를 ‘일진’이라고 부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다.

일진은 지칭하는 대상과는 별개로,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미국에선 같은 부류를 가리킬 때 ‘Bully’라는 말을 쓴다. Bully는 문자 그대로 ‘괴롭히다’란 의미다.

게다가 일진은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다. 부끄러운 행동에 부끄럽지 않은 의미의 이름을 단 거다. 

학교 폭력 전문가인 문재현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일진으로 대표되는 학교 폭력 조직 문제가 심각하던 2000년대 초반 “일진들은 과거처럼 싸움만 잘하고 교실에서 잘 섞이지 않는 '비(非)주류'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류 문화'가 되었다”고 분석 했다.

일진이란 말이 학교 폭력의 범위를 협소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 안에는 훨씬 더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폭력,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분쟁들도 포함하는 용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일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학교 폭력을 좀 지나치게 한쪽 측면만 축소시킨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서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 또 가해 학생이라는 단어가 가장 무난하고 정확한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선영 푸른나무재단 상담팀장

하나일 무리진. 일진. 스스로를 무리의 제일이라 착각했다면 오산이다.

뜻을 제대로 풀이하자면, 무리에서 가장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그래서 가장 눈에 띄는 가해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