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짜리 文대통령 신발 만든 성수동 '구두 대통령'?

文대통령 부부 구두 제작한 성수동 장인
해외 순방때 두 장인이 만든 구두 신은 대통령 부부
수십년째 구두 만드는 유홍식·전태수 장인
출처: jobsN
수제화 명장 전태수 대표(좌)와 유홍식 대표(우)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됐다. 밑 창이 닳은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힌 것. 장애우들이 일하는 사회적 기업 ‘구두를 만드는 풍경’에서 만든 구두였다. 2010년 설립된 이 기업은 실적 부진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낡은 구두를 신지 않는다. 구두 명장(名匠)이 이탈리아산 소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구두를 신는다. 지난 7월 문 대통령은 이 구두를 신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났다. 빛나는 검은색 애나멜 구두였다.


구두와 시계는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말이 있다. 각국 정상들 앞에서 문 대통령의 품격을 높여준 구두를 제작한 사람은 ‘서울시 수제화 명장 1호’ 유홍식(69)씨. 50년 넘게 구두를 만들어 온 그는 ‘수제화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 구두 거리의 터줏대감이다. 성수동 ‘구두 대통령’으로 불린다.


미국·독일 순방에서 김정숙 여사가 신은 구두도 성수동 여성 수제화 장인(匠人)인 전태수(63)씨가 만들었다. 두 장인은 ”수십년째 구두를 만들었지만, 이번 주문은 밤 잠 설칠 정도로 긴장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로 출장 가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5월 한 남성이 유씨의 공방을 찾았다. “수제화 제작을 위해 출장을 가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유씨는 거절했다. 10분 가까이 머뭇거리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밝힌 출장지는 청와대.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청와대로 향했다.


“대통령과 악수하며 ‘팬입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씩 웃으시더군요. 낡은 구두와 싸구려 양말을 신고 계셨어요. 양장 구두, 실내용 슬리퍼, 등산화 등 총 6켤레 주문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비슷한 시기, 전씨의 공방에는 젊은 여성 2명이 찾아와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다”며 신발들을 신어보고 사진도 찍었다. 3일 뒤 청와대 직원이 찾아와 김 여사의 구두 제작을 의뢰했다. 유씨가 청와대에 갔을 때, 김 여사의 구두를 만들어 줄 적임자로 전씨를 추천했다.


김 여사는 전씨에게 발의 굳은살을 보여주며 “선거 기간에 하도 돌아다녀서 발이 이렇게 됐다. 편안한 신발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두 굽을 5cm, 8cm로 만들기로 했다. 옷의 기장 등을 고려한 김 여사의 제안이었다. 김 여사의 발 모양을 정확히 신발에 반영하기 위해 석고로 떠서 돌아갔다. 김 여사는 완성된 신발을 찾으러 전씨의 공방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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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순방때 김여사가 신은 버선코구두 (좌)굳은살이 박힌 김정숙 여사의 발을 뜬 석고(중)/김여사가 새로 주문을 맡긴 구두(우)

文 대통령 구두에 숨겨진 비밀 

유씨는 문 대통령의 구두 굽을 만들 때, 여러 조각의 가죽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전통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으로 굽을 만들면, 일반 ‘나무 굽’보다 무겁지만 물에 강하고 오래 사용할수록 무너지지 않고 푹신해진다. 명품 구두는 모두 이 방식으로 굽을 만든다.


이탈리아 가죽을 쓰고, 3cm 키높이 깔창을 넣었다. 문 대통령이 해외 정상들과 나란히 섰을 때, 당당해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6켤레를 만드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원래 50만~60만원 정도 받는 신발들이지만, 켤레당 30만원씩 180만원을 받았다. 그는 “해외 순방의 의미를 고려해 조금 깎아드렸다”며 “대통령 부부의 커플 등산화도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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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식 명장이 만든 문대통령 구두

전씨가 만드는 여성 구두는 끝이 ‘버선코’처럼 위로 뾰족하게 올라간 것이 특징이다. 해외 정상들을 만날 때, 종종 한복을 입는 김 여사에게 제격이다. 굽 5cm, 8cm인 구두를 각 2켤레씩 한복 구두와 양장 구두로 만들었다. “영부인에게 어울리도록 고풍스럽고도 품위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김 여사는 해외 순방 후, 전씨에게 또 구두 제작을 의뢰했다.  

독보적인 기술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 장인

두 장인은 일찌감치 손에 망치를 잡았다. 10대부터 스승을 모시고, 기술을 전수받았다. 광주가 고향인 유씨는 13세때 7만원 들고 상경했다. 서울 정동 판자촌에서 하루 3000원 내고 지내며, 명동의 구두 공장에서 1년간 기술을 배웠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유씨는 고향에 내려가 일주일간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구두장이의 길에 들어섰다.


전씨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강원도 홍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영등포 신발공장에 취직해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온갖 수제화와 기성화를 분해하면서 디자인을 독학했다”고 말했다.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두 장인은 1990년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큰 빚을 진 적이 있다. 유씨는 외환위기 당시 18억원의 손실을 봤다. 전씨는 살던 집, 가게, 차를 모두 팔아 넘겨야 했다. 절치부심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좋은 구두를 만들어 온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단골 손님이 꾸준히 늘었다. 유씨와 전씨는 박원순 서울시장 부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배우 최불암·고두심, 가수 싸이 등의 구두도 만들었다.


유씨는 2013년 12월 ‘서울시 수제화 명장 1호’ 인증패를 받았다. 수제화 명장 호칭은 20년 넘게 수제화를 만든 장인 중 심사위원 평가를 통과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유씨는 당시 짚신 제작법을 구두에 접목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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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제화 명장 1호 인증패

두 장인은 성수동 수제화 산업의 명맥이 끊기게 될까봐 염려하고 있다. 1960년대 태동한 성수동 수제화 산업은 1980년대 꽃을 피웠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국내외 고급 브랜드, 중국산 저가 브랜드 구두가 공급되면서 쇠퇴했다.


서울시와 성동구가 성수동 수제화 거리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두 장인이 볼 때는 여전히 불안감이 크다. 현재 두 장인은 수제화 제작 기법을 가르치는 강연에 나서고,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수제화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어느 누구든 수제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 받아줍니다. 구두를 배우려는 후배가 있으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한국은 세계 기능대회 수제화 부문에서 3연패를 달성한 적이 있을만큼 고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마지막 바람은 저희를 뛰어넘는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에요.”


글 jobsN 박성윤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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