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 속, 2등 시민으로서의 여성

시작하며: “여성 혐오” = 2등 시민론


예전에 서울대생들의 자유게시판인 스누라이프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메갈리아에 관련한 논쟁이 뜨거울 때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2등 시민론이 되게 많아.

2등 시민론이란 표현은 꽤나 낯설었다. 소위 한국에선 여성 차별적인 어떤 시선이나 감정이나 행동들은 ‘여성 혐오’로 치환되어 표현 및 묘사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2등 시민론은 간단히 말해 여성을 남성 다음의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통칭하는 것이다. 여성보다 남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생각들을 모두 2등 시민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 차별적인 시선이나 감정이나 행동들은 ‘여성 혐오’라는 단어로 설명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서 공감을 사고 있지는 못하다. ‘혐오’라는 건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역겨움과 유관한 감정 또는 상태인데,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여성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여성 혐오자’들은 여성을 혐오하기보다는 여성이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상태’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이 글에선 ‘여성 혐오’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일본 애니


한국의 콘텐츠도 상당히 여성 차별적이지만 일본의 콘텐츠에서 그러한 시선이나 관점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주로 필자가 접하는 일본의 콘텐츠는 영화와 애니, 만화인데 애니와 만화에서 이런 차별적 관점은 더욱 적나라하다. 남성보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게 하나의 당연한 코드로 자리매김했달까.


여자 캐릭터들은 거의 항상 남자 캐릭터보다 뭔가 부족하고, 쉽게 위기에 처해지고, 무능하며, 남성에 의존적이고, 겁이 많다.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한다면 〈공각기동대〉 정도일까. 그런데 〈공각기동대〉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공각기동대〉 영화판의 쿠사나기 모토코는 자주 나체로 등장하고,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에선 그 무뚝뚝한 여성 캐릭터가 성격과 어울리지도 않게 박진영이 한때 미스A에게 자주 입혔던 빤스와 비슷한 무엇을 입고 나온다. 주인공인 쿠사나기가 꼭 남성처럼 입으란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출을 할 이유도 딱히 없다.


그나마 영화 〈공각기동대〉에선 그런 노출이 개연성이라도 있다. 전신을 감싸는 광학미채 수트를 이용해 작전을 수행할 때 겉옷을 벗으니까. 그런데 이 부분도 이상하긴 하다. 좀 뒤에선 한 남성 캐릭터가 코트만으로 동일한 기술을 써서 자신의 몸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쿠사나기에게는 전신을 감싸서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즈를 입히면서, 왜 저놈은 코트만으로 클로킹이 되나? 저놈이 더욱 진일보한 기술로 무장한 놈이라서? 이상한 부분이다. 그런데 〈stand alone complex〉의 패션은 개연성도 없다. 일본 콘텐츠에서 여성 캐릭터란 그런 존재다. 비록 강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라도 결국엔 딸감으로 소비되는.


이와 비슷한 이슈가 최근에 리부트된 〈툼 레이더〉에도 있었다. 첫 리푸트 때의 라라 크로프트는 꽉 끼는 나시티와 타이트한 바지를 입었었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는 더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게이머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를 조종하며 게임을 했다.


많은 어드벤처 게임들은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을 택하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겪는 상황을 더 넓은 시점에서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은 웅장한 환경을 보여주기에 3인칭 시점보다 나은 시점은 없다. 그런데 〈툼 레이더〉에서 3인칭을 택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저 S라인의 섹시한 여성을 관음하라’는. 라라 크로프트의 섹시한 몸매도 리부트된 〈툼 레이더〉의 셀링포인트였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다는 비판이 일자 후속작인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에선 라라 크로프트의 복장을 바꿨다. 아래의 이미지들을 확인해보라.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 번에 감이 오실 거다.

(〈툼 레이더〉와 관련해선 강간으로부터 도망치는 경험이 라라를 성장하게 했다는 개발자의 설명이 더욱 큰 이슈가 되었으나 그 이슈는 내가 다른 글에서 자주 다루었고, 지금 내가 쓰려는 글의 내용과 무관하니 다루지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링크를 클릭하시라.)


그럼에도 〈공각기동대〉를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한 이유는 쿠사나기는 어쨌거나 ‘여성임에도’ 옳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여성임에도 옳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은 보자마자 차별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콘텐츠들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표현이다.


대부분의 다른 일본 콘텐츠들에서 여성들이 하는 선택은 딱히 갈등 해결의 답이 되지 못하거나 남주들을 포함한 일행들을 함정으로 이끄는 무엇이다. 남녀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여성의 말을 듣는다는 건 일종의 함정 카드를 발동시키는 거다. 일본 애니 등에서 여성들은 왜인지 항상 틀린 선택을 하고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 그녀들의 선택은 결국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런데 쿠사나기는 ‘여성임에도’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각기동대〉는 예외적이다.

 


여성이 2등 시민으로 등장하는 레퍼런스 몇 가지


레퍼런스를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장면이 어떤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그 장면을 새로운 관점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관점을 통해 해당 장면에서 전에 없던 어떤 경악과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면 이 글은 할 바를 다 한 것이라 본다. 이 글에서 러프하게 다룰 레퍼런스는 〈아인〉과 〈간츠〉다.


이런 글을 적을 때마다 항상 익숙한 패턴으로 “이건 안 그런데요?”라면서 예외적인 작품을 언급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남성향 작품이 주류인 일본 애니계를 비판했는데 〈JUMP〉를 언급하면서 여성향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모든 작품들이 이 글에서 다루는 어떤 꼴통스러움으로 무장한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누구도 모든 작품을 하나의 띠오리로 묶을 수는 없고, 이 글은 그런 시도를 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주류의 뜻이 무엇인지 자알 생각해보길 바란다.


 

여성이 2등 시민으로 등장하는 레퍼런스 1: 〈아인〉

〈아인〉

한 작품의 장르는 작품 속 갈등의 내용이나 성격을 결정짓고, 갈등의 해결방식도 어느 정도 결정짓는다. 아니, 갈등이 장르를 결정한다고 봐야 할까.


예를 들어 한 피자배달부가 주인공의 집으로 배달을 왔다해보자. 로맨스 영화라면 주인공이 상대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어떻게 저 사람의 관심을 얻을 것인가?”가 주요 갈등이 될 것이다. 액션 영화라면 배달부와 주문자가 눈이 마주친 시점부터 묘한 긴장감이 돌 것이다. 피자박스 안에는 물론 피자가 들어있지 않겠지. 포르노라면 한눈에 반한 주문자와 배달자가 곧 피자가 식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격정적인 섹스를 나눌 것이다(일본 포르노라면 “왜 이렇게 피자가 식었냐”면서 주문자가 섹스를 요구할 것이다). 액션의 세계에선 주먹과 총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고, 포르노의 세계에선 섹스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단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이 단순한 공식들이 깨지고는 있다.) 


〈아인〉의 장르는 액션, 첩보물로 정의내릴 수 있다. 이런 장르에서 한 캐릭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부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하거나 똑똑해야 한다. 약하고 멍청하면 이런 세계관에선 쓸모가 없는 존재다. 그런 존재들은 주로 보호받는 역할이 주어진다. 〈마리오 시리즈〉의 피치 공주나 〈젤다의 전설〉의 젤다 공주처럼 약한 캐릭터들은 그저 남성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는 존재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젤다 공주는 링크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아인〉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수는 상당히 적다. 위에서 삽입한 공식 일러만 봐도 10명의 주요 인물 중 딱 1명의 캐릭터만 여성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뭔가 하나씩 빠지는 게 있고, 주체적이지 못하고, 딱히 무력 레벨이 높지도 않다.

주인공의 여동생이 꽤나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는 병약하고 딱히 머리가 좋지도 않다. 일본 애니에서 흔히 등장하는 보살핌이 요구되는 여동생이다. 이 콘셉트가 더 심각해지면(?) 보살핌이 요구되는 여동생은 모에하게 변해서 겁나 귀척을 떨기도 한다. 오니쨩! 으, 극혐.

그나마 싸움 좀 하는 캐릭터로 나오는 여성 캐릭터는 2명이 있는데, 얘네는 다 중책을 가지고 있는 남성의 비서고, 남성 캐릭터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그나마


(스포 주의)


미국인 여성 캐릭터는 충성해야 할 상관을 배신하고 나름 주체적인 길을 걷는데, ‘배신’이란 것 자체도 딱히 긍정적인 코드는 아닌지라 좋은 점수를 주기도 애매하다.

두 인물은 다 평범한 몸매를 소유하지도 않았다. 거유다. 게다가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노출 신에 등장한다. 미국인 여성은 정장을 입고 있는데 팬티라인까지 드러나게 그려놨다. 위의 캡처를 확인해보시라. 이런 걸 전문용어로 서비스이라고 하는데, 일본 애니에 필수 요소처럼 등장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런 걸 좋아하는 애들이 흔하게 말하는 것처럼 서비스 신이 남성 시청자들이나 이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는 여성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없어선 안 되는 거라고 하니까 애써 인정해줘 보자. 내가 정말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저 단발의 여성 캐릭터의 이름은 시모무라 이즈미(下村 泉)다. 잠깐 〈아인〉의 세계관을 설명하자면 이 애니에는 ‘아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아인’들은 인간과 달리 죽지도 않고 검은빛을 띈 사람 형체의 인형 ‘블랙 매터(black matter)’를 소환할 수 있다. 그 인형을 다루는 것에는 나름의 실력이 요구된다. 익숙하지 못하면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


시모무라 이즈미는 주인공 남성보다 이 아인을 오랫동안 조종해왔고, 직업이 직업인 만큼 주인공보다 더 오랫동안 전투 작전을 수행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시모무라 이즈미는 주인공의 지시를 받는 캐릭터로 변한다. 나름의 설명이 있기는 하다. 주인공 캐릭터가 남다른 지력을 가지고 있으니 남자고 여자고 그를 따른다는 설정. 우리가 여기서 봐야 하는 점은 일본 애니에서 남다른 지력을 가진 캐릭터가 거의 항상 남성이란 거다. 일본 애니에서 여성들은 주로 이런 식으로 부속품처럼 활용된다. 예외가 있기야 하지만 별로 없다.


한번은 왠 듣보잡 아인한테 “시모무라상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맡길 수는 없어!”라는 말도 듣는데, 이렇다 할 화도 내지 않는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그 듣보잡한테 “한판 붙어 볼래? 아가?”라고 하거나 말이 끝나자마자 제압했을 거다. 실제로 그 듣보잡보다 강하고 유능하니까.

넷플릭스의 〈아이언 피스트〉에는 싸움 잘하는 여성 캐릭터 콜린 윙이 등장한다. 1시즌 3화에서 그녀는 파이트 클럽에 가서 남성들과 한 게임을 하려는데 남성 사회자가 묻는다.

Sure you wanna do this?

사회자는 그 뒤에 한마디 더 붙인다.

Honey.

이 질문이 함의하는 바는 간단하다. 너 같이 말라빠진 여자가 저 덩치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냐는 것.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상황인지라 “허니”만 빼면 충분히 할법한 질문이다. 하지만 우린 안다. 콜린 윙이 남성이었다면 “허니”를 마지막에 붙이지 않았을 거라는 걸. 콜린 윙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답한다.

Call me honey again I dare you.
한 번 더 허니로 부르면 조져버리겠다.

 

여성이 2등 시민으로 등장하는 레퍼런스 2: 〈간츠: O〉

〈간츠: O〉

영화 〈간츠: O〉에서도 앞서 언급했던 〈아인〉과 꽤나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우선 〈간츠〉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선 세계관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간츠〉 시리즈는 꽤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는 한 미지의 방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에게 무기와 함께 하나의 게임이 주어진다. 그 게임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 일정 점수를 얻게 되는데, 그 점수를 100점까지 모으면 점수를 사용해 환생할 수도 있고, 게임에서 죽은 동료를 살려낼 수도 있다. 게임이 시작되면 또 다른 미지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임무가 끝나면 다시 미지의 방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반복된다. 


게임을 클리어하려면 주어진 대상을 죽여야 한다. 그렇기에 게임에 반복적으로 참여했던 자들은 점점 게임에 능숙해진다. 주어진 장비를 더욱 능숙하게 쓰고, 전에 없던 신속한 몸짓으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발전 없는 캐릭터들이 있다. 〈간츠: O〉에도 그런 캐릭터들이 있다. 바보 소리 들을 정도로 착한 할아버지 하나와 여자 둘.


(스포 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게임에 처음 들어왔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 그가 이전에도 게임에 들어왔다가 환생했던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긴 하지만, 어쨌거나 기억은 지워졌고 처음 들어와서 첫 게임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 게임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허당질을 한다. 그건 그럴듯하다. 한때 ‘게임’에 들어왔어도 환생한 이후 처음 접하는 게임이니까.

그런데 영화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자 둘, 주인공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서 보냈을 여성들은 너무도 무력하고, 감정적이고, ‘게임’를 이해도 못 하고, 겁이 많다. 나름 주인공격으로 등장하는 레이카라는 여성 캐릭터는 제작진이 얼마나 바스트 모핑에 영혼을 담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것 같다. 그녀는 가끔 화면에 등장해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적나라하게 움직인다. 바스트 모핑 CG에 투입한 영혼 1%만 스토리 보강에 썼어도 미야자키 하야오 싸대기 때리면서 아카데미 해외수상 노릴 수 있었을 거다.


레이카는 영화 속에서 정말 무의미하게 등장한다. 그저 보기 좋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존재하기 힘든 완벽한 몸매의 여성으로서, 보호받을 한 명의 여성으로서 등장한다. 그저 영화의 비주얼을 좀 더 그럴듯하게 하기 위해 등장한다. 또 하나, 원작을 반영한다고 그녀를 미모의 캐릭터로 만든 것이겠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녀의 미모는 영화 스토리에 아무런 역할도 안 한다. 미모로 인해 성희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런데 그 성희롱 장면도 딱히 영화에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결국 오사카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마무리하는 건 ‘게임’에 처음 들어온 주인공 남성이다. 여성들은 남성 주인공이 시키는 대로 멀찍이서 라이플을 쏴댔을 따름이다. 타깃을 잡는 것에 있어 나름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짬밥 먹을 만큼 먹었을 여성 캐릭터들은 당연하다는 듯 초심자 남성의 지시에 순응하는 역할에 만족한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한 여성은 결국 죽게 되는데 남성 주인공은 자신이 얻은 100점으로 그녀를 다시 살려낸다. 더 재밌는 건 그녀가 전에도 남주에게 구해진 적이 있다는 거다. 더 오랜 기간 쫄쫄이를 입고 놀았던 그녀들은 왜 발전하지 못하고 신입 남성에게 구해지는 걸까? 역시 일본계에서 여성은 구해지는 존재여야 하는 걸까? 어떤 상황에서건? 누가 됐건?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아인〉과 비슷한 장르에 속하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살펴보자. 톰 크루즈가 연기한 에단 헌트는 싸움을 잘하고, 똑똑하다. 그를 도와주는 너드 캐릭터는 싸움도 그럭저럭하는데 무엇보다 해킹 실력이 발군이다. 또 다른 남성 캐릭터는 싸움을 잘하고 정보를 꿰고 있다. 레베카 페르그손이 연기한 여성 캐릭터, 영국 스파이 역시 싸움을 잘하고 판단력도 좋아 작전을 직접 세우기도 한다. 에단 헌트는 그녀가 세운 작전에 투입된다. 


에단 헌트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통해 살아난다. 에단 헌트가 그녀를 구해줬던 적이 있기에 이 영화를 보고 “이 영화에서도 여성(남성)은 남성(여성)에게 구해지는 존재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능력에 있어서도 남성과 여성의 구별은 아무런 상관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최근 미국 영화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타워즈: 로그 원〉만 봐도 남녀불문하고 전투기를 몰고, 싸움에서도 딱히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한 성별이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는 장면도 요즘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일본에선? 아닌 걸 찾기가 어렵다. 있기야 있지.


 

맨박스, 우먼박스


일본 콘텐츠에는 ‘남자는 어때야 한다’ ‘여자는 어때야 한다’라는 식의 대사가 꽤 많이 등장한다. 마침 내 일베 친구도 카톡 프로필을 “남자답게 하자!”로 해놨다. 수구꼴통들은 이런 걸 좋아하나 보다. 남자답게! 여자답게! 맨박스와 우먼박스가 공존하는 거다. 꽤나 강력크하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늙은이가 주인공 남자를 언급하며 여자 캐릭터에게 말한다.

남자에겐 꼭 이뤄야 할 꿈이 있어.

이런 말이 함의하는 건 뭘까? 여자들에겐 그런 종류의 꿈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다. 꿈의 유무는 성별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오히려 아빠의 빽이 더 관련이 있겠지. 이런 대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남자 대신에 이름을 넣으면 된다. “마리오에겐 꼭 이뤄야 할 꿈이 있어.”라고.

여성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박스가 꽤 많다. 위 캡처는 ‘Flying witch’의 한 장면으로, 여성 캐릭터에게 이삿짐이 많은 거 같다고 하자 여성 캐릭터가 답하는 장면이다. ‘여자는 다 그래여~ 여자는 다 이사할 때 짐이 많아여~’


숨이 막힌다. 턱.


원문: 박현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