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낙랑국과 낙랑군

기자 2021. 3. 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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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최근 지상파 TV 사극의 역사 왜곡이 논란이다. 조선 시대가 배경인 SBS 드라마는 중국식 의복과 소품을 썼다가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다른 방송사 드라마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러브스토리를 다루는데, 초반부에 기억을 잃은 평강 공주가 뜬금없이 부왕을 살해하려는 자객으로 나왔다. 설화로 치부되는 얘기라지만 너무 자의적이다. 사실 온달은 중국 사료로도 확인되는 서기 577년 중국 북주의 고구려 침략 때 선봉장이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삼국사기 고구려전에는 이보다 훨씬 이전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있다. 동화로도 친숙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다. 삼국사기는 “대무신왕 15년(서기 32년) 4월 왕자 호동이 옥저에서 놀다가 낙랑왕 최리와 만났는데, 최리왕이 그를 알아보고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고 기록했다. 그해 고구려가 쳐들어왔는데, 최리왕이 국보인 자명고와 고각을 찢은 공주를 죽이고 항복했다고 돼 있다. 낙랑국은 5년 뒤 멸망했다. 같은 해 신라가 투항해온 낙랑국 사람 5000여 명을 6부에 나눠 살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최리왕의 낙랑국은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아니다. 낙랑군은 대방군과 함께 서기 313∼315년 고구려 미천왕에게 축출됐다. 윤내현 동국대 교수 등은 낙랑군이 지금의 중국 베이징(北京) 동북쪽인 난하 서부로 쫓겨났다고 본다. 호동왕자 때 옥저의 영역은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여서, 그와 만난 최리왕의 낙랑국은 그 서쪽인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낙랑국은 서기 37년 고구려에 멸망된 이후 기록에 없다가 300년에야 삼국사기(신라전)에 “그 지배세력이 신라에 투항했다”고 등장한다. 학계 통설대로 한사군인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면, 낙랑국은 한반도에 있을 곳이 없다.

국내 사학계는 대체로 낙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낙랑군의 위치가 잘못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아예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기류도 강하다. 물론 고대사는 사료와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유독 한국 고대사 연구에는 이해 못 할 수수께끼와 역설이 많다. 중국의 동북공정·일제 식민사학 극복이 긴요한 과제다. 새 학기도 맞았으니 쟁점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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