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양동근, SNS 댓글 남긴 이 남성을 찾아온 사연
여인네가 탐내는 남정네 한복 ‘희노애락’ 디자이너 박상준
반쪽짜리 안경테, 상투를 튼 머리,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 길에서 그를 우연히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시선을 보냈을 법하다. 자신을 ‘남정네 한복쟁이’로 소개하는 남성 한복 브랜드 ‘희노애락’의 디자이너 박상준이다.
박상준 씨는 ‘여인네가 탐내는 남정네 한복’이라는 신조로 2014년 남성 한복 브랜드 ‘희노애락’을 만들었다.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주로 만드는데, 전통 복식보다 길이가 짧고 품이 좁은 게 특징이다. 요즘 말로 ‘슬림핏’ 스타일이다. 서양 복식과 함께 입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멋스럽다. 거기에다 데님이나 면, 수입 원단 등 다양한 소재로 자유분방한 개성을 표현한다. 100% 고객 맞춤으로 제작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선과 태를 창조하고 있다.
경남 삼천포에서 나고 자란 박상준 씨는 어려서부터 구두나 헤어,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품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패션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보고부터다.
“당시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 ‘솔리드옴므’의 우영미 대표가 지은 남성 정장 한 벌에 매료됐어요. 블랙 슈트 한 벌을 보고 ‘남정네 옷이 우아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죠. 그때부터 ‘옷쟁이’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그는 반에서 소위 ‘튀는’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이 힙합이나 캐주얼 차림을 즐겨 입을 때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바지를 입거나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 화려하게 연출했다.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고, 입고 꾸미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에게 옷쟁이는 천직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꿈을 찾아 상경해 서울모드패션직업전문학교에 입학했다.
SNS에 올린 직접 만든 한복이…
디자인 학교에 들어와 처음 일 년은 서양 옷을 주로 디자인했다. 평소 좋아하는 ‘클래식, 모던, 빈티지’의 감성을 담은 기성복 브랜드를 구상하고 론칭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접한 다큐멘터리가 또다시 그를 새로운 장르로 이끌었다.
“다큐멘터리에서 한복을 소개하는데 그 안에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선과 태가 모두 담겨 있었어요. 한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클래식한 옷인데, 선과 태만 달리해도 모던한 옷이 되지요. 또 소재를 바꾸니 빈티지한 옷이 됩니다. 제가 원하는 ‘클래식, 모던, 빈티지’가 모두 담겨 있었죠. 한복은 사람이라는 옷걸이를 만나면 아름다운 태가 나고 자연스러운 곡선이 생겨요. 가장 이상적인 옷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준비하던 서양복 브랜드를 모두 접고 백지상태에서 한복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한복 구조와 구성, 역사, 만드는 공정, 남과 여의 한복 구분, 착용법 등 한복에 대한 기본을 공부했다. 부족한 부분은 교수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한복 관련 책을 추천받아 독학했다. 직접 한복을 지어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선과 태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신을 ‘남정네 한복쟁이’로 소개했다. 말은 곧 현실이 됐다.
브랜드 론칭을 준비할 무렵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SNS에 직접 만든 한복을 올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주문이 들어왔다.
“첫 고객은 학교 후배였습니다. 클래식 재킷을 만들려고 사 놓은 레드 타탄체크의 프랑스 원단으로 한복 바지를 만들어 SNS에 올렸는데 그걸 보고 옷을 맞추고 싶다는 거예요. 2벌이나 주문했습니다. 며칠 안 돼 1주에 2~3명씩 주문이 들어왔어요. 자연스럽게 판이 벌어진 거죠.”
일상복으로도 손색없는 그의 한복은 파격적인 소재로 멋을 살려 감각적인 패션을 선호하는 20대의 큰 호응을 받았다. 내친김에 그는 2014년 한복 브랜드 ‘희노애락’을 론칭했다.
박상준 씨가 만드는 한복은 100% 개인 맞춤으로, 옷 입는 사람의 체형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한다. 본뜨기, 마름질, 재단, 봉재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하므로 한 벌을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은 보통 3~5일 정도, 주문이 밀리면 5~10일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바지 하나에 10만~15만 원대인데, 원단 종류에 따라 가격 차가 있다.
그는 전반적으로 전통 한복의 복식 틀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소재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동안 군용 원단으로 지은 두루마기나 청지에 물 날염 처리한 청 두루마기, 아웃도어 패브릭을 활용한 바람막이 저고리 등을 세상에 내놨다. 늘 새로운 디자인과 원단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게 그의 즐거움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적색인데, 우리나라 정서상 적색을 메인으로 옷을 만들지는 않아요. 그래서 스티치, 우리말로는 상치미라 하는데, 바깥 바느질 선과 모든 봉제사, 안감을 적색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죠. 한복의 기본 구조와 구성은 유지하면서도 깃과 섶, 고름을 느낌대로 표현하고 있어요. 우리 옛것의 태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재로 모던함과 빈티지를 더했습니다.”
부담 없이 즐기는 한복
옷을 만들다 보니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평소 팬이었던 가수이자 배우 양동근 씨에게 SNS로 ‘한복을 협찬하고 싶다’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어요. 제 한복을 볼 수 있도록 SNS 계정을 알려주었는데 두어 시간 만에 만나자는 답장이 왔습니다. 이틀 뒤 그가 학교로 찾아왔어요. 그동안 지은 한복을 샘플로 보여주니 그중 뱀피 무늬의 금색 한복 상·하의를 고르더군요. 평소 아방가르드 패션을 추구해온 양동근 씨와 딱 맞아 떨어졌죠. 그 복장으로 2015년 KBS 불후의 명곡 설 특집 무대에 올랐어요. 무대의상은 녹화 당일까지 작업했습니다. 백댄서 의상까지 총 6벌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었죠. 쉽지 않았지만 모두가 만족한 결과물이 나와서 뿌듯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를 계기로 작년에는 가수 정재형이 먼저 한복 협찬을 의뢰해 왔다. 흑색 계열의 두루마기와 한복 한 벌을 지어 그해 방송을 탔다. 앞으로도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에게 한복을 지어 입혀 컬렉션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의뢰자와의 추억에 불과합니다. 얘깃거리, 스토리텔링일 뿐이죠. 디자이너로서 순수한 컬렉션은 아직 실물로 표현한 게 없어요. 디자인 노트에 담긴 작품을 토대로 올해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내 나이 서른을 기점으로 어느 봄날 ‘희노애락’을 공식 론칭하고 서울 패션위크나 세계 패션 컬렉션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복을 짓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복을 한국인의 일상복으로 인식할 만큼 한복이 대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희로애락을 두 자로 표현하면 ‘인생’이고, 인생을 한 글자로 하면 ‘삶’이 됩니다. 희로애락은 풀어 말하면 네 가지의 감정이 담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죠. 살면서 이 네 가지 감정을 충실하게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 죽어도 한이 없지 않을까요. ‘희노애락’은 제 옷 브랜드이자 인생철학입니다.”
글·사진 jobsN 조선뉴스프레스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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