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이프 아들, 중국 떠나 25년 만에 바르사 복귀..'직책은 기술 고문'

신동훈 기자 2021. 6. 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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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디 크루이프가 25년 만에 바르셀로나로 귀환했다.

크루이프는 "25년 전에 바르셀로나를 떠났는데 다시 돌아와 감회가 새롭다. 집에 온 느낌이다. 누구보다 팀을 잘 알고 있다. 동기부여는 매우 크다. 우리 가족은 정말 바르셀로나를 사랑한다. 아버지 명성에 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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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르셀로나

[인터풋볼] 신동훈 기자= 조르디 크루이프가 25년 만에 바르셀로나로 귀환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더 고평가를 받는 까닭은 현대 축구 전술 기반인 토탈 사커의 선봉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구선수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춘 육각형 선수였던 부분도 장점이었다.

바르셀로나와의 인연도 깊다. 1973년 아약스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입단했는데 네덜란드 무대를 휩쓸었던 능력을 스페인에서도 보여줬다. 드리블, 공격 전개 능력, 창의성, 득점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5년밖에 뛰지 않았지만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해 아직까지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선수로 뽑힌다.

선수 시절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바르셀로나에 기여했다. 크루이프 드림팀을 만들어 라리가 우승 4회를 일궈냈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전신) 트로피까지 들어올리는 영광을 선사했다. 높은 축구 지능과 패스를 기반으로 한 특유의 전술을 이식해 바르셀로나 축구 근간을 만들었다.

라 마시아라는 유스 시스템까지 건설했는데 여기서 성장한 선수가 바르셀로나 최전정기를 이끈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이다. 이처럼 크루이프의 노력으로 바르셀로나는 유럽을 대표하는 메가클럽이 될 수 있었다. 구단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아들 조르디 크루이프도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했다. 1군 데뷔까지 이뤘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고 1996년 팀을 떠났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스파뇰 등에서 뛰었다. 현역 은퇴 후엔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최근까지는 중국 슈퍼리그 소속 선전FC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후안 라포르타 바르셀로나 회장 제안을 받고 기술 고문으로 캄프 누에 돌아왔다.

무려 25년 만에 친정팀 복귀였다. 크루이프는 "25년 전에 바르셀로나를 떠났는데 다시 돌아와 감회가 새롭다. 집에 온 느낌이다. 누구보다 팀을 잘 알고 있다. 동기부여는 매우 크다. 우리 가족은 정말 바르셀로나를 사랑한다. 아버지 명성에 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전했다.

크루이프는 자신의 장점으로 다양한 경험을 꼽았다. 그는 스페인을 넘어 잉글랜드, 이스라엘, 에콰도르 등에서 선수, 감독, 경영진으로서 활약했다. 이에 대해 "정말 많은 곳을 다니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직면했다. 이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전 소속팀 선전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 않았다. 크루이프는 "선전에 매우 감사한다.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선전은 중국 최고 클럽이 될 게 분명하다. 나의 꿈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만 아니었다면 선전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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