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시화기행>캉캉과 毒酒에 취해..'예술의 밤' 꽃피웠다

기자 2021. 2. 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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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송화분분, 162×259㎝, 혼합재료에 먹과 채색, 2020.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거리. 게티이미지뱅크

■ (63) 몽마르트르의 예술카페

피카소-엘뤼아르, 고흐-아르토 처럼

화가·문인·음악가·조각가 등 상호교류

술먹고 토론하며 예술적 경계 허물어

물랭루즈·물랭 드 라 갈레트·라팽아질 등

언덕위 카페들 그림·문학으로 재탄생

가난한 예술가엔 전시장 역할 하기도

“이곳에 와서 그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감이 무한 확대되고 열려 나가는 것을 느낀다.” 보들레르가 말한 이곳은 어디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그 ‘이곳’은 대체로 피카소, 모딜리아니의 작업실이 있던 ‘세탁선’과 르누아르의 단골카페 물랭 드 라 갈레트가 있던 르픽 거리, 그리고 몽마르트르 미술관이 있던 코르토 거리, 로트레크의 작업실이 있던 콜랭쿠르 거리 같은 곳이었고 ‘그들’은 화가, 조각가, 음악가들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내리면 가스등이 켜진 가난한 언덕과 골목의 ‘그곳’ 카페들에는 아연 활기로 부풀어 올랐고 위트릴로, 부댕, 드가, 로트레크, 고흐 같은 화가들은 무도회가 열리는 술집들을 순례하며 소용돌이치는 듯한 무희의 드레스와 독주 압생트 속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부딪쳤던 것이다. 부딪치고 부딪쳐라. 그러면 창조의 새 장이 열리리라는 듯이, 장르와 장르,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며 이렇게 다른 동네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단 보들레르 같은 시인뿐 아니라 화가, 조각가, 음악가 쪽에서도 문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시야가 더 확대됐을 것이다. 피카소는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를 만나 초현실주의의 선봉장이었던 그로부터 현실 너머의 또 다른 현실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단초를 얻게 됐으며, 인생에는 고통의 드라마가 있다며 헌 구두 한 켤레를 남긴 채 죽었던 고흐는 연극 연출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를 만나게 되는데, 10년 가까이나 정신병원에서 지냈던 아르토가 요양소 침대 밑에서 헌 구두짝을 손에 쥔 채 세상을 떠난 것까지 이 두 사람의 인생 마지막은 흡사했다. 폴 세잔(Paul Cezanne)과 에밀 졸라(Emile Zola)는 우정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예술 세계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었고, 드가는 시인 폴 발레르(Paul Valery)를 통해 그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서설’을 읽음으로써 ‘우아함을 잃지 않는 엄격한 정열’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말하자면 각자의 좁은 골목길에서 걸어 나와 ‘광장’에 모임으로써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며 새롭게 열리는 것을 확인했던 것. 대체로 그들의 경로란 이렇게 그려진다. 해가 지면 가난한 화가들이 각자의 공방에서 걸어 나와 ‘물랭 드 라 갈레트’나 ‘라팽 아질(Lapin Agile)’을 거쳐 르픽 거리의 작은 식당들에서 요기 한 후 블랑슈 광장을 마주하고 선 붉은 풍차의 집 ‘물랭루즈’로 모인다. 취기가 돈 관객들은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을 향해 “더 높이! 더 높이”라고 외친다. 번쩍번쩍 치켜드는 그녀들의 다리를 더 높이 올리라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라 굴뤼! 더 높이!”다. 라 굴뤼는 로트레크의 그림에도 나오는, 그곳의 베테랑 무희였고 예술가들과 두루 친했다. 물랭루즈의 ‘기록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던 로트레크는 들어 올릴 수 없는 자신의 다리 대신 번쩍번쩍 올라가는 무희들의 다리와 현란한 춤, 관객들의 표정들을 놀라운 속도의 필치로 그려나갔다.

그런가 하면 르누아르는 같은 무도회를 그렸지만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처럼 정적이며 우아한 파리지앵의 모습으로 담아냈다. 물랭루즈에서마저 고독했던 고흐는 홀로 떨어져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고 로트레크는 다시 능숙한 필치로 그의 그런 모습까지 담아냈다. 몽마르트르의 카페나 주점들을 그려내는 화가들의 필체는 그야말로 백인 백색이어서 고흐는 네덜란드의 전원풍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답게 내부의 현란한 모습보다 그 외관을 초록 풍경화로 그려냈다. 물랭루즈가 로트레크에게 미술학교였던 것처럼 르누아르에게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하나의 스튜디오인 셈이었다. 가까이에 작업실을 얻어놓고 출퇴근하다시피 그곳으로 와 사람들의 동선과 섬세한 표정, 그리고 대화하거나 춤추는 모습들을 담아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 랭보의 단골 카페인 라팽 아질에서는 늘 반쯤은 취해있는 화가 위트릴로와 한쪽에서 뭔가를 쓰고 있는 아폴리네르, 그런 그를 그리고 있는 마티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 예술카페들은 종종 화가들의 전시회장이나 음악가들의 공연장으로 바뀌기도 했다.

“내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파리에서 전시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했다는 고흐도 일군의 동료 화가들과 함께, 비록 정식 갤러리는 아니었지만 카페에 그림을 걸 수 있어서 행복해했다. 화가들이 담아낸 몽마르트르의 풍경은 마네의 ‘카페에서’, 고흐의 ‘카페’, 피카소의 ‘압생트 술병’, 위트릴로의 ‘카페 라팽 아질’,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 로트레크의 ‘물랭루즈에서’ ‘빈센트 반고흐의 초상’ ‘술 마시는 여자’ ‘춤추는 여자’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나의 거리, 하나의 장소가 이토록이나 사람들의 생애를 붙들었던 경우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이 문학과 예술의 벨에포크 시대를 미국의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미드나잇 인 파리’로 소환해 낸 바 있다. 그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다가 가까운 몽마르트르 묘원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몽마르트르는 이제 가난하게 살다 별이 된 그들이 밤이면 내려와 꽃으로 피어나는 동네가 됐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무희들과 동고동락한 로트레크… 랭보·생텍쥐페리도 카페狂

- 몽마르트르 카페와 예술가들

가장 대표적인 몽마르트르의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물랭루즈’의 로트레크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르누아르를 들 수 있다. 신체 장애가 있었던 로트레크는 거의 ‘물랭루즈’에서 무희들과 먹고 자다시피 했고 르누아르는 아예 ‘물랭 드 라 갈레트’ 옆에 스튜디오를 구해 그곳에 드나들며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들을 그려냈다.

몽마르트르 카페의 단골 문인들로서는 시인 랭보와 콕토, 보들레르 등을 들 수 있고, 소설가로는 생텍쥐페리, 도데 같은 사람이 있었다. 훗날 세계적 대가가 된 음악가 에릭 사티는 몽마르트르의 주점에서 일당을 받으며 샹송을 연주했다.

그곳에서의 단골 메뉴로는 ‘빨리 빨리 음료수를 달라’는 러시아 말에서 유래했다는 프랑스식 간편 ‘비스트로’와 적게 마시고 빨리 취할 수 있는 독주 ‘압생트’가 있다. 몽마르트르의 벨에포크가 그대로 파리의 벨에포크가 됐을 만큼 그곳은 프랑스 문예 부흥의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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