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역배우 시절에만 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온 안성기는 1965년 영화 <얄개전>을 마지막으로 약 10년간 공백기를 가진다. 여러 진로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영화 제작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김기영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진 못했고, 이후 조연으로 출연한 <제3공작>, <야시>, <우요일> 등에서도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병사와 아가씨들>(1977)
<제3공작>(1978)



그의 진정한 복귀는 1980년대가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대마초 해금 사건 이후 돌아온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 출연해 서울의 변두리 개발 지역에 사는 순박한 청년 덕배로 열연하며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충무로 대표 배우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듬해 영화 <오염된 자식들>에서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해진 사장의 딸과 정략결혼한 후 도덕적으로 타락해버리는 대기업 말단 사원 병구를 연기했고 이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같은 해 소설 '익명의 섬'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안개 마을>에서 주인공 깨철이를 연기하며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또 한 번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다.


<철인들>(1982)
<적도의 꽃>(1983)



그중 가장 화제였던 작품은 단연 <깊고 푸른 밤>이었다.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과 두 남녀의 어긋난 사랑을 그리며 크게 흥행했고, 안성기는 또다시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또 안성기는 <바람 불어 좋은 날>부터 함께 한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서도 꾸준히 주연을 맡아 열연해오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배우가 되었다. 80년대가 안성기의 시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톱 여배우들이던 장미희, 이미숙, 유지인, 이보희, 황신혜 등이 모두 안성기의 상대역을 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어둠의 자식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등 이장호 감독은 시대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부터 상업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고, 그 작품들에는 모두 안성기가 주연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이장호 감독과 함께 한 영화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당대 인기 만화였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인기와 탁월한 캐스팅에 힘입어 1986년 국내 흥행 영화 1위에 올랐고, 후에 <이장호의 외인구단 2>가 나오기도 한다. 안성기는 출연하지 않았다.
당대를 주름잡은 안성기의 더 많은 리즈시절 사진들과 함께 마무리! 홍콩과 미국 느낌을 적절히 섞은듯한 이국적인 분위기와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마치 할리우드 스타의 과거 사진을 보는 듯하다.
<깊고 깊은 그곳에>(1984)

<깊고 푸른 밤>(1984)

<황진이>(1986)

<내시>(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