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조작된 범행, 잃어버린 30년에도 미안함을 모르는 이들(종합)

이민지 2021. 2. 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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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민지 기자]

장동익, 최인철씨의 억울한 시간은 누가 배상해줄까.

2월 2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30년 만에 누명을 벗고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찾아가는 장동익, 최인철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강력반 공 형사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건 1998년 9월, 부산 한 재력가 집에 전화가 한통 걸려오면서부터다. 아무런 말 없이 끊어진 전화. 똑같은 패턴의 전화가 9번이나 이어진 후에야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부의 9살 난 외동딸을 납치한 유괴범이었다. 편지를 보냈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은 범인은 딸아이가 직접 쓴 편지와 범인이 왼손으로 쓴 것으로 보이는 협박 메시기자 있었다. 유괴범은 5천만원을 요구했고 한달여간 유괴범과 숨바꼭질을 했다. 탐문수사를 통해 용의차량을 알아낸 공형사는 경비원으로 잠복해 범인을 잡았고 아이는 33일만에 무사히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어려운 사건도 실마리를 풀어내며 범인을 검거해온 그는 4번의 특진을 한 경찰의 전설이었다.

그런데 전설의 공형사와 기이한 인연으로 엮인 이들이 있다. 21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기수로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최인철씨다. 모범수로 감형돼 8년 전인 2013년 세상에 나온 그의 죄명은 살인이었다. 몹시 추웠던 1990년 겨울, 부산 엄궁동 갈대 숲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한 여인. 2인조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2인조 범인은 부산 엄궁동 강변에서 차를 세워두고 데이트 즐기던 연인을 가스총으로 위협한 뒤 여성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인했다고 한다. 범인들과 격투 끝에 간신히 달아났다는 피해 남성의 진술과 현장 흔적에도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그런데 1년여 뒤 한 남자가 잡혀오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그 남자가 바로 최인철씨다. 그의 친구 장동익씨도 검거됐다. 억울한 누명이라 주장했던 두 사람의 말을 경찰도 검찰도 판사도 귀기울이지 않았고 이들은 무기수가 됐다. 그리고 지난 2월 4일, 사건 발생 30년 후에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이들은 왜 30년간 살인범 누명 속에 살아야 했을까. 장동익씨는 "공XX라는 사람은 당시 형사 과장이다. 사건 얘기 하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종이쪼가리 던지면서 '자백 받아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당시 두 사람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낸 이들을 이끈 형사과장이 바로 공형사인 것. 최인철씨는 "와사비 같은 걸로 고문하더라. 도저히 못 참겠더라", 장동익씨는 "미치겠더라. 진짜 죽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공형사가 이끌던 수사팀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은 왜 하지도 않은 범행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최인철, 장동익씨는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는 잔인한 기억이 있다. 고문이다. 형사과장이었던 공형사에게 항변했지만 더 독해졌다는 고문. 최인철씨는 "내가 고문 당하면서 오줌을 지렸다. 새 팬티를 주더라. 갈아입으라고 했는데 또 늦게 갈아입는다고 두드려 팼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XX가 고문하는걸 몰랐을까. 묵인하에 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최인철씨가 경찰에 체포된건 살인사건과 무관한 일 때문이었다. 공무원을 사칭해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붙잡힌 최인철씨. 그는 "경찰이 갑자기 공범이 둘이었다는데 하나는 누구냐 했다. 그 친구는 아무 관련 없다고 했다. 뒤통수 때리고 가버리더라. 그 뒤로 고문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후 장동익씨도 체포됐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엮었다. 피해 남성 김씨는 데이트를 하던 중 여자친구 박씨가 물을 뜨러 간 사이 2명의 남성이 가스총을 가져와 협박하고 결박한 뒤 물을 가지고 돌아온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장동익, 최인철씨는 당시 현장에 가지 않았고 모르는 사건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공형사는 지난해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의 만남에서 "사건을 상세히 이야기 할거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기억을 못한다. 그런 사건을 형사들이 했다 정도지 지휘하거나 한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내 경험에 의하면 그 범인이 그 당시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변화 없다. 당시 기록을 보면 증거라든지 물증이라든지 뭔가 그 안에 있었을거다. 그 안에 있으니까 유죄가 나지"라고 말했다.

장동익, 최인철씨를 처음 만나 의혹을 최초 보도한 기자는 "처음 만난 날 4,5시간 정도 길게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처음엔 하나도 안 만났다. 20년 넘게 한 공간에 오랫동안 계시고 그 안에서 하나만 생각하면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믿기 시작한 건 두 사람이 가져온 보따리 때문이었다. 기자는 "수사기록, 재판기록이었다. 이거는 한번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며 "강도 살인, 강도 상해, 강도 강간, 적용 가능한 강력범죄가 거의 적용돼 있었다. 살인사건인데 수사 기록 속에 증거가 없었다. 이 사람들의 유죄가 확정되게 했던 증거는 이분들의 자백 밖에 없었다. 자백 하나였다. 변호사님이랑 일면식도 없었는데 수소문을 했다. 억울한 사람들이 있는데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고 박준영 변호사를 언급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내가 진행했던 여러 재심 사건 중 가장 조작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 생각한다. 잔인한 범죄의 가해자로 만드는데 있어서 증거 조작이 너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판결문만 검토하고도 가혹행위를 의심할 수 있었다고. 진술서와 조서를 보면 현장 검증 사진과 진술, 범행 도구도 몇차례 변화도 보였다. 장동익씨는 진술이 바뀐 당일 물고문이 있었다고 했다. 각목으로 살해했다는 진술이 시신의 상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동익, 최인철씨가 살인 혐의로 조사 받던 시기, 함께 유치장에 있었던 수감자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무 불쌍하더라. 나도 4,5일 정도 거기 있었는데 계속 그런걸 봤다. 멀쩡하다가 조사 받고 돌아오면 옷이 젖어있고 입술이 파랗고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멀쩡했는데 갔다 오면 멍도 나고 입도 찢어지고. 닭다리처럼 뒤로 뒤집어서 묶어 매달아놓고 고춧가루 탄 물 붓고 그런 이야기를 그 사람이 해줬다"고 회상했다.

'그알'은 5년 전 당시 사건 담당 경찰들을 만난 적이 있다. 2016년 취재 당시 "그분들이 진짜 범인이냐. 억지로 끼워맞춘거냐"는 질문에 박XX 형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허XX 형사는 "현직에 있다 정년 퇴직했는데 내가 엄궁동 사건 범인을 검거한 당사자다. 그 사건으로 내가 특진도 하고 그랬다"고 제보 전화를 했으나 정작 만남을 피했다. 2018년 홍XX 형사는 "전과 하나 없는 사람을 패서 범인으로 만든다? 이해 안된다. 그때 박종철 사망사건 이후인가. 고문같은거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고문이 문제 되면 바로 날아가는 시기였다"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3년여간 부산지역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보도는 30건이 넘었다.

경찰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다음날 인권보호 가치를 재인식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이런 일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공식입장을 냈다. 박준영 변호사는 "너무나 형식적이고 진정성 없다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화성사건도 내가 변호했는데 사과문이 똑같았다. 어떻게 사과문까지 똑같이 썼을까. 사안도, 사건도 다르면 사과문도 달라야 하는데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고 지적했다.

공형사는 자신을 찾아온 '그알' 제작진에게 "무죄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다. (수사가) 잘못된 것 하나도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억울하다. 자백을 받아내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가 판단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또 재심을 해야 될는지 아닐지 할 정도로 믿지 못하겠다. 지금 사과하고 뭐 할 거리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낙동강변에서 피해자 박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이곳을 빠져나간 범인은 누구일까. 사건 발생 다음날 발간된 지역 신문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생존자인 피해자 김씨에 대한 의혹이 담긴 기사가 있었다. 당시 취재 기자는 "사건을 처음 접한건 신년 연휴 기간이었다. 아는 당직 형사로부터 살인사건이 났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아서 바로 갔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초동수사를 담당한 경찰서를 담당하고 있었다. 기자는 "피해자 모습을 봤을 때 사적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참혹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피해자 김씨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자술서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기자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당연히 보여야 할 행동과 처신을 하지 않았다. 청 테이프가 내 차 트렁크에 있으니 열고 그 테이프로 날 결박하라고 했다는 것도, 일반적 사람이 과연 그런 생각을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발표한대로가 진실이었다면 김씨가 취할 행동은 범인으로부터 도주해서 최초로 신고하는건데 이 분은 단지 추우니까 따뜻한 곳에 숨어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사건을 분석한 전문가들도 이 점을 의아하게 봤다. 박지선 교수는 "사료 공장에 가서 직원들한테 한 말은 추우니까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달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남아있는 걸 알면서 끝까지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초 신고자는 김씨를 치료한 의사였다. 김씨의 상처는 얼굴을 비롯해 신체 전면분에 집중돼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2인조 남자 중 키가 작은 남자와 물속에서 격투했다고 진술했다. 그 사람이 바로 장동익씨다.

그런데 장동익씨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장동익씨 측은 항소심에서 시력검사 결과를 제출했다. 30년 전에도 시력이 좋지 않았다. 김씨의 진술대로라면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장동익씨가 도망가는 피해자를 잡아다 물속에서 격투까지 했다는 말이다. 피해자 김씨 진술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물을 뜨러 갔다 돌아온 박여인이 괴한을 보고도 달아나는 대신 괴한들에게 물을 건넸고 김씨도 그 물을 나눠마셨다는 것이다. 오윤성 교수는 "여기에 나오는 대화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진술 자체가 비논리적임에도 이 사람을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다"고 지적했다.

김씨도 꽤 큰 부상을 입은 상태.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법의학적으로 보면 주어진 사건과 어울리지 않는 손상이다. 괴력을 가해지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웅크린다든지 손으로 자신을 방어하는데 손등이나 팔 이런데 손상이 없다. 가스총으로 구타당했다 그러는데 구타 당했다고 보기에는 국소적이다"며 "본인이 자해할 수 있는 신체 전면부에 산재돼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 장동익, 최인철씨 혐의는 낙동강변 살인사건 뿐이 아니었다. 현직 경찰을 상대로 한 특수강도 혐의도 있었다. 이 사건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 사건 피해자 경찰관 한씨는 억울하다고 했다. 한씨는 "그 XX들 팔자폈네. 이 나라 꼴이 재판을 그런 식으로 해서 되겠나. 동의 못한다. 열 받게 하지 말아라. 재판 꼴이 그게 재판이냐"며 분노를 드러냈다. 두 사람이 범인이 확신하다는 주장이다.

경찰관 한씨가 당했다는 강도 사건은 1989년 한적한 강변에서 발생했다. 차 속에서 데이트 중 2인조에게 강도를 당했다는 것. 칼로 위협하는 두 사람 때문에 봉투에 넣어놨던 7만원을 덩치 작은 범인에게 줬다는 한씨. 범인들을 한씨를 결박한 뒤 트렁크에 감금시켰다고 했다. 2년 뒤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한씨는 "유사한 놈을 잡았다고 했다. 데려오면 단번에 알지. 데려왔다. 이 XX 맞네. 긴가민가 한게 어딨냐. 긴가민가 한 걸 가지고 남의 인생 조지면 안되지"라고 확신했다. 깜깜한 밤에 일어난 범행에 범인의 얼굴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한씨는 "그래도 다 보면 알 수 있다. 얼굴을 탁 마주쳤다"고 말했다. 그날 한씨와 데이트 했던 여성도 범인 얼굴을 봤을까. 한씨는 "처음 만난 여자다. 그 후로는 못 봤다. 도망갔다. 모른다. 아주 오래됐다"고 말했다. 최인철, 장동익씨가 검거된 후 이루어진 경찰 조사에서 한씨는 "1989년 12월 초에 강도를 당한 사실이 있으나 신고하지 못한 사실이 있는데 그에 대해 물으시면 있는 그대로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1년을 혼자 수사하며 범인을 추적했다는 것. 그런데 한씨 사건은 신고도 안된 2년 전 사건인데 어떻게 낙동강변 살인사건 수사 형사들은 어떻게 그가 피해자인 줄 알고 장동익, 최인철씨를 그에게 데려갔을까.

한씨의 진술 중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한씨는 사건 당시 타고 있던 르망 차량이 술집 마담 차량이라고 했으나 차종도 소유주도 전혀 달랐다. 당시 그는 양손이 결박된 채로 트렁크에 감금돼 있다 탈출했다고 진술했으나 사건을 재현해본 결과 트렁크에서 감금돼 있다 홀로 탈출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알' 제작진이 "강도를 당한건 맞냐"고 묻자 한씨는 "그걸 내가 얼마나 상세하게 해놨냐. 그놈들이 그 기록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알 수가 없지. 열받게 하지 말고 가라"라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월 4일 재심 재판부는 한씨가 주장한 강도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정말 허구의 사건이라면 없는 사건을 만들면서까지 장동익, 최인철씨에게 또다른 범죄 혐의를 뒤집어씌운 이유가 무엇일까.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강력범죄 전력이 없는 두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나머지 경찰관이 피해자인 특수강도 범행을 낙동강 강도살인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연결고리처럼 만들어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적혀있다.

장동익, 최인철씨 무기징역 신고 후 가족들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장동익씨 어머니는 전국 각지를 돌며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머니는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아들의 사건 기록을 한장씩 모였다. 언젠가는 아들 장동익씨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건 기록이 담긴 분홍 보따리를 마지막 유품으로 남겼다. 어머니는 떠났고, 두 살이었던 딸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장동익씨 딸은 "거의 같이 생활을 안했었는데 그래도 이제 손녀들하고 자주 오니까 좁혀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철씨 가족도 큰 고통을 겪었다. 최인철 씨 아내는 남편 재판 중 구속된 일도 있었다. 아내는 "검찰청에서 오라 그러더라. 조사할게 있다더라. 나보고 위증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조작된 자술서가 그녀를 위증 교사범으로 만든 것. 이후 그녀는 실형을 살았다. 밝혀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마치 낙인과도 같았던 전과기록 삭제를 요청했고 아내 정숙기씨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대한 재심청구도 이뤄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위로의 시간이 이제 시작됐다. 가족들의 재심 청구를 했고 앞으로 보상, 배상 절차, 관련 공무원에 대한 위증 고소를 진행할거다. 피해 회복과 위로를 위한 시간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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