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학파 출신 한국인, 세계적 기업 마케팅 매니저 될 수 있었던 이유

주영민 전(前) 구글코리아 마케팅 매니저
WEF 한국청년 대표 참석
책 ‘가상은 현실이다’ 출판
“기술혁명에서 인간의 존재 묻고 싶다”

“팀 쿡 이후 애플이 지루해졌다는 세간의 평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일반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테크업계에 있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선 안목과 수준을 의심하게 된다···.”


주영민(32) 작가의 페이스북 게시글. 최근까지 그의 직업은 구글코리아 마케팅 매니저였다. 사진보단 긴 줄글을 주로 올린다. 평균 1500자, 원고지 8.5매, 주 2회 이상. 주제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주로 IT(정보기술)와 문화콘텐츠 등을 다룬다. 주영민 매니저의 직업은 마케터.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외엔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데 매진한다. IT 기술이 바꿔놓은 일상을 진단하는 미디어랩 ‘주영민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기술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업계 현실을 비평하는 1인 미디어 운영자다.

출처: jobsN
구글 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주영민 작가.

 -자기소개를 해달라. 어릴 적 무슨 꿈을 꿨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저널리스트나 미디어 전문가를 꿈꿨다. 사회를 바라볼 때 많은 의문이 생겼다. 나의 관점을 담아낸 글을 쓰고 싶었다. 2006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사회학을 공부했지만 자연과학도 공부했다.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배우면서 과학기술을 접했다. 사회적 현상을 인간이 관계 맺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가령 사회에 질병이 퍼진다 치자. 국가가 방역체계를 잘 갖추지 못해서, 혹은 개인이 위생관리를 잘 못해서 등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인간이 인간과 접촉했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서로 접촉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루트(route·경로)로 바이러스가 퍼졌는지 등을 추적하는 학문이다.”


“컴퓨터 사이언스·통계·소셜미디어 등을 두루 공부했다. 자연스럽게 구글이나 네이버, 카카오 같은 IT 기업들에 관심이 갔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에 끌렸던 것 같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실행해야 하는 성향이라 대기업이나 언론사보다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빅데이터 스타트업 인턴을 거쳐 카카오 인턴, 구글 코리아 인턴을 경험해봤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구글에서 정직원 면접 제안을 해왔다. 구글은 거쳐간 인턴들을 모두 인재풀에 저장해놓는다. 입사 후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인턴할 때 퍼포먼스를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에 다시 불렀다고 하더라. 2014년 구글 코리아에 입사해 5년차 마케팅 그로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최근 구글을 퇴사해 다른 일을 계획중이다.”

출처: 주영민연구소 제공
주영민 작가는 '주영민연구소'를 운영하며 강연·출판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어떻게 구글 코리아 인턴에 합격했는지, 어떤 성과를 인정받았나.


“구글은 지원자가 얼마나 자율적인 사람인가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제로베이스(Zero-base)에서 시작해 얼마만큼 새로운 걸 만들어냈고,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둘 수 있는 사람인지 면밀히 살핀다. 면접에서 나를 어필할 때 대학 시절 잡지를 만든 얘기를 꺼냈다. 20대 문화를 다루는 잡지 ‘프론트’였다. 우리 세대 목소리·취향·스타일 등을 담은 잡지였다. 월간 1만부씩 찍었고 무가지(무료 잡지)였다. 수익모델은 광고료였다. 홍대·신촌 일대를 돌며 주변 상인들에게 광고를 구걸하고 다녔다. 이렇게 1년 동안 만들었다. 새롭게 기획하고 제작한 것을 사람들이 봐준다는 기쁨이 컸다. 면접에서 이 얘기를 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맨땅에 헤딩해 1년간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세간에 이미 많은 구글 예찬론이 있지만, 역시 좋은 회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조직은 소속한 개개인이 최대한 자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준다.”


-그로스 마케터라는 직업이 무엇을 의미하나. 뭘 하는 사람인지.


“IT 서비스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을 말한다. 서비스 개혁을 하는 이유는 매출을 올리거나 사용자를 많이 모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광범위한 의미다. 유튜브 앱 광고를 보고 시청자가 해당 앱을 다운로드했다고 치자. 앱을 열어보지 않고 삭제한 사용자가 있고 체험해보고 삭제한 사용자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왜 발생했는지 데이터를 갖고 분석한다. 용량이 부족해서일수도 있고 제품 매력도가 떨어져서일수도 있다. 또 로그인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튜토리얼(설명서)이 복잡해서 등 다양한 가설이 있다. 이 가설들을 세운 다음 데이터를 비교해 하나하나 뭐가 맞는지 확인한다. 만약 원인이 로그인 화면이 복잡해서였다면 더 간소한 화면으로 바꾸도록 서비스를 개선한다.”

출처: 주영민연구소 제공
구글 워크샵에서.

-데이터를 활용해 의미를 읽어내는 데이터 사이언스트로도 들린다.


“공통점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전적으로 데이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로스 마케터는 인문학적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 광고 영상을 만들 때 애니메이션을 활용할지, 사람이 나올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면 광고할 제품이 어떻게 해야 목표타깃에 가장 많이 다다를 수 있을지 데이터로 분석해 결정한다. 하지만 그로스 마케터는 데이터 결괏값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소비자가 감성적이고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존에 쌓여있는 데이터를 참고하되 인간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질문을 늘 던진다.”


-2019년 다보스포럼이 최초로 초청한 한국인 청년 대표였다고.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중 ‘청년 커뮤니티 글로벌 쉐이퍼(Global Shaper)’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청년 리더들이 모여 이 시대의 아젠다에 대해 논의·토론하는 자리다. 올해 세가지 주요 아젠다는 4차산업혁명·기후변화·양성평등(Diversity·다양성)이었다.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참석해 우리 발표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국제기구에서 나를 초청한 이유는 아무래도 구글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 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글에서도 기술직군이 아닌 마케팅팀에 속했다는 것, 그리고 비유학파 출신의 동양인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것이다. 구글에 입사한 이후 꾸준히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써왔다. IT회사에 있지만 사회를 관찰하며 이어갔던 창작활동을 높게 평가했던 것 같다.”

출처: 주영민연구소 제공
2019 세계경제포럼이 초대한 세계 40인 청년 리더들과 함께.

-최근 ‘가상은 현실이다’라는 책을 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 추천대로 무의식적 소비를 한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보다 인스타그램 속 가상 이미지를 꾸미는데 더 주력한다’ 등 기술 혁신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담았다. 구글을 비롯한 IT회사를 공격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느꼈다는 독자도 많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제 느꼈던 문제점보다 좀 더 과장하고 예민하게 말하긴 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보고 싶었다. 분명 세상은 편리해졌다. 손안의 휴대폰이 나보다 나의 취향을 더 잘 안다. 음악 어플을 키면 추천 리스트가 뜬다. 넷플릭스는 나한테 맞는 영화·드라마를 알려준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건너뛴다. 주어진 추천리스트대로 그냥 소비하는 셈이다.”


“이런 편리함 속에서 뭔가 말하기 께름칙한 불편함을 느낀다. 인간은 정말 알고리즘이 분석한 존재가 맞는걸까.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이거 정말 내 취향 맞아?’라는 의문이 들더라. 취향·관심사를 떠나 정치·신념·가치관 등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랬다. 기계와 인간, 인간과 인간의 끈끈한 연결 속에서 인간의 주체적 선택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최근 IT업계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뉴스는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계획인지.


“첫째로 페이스북이 가상화폐(Libra·리브라)를 출시했다는 것, 두번째는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가 뉴럴링크(Neural Link·사람이 뇌에서 컴퓨터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가상 화폐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궁금하다. 아마 국경과 세금이 사라진, 더 강력한 초연결 사회가 열리지 않을까. 뉴럴링크도 마찬가지다. 가상세계에서 개인이 갖는 지위와 정체성은 어떻게 나타날까.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변화, 그로 인해 바뀌는 개인의 삶에 대해 묻고 기록하는 사람이고 싶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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