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가다 체육대 주막에 걸린 현수막 보고 경악했어요"

‘인문캠은 학교에서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

‘문과들이 그렇게 잘 논다며? 졸업하고 ㅎㅎㅎㅎ’

‘들어올 땐 1등급, 나갈 땐 9급’


성균관대 이공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 학생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일었다. 성대 총학생회는 5월20일 운동회에 쓸 응원문구를 교내에 게시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을 본 학생들은 취업 준비생이나 자영업자를 유머 소재로 삼은 것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 /인터넷커뮤니티 캡처

논란이 커지자 총학생회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인문사회과학 캠퍼스와 자연과학 캠퍼스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체육 행사 중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센스 있는 도발을 하고 싶었지만 불쾌감을 안겨드린 점 죄송하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측은 다음날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대학가 현수막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수막은 대학생들이 내·외부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다. 이 시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대중과 언론이 대학가 현수막에 민감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수막을 보면 청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 일부 현수막은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간 논란이 있었던 대학가 현수막은 무엇이 있었을까.


9급 공무원 합격 축하 플래카드

“대외위상면에서 조금 아니지 않나”


2018년 11월 부산대학교 사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통대 건물 9급 공무원 플래카드를 보고’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앞서 부산대엔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부산대 학생을 축하하는 내용의 플랜카드가 경제통상대학 건물에 걸려있었다. 게시물 작성자는 먼저 “합격한 분들 고생했고 축하드립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통대는 부산대에서도 상위권인 단과대인데 대외 위상면에서 9급공무원 합격 현수막은 조금 아니지 않나 싶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아시다시피 부산대는 부산에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의 견학 장소이자 중상위권 학생들이 선망하는 학교다”라고 했다. 견학 온 학생들이 그 현수막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냐는 말이었다. 그는 “공무원 선호 현상으로 9급 공무원 합격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전문대학에서나 플래카드를 걸어 홍보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 /부산대 학생 커뮤니티 캡처

해당 게시물에 댓글이 많이 달리자 작성자는 “9급 공무원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대에 진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플래카드를 보고 ‘이 학교는 대부분이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많이 합격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이 글을 본 네티즌은 “왜 꼭 9급 공무원 합격 축하 현수막만 갖고 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는 곧 시험별로 급을 나눈다는 증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글쓴이가 쓴 ‘전문대학에서나’라는 말에서 평소 어떤 가치관과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외적 위상을 들먹이면서 학우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깎아내리는 것 아니냐”는 댓글도 있었다.


정문 건물에 등장한 영화 광고


2016년 5월8일 '홍익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저것이 왜 저기에 있는 건지 혹시 아시는 분’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홍대 정문 겸 건물인 홍문관에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초대형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을 본 학생들은 "대학 정문에 상업 광고가 올라갈 수 있는 건 처음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홍익대학교 페이스북

재학생 커뮤니티에는 학생 동의 없이 상업적인 광고를 붙여도 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총학생회 측은 "대동제를 여는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했다. 무대를 멋지게 꾸미려다 보니 생긴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외부 기업의 홍보금을 지원받아 축제를 하려 했다는 말이었다. "학우들이 느꼈을 분노와 실망, 허탈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내고자 현수막을 걷으려 하고 있으나 계약서상의 위약금 문제로 문제 해결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재학생들은 학생회 답변에 결정과정 회의록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홍대 학생회 측은 영화 홍보팀에 위약금을 물고 광고물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접한 홍대 학생들을 비롯한 네티즌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장소를 돈을 벌기 위해 이용해선 안된다”라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는 선정성 논란


‘오빠 여기 쌀 거 같아 (가격이)’


2016년 9월 조선대학교 축제 주점 현수막 문구. 익명의 네티즌이 ‘조선대 대신 전해 드립니다’에 올린 게시물로 네티즌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작성자는 “친구와 지나가다 체육대학 주막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경악했다. 광주시민 다 올 수 있는 축제에 이런 현수막을 내걸다니 부끄럽다”는 글을 올렸다. 아래엔 '가격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누가 봐도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선정적인 표현이었다. 해당 글을 본 네티즌들은 ‘이걸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나’, ‘굳이 왜 저급한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단국대 천안캠퍼스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을 졸업식 때 내걸어 논란이 일었다. 2017년 2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위수여식이 열리던 때였다. 단국대 제32대 백의총대의원회 명의로 학생극장 외벽에는 ‘오빠 나 축*해 졸라 업됐어’ 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빨간 글씨만 읽으면 ‘오빠 축 졸업’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검은색 글씨와 함께 읽으면 외설적인 문구였다.


이 같은 사실이 소셜미디어로 알려졌다. 또 각종 언론에 보도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현수막을 올린 32대 백의 총대의원회는 인터넷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 백의총대의원장 A씨는 “논란의 사건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를 포함한 네 명의 졸업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제작한 현수막”이라고 밝혔다. 학교는 이들은 학교상벌기구인 학생지도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이후 해당 사건 관련자가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페이스북으로 학생들이 문의했지만 학교 측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 /단국대학교 백의총대의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흉악범죄자 사진 올려서 홍보?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의 현수막도 상식 밖의 내용을 담아 비판을 받았다. 2015년 9월2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공포의 대학교 주점 메뉴’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방범주점’이라는 이름의 대학 주점에선 ‘오원춘 세트’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곱창볶음과 튀김 등의 메뉴에 살인범 오원춘의 이름을 넣고 판매한 것이다. 또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연예인 고영욱의 이름을 딴 ‘고영욱 세트’라는 안주 메뉴도 있었다. 이들은 오원춘과 고영욱 사진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고 이튿날까지 영업했다.


네티즌은 “주점을 열기 전에 범죄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미안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며 “학교 차원에서 징계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방범주점을 운영했던 학생들은 인터넷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악스러운 범죄에 경각심을 느끼게 만들기 위해 기획했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논란이 될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현수막이 만들어져 그대로 걸었다”고 덧붙였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한양대학교 에리카 총학생회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생 지도 및 축제 관리가 소홀했던 점을 사과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조사하고 발생한 모든 일에 책임지겠다”고 했다. 해당 사건으로 상처를 받을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동아리연합회 및 총학생회는 그해 축제를 취소했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이번 성균관대 논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서열의식을 갖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 문구가 유머를 시도하다 빚어진 실수인지, 아니면 학생들 내면에 있던 본심인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송 교수는 “유머는 타인에 대한 깊은 헤아림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농담을 할 땐 그 안에 타인에 대한 비하 코드나 서열의식이 없는지 한 번 더 성찰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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