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 술판' 된 공원, 5인 이상 받는 펜션.. 봄 날씨에 방역의식도 풀렸다

김송이 기자 2021. 4. 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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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밤10시 20분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공원. 일명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이 공원 곳곳에는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오후 10시 술집과 식당 등이 문을 닫자, 취객들이 2·3차 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와 ‘노상 술판’을 벌인 것이다.

경기 파주에서 홍대로 놀러 왔다는 김모(22)씨는 이미 술에 취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조만간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며 "술집이 일찍 닫으니 갈 곳이 없어서 나왔다. 조금만 더 마시고 가겠다"고 했다. 밤 10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술자리를 시작한듯 김씨 일행의 자리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병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술집을 포함한 음식점 영업 시간이 지난 22일 오후 10시20분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공원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이달 들어 외출하기에 좋은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방역의식이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23일 기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신규 확진자가 797명을 기록하며 106일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10시 영업제한’과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를 무시하는 사례가 늘어 ‘4차 유행’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트럴파크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날씨가 풀린 뒤 노상 술판을 벌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있던 정모(32)씨는 "주말을 앞둔 것도 아닌 목요일 저녁인데 강아지의 안전이 걱정될 정도로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잔디밭에 둘러져 있는 출입금지 테이프가 무색할 정도로 방역의식이 느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은 "주말이 가까워지면 밤 10시부터 얼음컵과 맥주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했다.

연트럴파크에서 10분 거리의 신촌 창천문화공원도 노상 술집으로 변했다. 공원 자리마다 술집에서 나온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2·3차를 이어갔다. 공원 한 쪽에는 외국인 5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서 일행과 맥주를 마시던 김모(27)씨는 "10시에 헤어지기 아쉬워서 왔다"며 "깨끗하게 먹고 갈 것"이라고 했다.

22일 오후 11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문화공원이 술을 마시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문제는 관할 지방자치단체도 노상 술판을 막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인근 파출소와 협력해 시민들에게 방역 수칙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권유를 드리는 것 뿐 시민들을 강제로 해산시킬 수 없다"고 했다.

밀폐된 숙박시설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모텔에서 친구 4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김씨는 "다른 객실도 술을 먹으려고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며 "당시 모텔 복도가 마치 술집에 온 것처럼 시끌벅적했다"고 했다.

김씨가 찾은 모텔은 5층에 카운터가 있고 6층에 객실이 있는 구조다. 카운터를 거치지 않고 손님들이 객실에 드나들며 5명 이상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모텔 측은 "우리는 4명까지만 받는다"면서도 추가로 방에 들어가는 손님을 막기 위한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비대면으로 방을 예약하는 숙박 공유 시설에서는 빈번히 ‘5인 이상’ 모임이 이뤄졌다. 직장인 이모(33)씨는 "숙박 공유 업체 어플을 통해 이태원 부근의 파티룸을 예약해 지난 17일 다녀왔다"며 "예약 당시 사용 인원을 4명으로 제한했지만, 주인이 실제 인원과 예약 인원을 비교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방도 5명 넘는 인원이 모여 파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대놓고 방역 수칙을 어기며 호객행위를 하는 업체도 있었다. 경기 포천의 한 펜션 관계자는 기자가 6명 예약이 가능한지 전화로 묻자 "방 두 개 잡으면 하나는 안쪽에 안 보이는 곳으로 주겠다"며 "어차피 단속 절대 안 오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만 안 띄면 된다"고 했다. 기자가 망설이자 "정 걱정되면 우리 펜션에 있는 독채를 주겠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방역 경계가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무증상감염이 50%가 넘어가는 상황이라 방역 수칙을 어기는 행동들이 위험하다"라며 "인파가 크게 몰리는 곳과 방역에 구멍이 뚫릴 수 있는 곳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시민들은 될 수 있으면 모임을 자제하고, 어쩔 수 없다면 곧 나올 코로나 자가검사키트라도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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