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기와에서 현대식 개량기와까지
주택의 머리, 즉 지붕에 뭘 얹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기와는 천년의 세월에도 변함이 없는 가하면 기와주택만의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기도 한다. 기와를 선택할 땐 비용을 고려해 소재를 먼저 결정하고 형태와 색으로 디자인을 세분화한다. 봄날 햇볕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기와가 있는가 하면 차갑고 무거워 보이는 기와도 있다. 또 곳곳의 장식 요소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기와도 있다. 주택 유형과 디자인을 먼저 살펴보고 기와 형태와 색을 결정하면 된다.
기와는 시간이 쌓일수록 멋과 아름다움이 진해진다. 이러한 기와의 멋과 감성에 매료돼 기와를 고집하는 마니아들도 많다. 하지만, 3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외형적으로 큰 변화 없이 건재할 수 있던 것은 다른 재료와 다르게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과 눈비를 완벽하게 차단해 나무 부재를 썩지 않게 하는 뛰어난 기능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 일반 서민은 사용하기 어려웠던 기와는 현재 새로운 소재와 기술 개발로 기존 기와의 멋과 감성은 유지하면서 저렴하고 내구성까지 뛰어난 개량기와를 선보이며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에 전통 점토기와부터 개량기와까지 기와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글 백홍기 기자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향토대백과》, 한국박물관연구회
지붕재의 시작은 이엉이나 볏짚, 나무껍질 등이었다. 식물성 재료가 주를 이루었지만 내구력이 약하다 보니 보수를 하거나 교체를 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돌을 지붕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돌은 무게와 연마 때문에 다루기가 어려워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다 다루기 쉬운 진흙으로 일정한 모양을 만든 뒤 불에 구워 방수 효과는 물론 강도가 높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와가 개발됐다.
기와의 기원은 가장 오래된 흔적과 문헌에 따라 약 3000년 전 서양은 고대 그리스 시대, 동양은 중국 삼황오제 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본다. 한반도에서 점토기와를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건 1913년 평양 강남구역 토성리 낙랑유적지에서 출토된 점토기와를 근거로 기원전 2~1세기경이라고 추정한다.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에 목구조 기와집이 등장했으며, 여기에 사용한 낙랑기와가 우리나라 최초의 점토기와다. 낙랑기와는 중국 한나라에서 사용한 수막새의 글과 무늬가 같아 한나라의 건축문화가 유입됐다고 추정한다.
삼국 시대부터 명맥 이어온 기와
기와가 한반도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건 삼국 시대다. 이와 관련해 국토연구원《한국형 국토발전 실천 전략 연구》를 보면 “삼국 시대에 기와를 굽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상류계층의 주거지를 중심으로 기와집이 일반화되었고, 이들 기와집에는 온돌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도 “신라 경주부터 동해 어귀에 이르기까지 기와집들이 들어서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일본 문헌에도 있는데, 『일본서기』에 “백제에 와박사(기와박사)라는 직제까지 있었다”라는 내용이다.
고구려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중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지만, 후세로 갈수록 점차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백제는 초기에 고구려 양식을 보이다 5세기 후반 중국 문화와 융합해 백제 고유의 우아한 양식으로 발전했다. 백제 기와 양식은 신라와 일본 아스카문화[飛鳥文化]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양식을 이어받아 두 가지 양식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후 두 양식이 어우러져 신라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하며, 통일신라 시대로 전해졌다. 통일신라 시대는 여러 문화가 융합하면서 기와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다양하게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기와 장식에서 두드러진 수막새 장식에서 암막새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막새면에 장식하는 무늬도 단순한 단판양식에서 이중으로 연꽃잎을 장식하는 중판양식 외 복판·세판·혼판양식으로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고려 시대는 초기에 통일신라 시대의 섬세하고 화려한 전통을 계승하다 점차 단순해졌다. 그리고 귀목무늬(鬼目文)와 청자기와라는 새로운 무늬와 제작 기법이 나타났다. 고려 시대 후기엔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범梵자를 새긴 막새가 나타나는 동시에 암막새의 드림새가 역삼각형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암막새의 변형은 조선 시대까지 계속돼 하트나 계란 모양으로 바뀌면서 무늬도 간단한 연꽃무늬나 건물과 관련된 내용의 글 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막새를 서까래에 90°로 부착하던 것도 둔각으로 설치해 빗물이 잘 흐르도록 기능적으로 발전했다. 조선 시대는 유교정신에 따라 기와는 더욱 간소해지고 소박해졌다. 장식 요소로 용마루 양 끝에 세운 치미는 취두와 용두로 바뀌고, 추녀마루나 내림마루 끝을 살짝 들어 올려 멋을 낸 곱새기와는 망새, 바래기, 토수로 대치하면서 외형적으로 간결해진 것이다.
낙랑_낙랑예관이 새겨진 수막새
낙랑군의 예관禮官이라는 관직을 알려주는‘낙랑예관’글자를 막새면 중심부에 새겨 넣고 주위에 구름무늬[雲氣文]를 채운 문자기와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형태나 제작기법이 중국과 동일하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_암키와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암키와는 높은 온도로 구원 표면이 단단하다. 붉은색을 띠는 고구려 기와는 바깥쪽에 비스듬한 문살무늬[格子文]를 넣은 기와가 유행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_짐승얼굴무늬 수막새
짐승 얼굴을 표현한 막새기와는 화재를 막고 건물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 두툼한 코가 두드러진다. 고구려 시대 짐승얼굴무늬 기와의 전형적인 양식이며 주로 평양부근에서 출토됐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백제_연꽃무늬 수막새
백제 시대는 수키와와 암키와, 수막새와 서까래기와, 치미 등으로 구분한다. 꽃잎 끝이 둥글고 적당한 부피감을 보이는 연꽃무늬 수막새는 백제 기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본으로 전파된 이 형식은 아스카사[飛鳥寺] 등에서 볼 수 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_도깨비 얼굴무늬 기와
짐승얼굴무늬는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로 제사용기나 건축물, 무덤 등에 많이 사용했다. 얼굴이 크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툼한 모습이다. 테두리는 구슬무늬를 전면에 배치하고 무늬에서 힘이 느껴진다. 통일신라 시대에 대량 생산한 짐승 얼굴무늬 기와는 형태와 구도에서 완벽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뿔 사이에 있는 구멍은 못을 박아 귀마루 끝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고려_청자 당초무늬 암막새
당초무늬가 돋을새김으로 만든 암막새다. 불교가 성행하던 고려는 사찰에서 활발하게 기와를 제작했고, 청자로 만든 청기와는 가장 화려한 기와로 꼽는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고려_청자 양각 모란무늬 수막새
막새 면에 두 겹의 원 테두리가 음각되어 있고 바깥 테두리에는 연밥문을, 안 테두리에는 모란문이 양각되어 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_건륭乾隆이 새겨진 암막새
조선 시대 기와는 장식이나 미적인 측면보다 기능에 중점 뒀다. 이전 시기에는 막새면을 직각으로 붙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연목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둔각을 이룬다. 장식을 위한 연꽃무늬[蓮花文]는 사라지고 제작과 관련한 명문銘文을 넣었다. 기와에 새겨진 글귀는‘건륭 20년(1775)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기능과 가성비로 무장한 개량기와 등장
기와 생산이 융성했던 시기에도 누구나 기와를 사용할 수 있었던 아니다.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이동과 시공이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지붕을 엮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와 6·25전란을 겪으며 생활은 더욱 어려워져 극히 일부 계층에서만 기와를 사용했다.
6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주택 수요에 따라 기와의 수요도 증가하자 대중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멘트 기와가 등장했다. 시멘트 기와는 기존 기와보다 제작이 쉽고 가볍고 저렴한 데다 시공도 간편해 70년대를 기점으로 단독주택 지붕재를 대표하는 기와가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 기와는 크게 전통 한식기와, 한식기와 모양의 시멘트 기와, 유럽 스타일의 수입기와로 나뉘었다. 그러다 2004년 대한한옥개발(주)에서 외형은 전통 한식기와와 유사해 한옥 고유의 멋을 낼 수 있으면서 가격은 저렴한 플라스틱 기와 ‘천년와’를 선보이면서 시멘트기와에 이어 새로운 한식 개량기와 시대를 열었다. 2000년 후반에는 (주)페루프에서 전통 한식기와의 모양을 재현한 금속기와를 내놨다. 2010년대에는 여러 기업에서 한식기와의 모양과 색, 막새 무늬까지 재현한 금속기와를 선보여 한식 개량기와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오지기와 또는 스페니쉬 기와라고 하는 유럽식 점토기는 1990년대부터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부터 프로방스 주택이나 지중해풍 주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유럽 특유의 색감과 담백함은 많은 사람의 선택을 이끌었고 현재 가장 널리 사용하는 기와 가운데 하나로 국내 시장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건축자재 생산 기업인 (주)로자는 2011년 유럽풍 점토기와의 아름다운 미관을 유지하면서 시공이 간편하고 저렴한 금속기와를 선보여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더욱 넓혔다.
현재 기와 시장은 2010년에 들어서면서 크게 고가지만 자연스러운 멋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점토기와, 실용성과 가성비를 추구하는 개량기와로 양분된 모습이다.
대체할 수 없는 기와의 멋과 감성
기와는 정밀과학이고 예술이다. 천여 장의 기와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각각 제자리에서 견고하게 맞물린 건축물은 천년의 세월을 견디게 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한 장의 기와가 차곡차곡 쌓여 기와주택만의 고고한 아우라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유럽식 기와지붕은 한식 기와지붕보다 구성이 단순하고 담백하다. 봄날 햇볕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반면 한식기와지붕은 차갑고 무겁다. 하지만, 유연한 선과 곳곳의 장식 요소가 이를 상쇄시키면서 시선을 끌어들인다. 한식기와는 구성이 복잡하지만, 각각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안다면, 또 다른 미의 세계로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간략하게 한식기와의 구성을 살펴보면, 크게 평(기본)기와, 서까래기와, 마루기와, 막새, 망새(망와), 특수기와로 나뉜다.
평(기본)기와
암키와와 수키와에 대한 총칭이다. 암키와는 바닥에 비늘처럼 겹겹이 깔아 빗물을 고랑으로 흘러내리게 하고 수키와는 세로로 연결한 암키와 틈새를 덮어 눈비를 막는 동시에 연결부를 장식한다.
서까래 기와
연목기와 부연기와, 사래기와, 토수로 나뉘는데, 서까래 부식을 방지하고 장식하는 데 사용한다.
막새
추녀 끝에 부착하는 기와로 막새 끝에 무늬를 새긴 드림새를 붙여 처마 끝 틈새를 감추는 동시에 처마를 아름답게 꾸며준다. 막새는 암막새와 수막새가 있으며, 암막새는 암키와에 드림새를 붙인 것이고 수막새는 수키와에 드림새를 붙인 것이다. 막새 중에서 목부재 마구리면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초가리기와라고 한다. 부재에 따라 연목초가리, 부연초가리, 추녀초가리, 사래초가리라고도 부른다.
마루기와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의 선과 모양을 내는 기와다. 한옥지붕의 유연한 선을 만드는 게 마루기와다. 용마루는 지붕 등성 부분, 내림마루는 용마루에서 지붕 중간까지 내려온 부분, 추녀마루는 내림마루 밑에서 추녀 끝까지 내려온 부분으로 나뉘며, 모양에 따라 용마루(종마루), 내림마루(합각마루), 추녀마루(귀마루), 박공마루 등으로 구분한다. 한옥의 건축미를 잘 나타내는 마루는 치미(망새), 영두, 귀면기와, 잡상 등을 이용해 장식한다.
망새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끝에 부착하는 기와로 화재를 막는다는 뜻에서 용두龍頭, 토수吐首 등을 부착하거나 재앙을 막는다는 뜻으로 귀면와鬼面瓦, 취두鷲頭를 부착하기도 한다. 용두와 취두는 궁궐 등 중요한 건물의 지붕마루를 장식하는데 사용했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망와라 하여 암막새를 세워 장식했다.
특수기와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기와다. 예컨대, 창덕궁 대조전 등 용마루가 없는 부분을 덮기 위해 사용한 곡와曲瓦 또는 궁와弓瓦, 모임지붕처럼 여러 지붕의 끝이 모인 꼭짓점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절병통節甁桶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