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청소부가 한국 정상의 스타트업을 만들기까지
1. 소셜커머스 다음가는 밸류, 1등 스타트업 야놀자
리승환(이하 리): 안녕하세요, 100억 투자 받은 야놀자의 대표이사 이수진 대표님.
이수(이하 진): ……
리: 무려 100억을 투자 받았는데, 그 감상이 어떠십니까?
진: 특별한 생각은 없어요. 어차피 투자자분들에게 갚아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잘하자… 이런 정도죠.
리: 투자는 대출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진: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돌려드려야지요. 투자계약서도 은행 대출처럼 직인뿐 아니라, 대표자 사인이 들어가요. 이건 대표자 보고 투자한다는 의미거든요. 제 이름을 글자로 썼다는 건 어떻게든 돌려드리겠다 약속한 거에요. 그래서 이게 좋아해야 할 일인지…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다 사인도 미뤘어요.
리: 그런데 왜 사인 했습니까?
진: IR 피칭 때 어떻게 성장해서 IPO를 하고, 이 이상을 돌려주겠다고 한 것도 결국 약속이니까요. 사인을 하고도 ‘내가 이 돈을 돌려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게 과연 맞나’, 계속 고민했죠. 투자 받았으면 바로 자리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부담감이 심해서 일부러 늦췄죠.
리: 막상 돈 꽂히니 어떻던가요?
진: 좋던데요.
리: …….
진: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흔히들 투자 받은 돈은 잘 돼도 그만, 아니라도 그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애초에 투자를 해준 건, 정말 잘 된다는 전제에서 투자한 거잖아요. 그러면 이제 정말 잘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죠. 100억이라는 돈이 굉장히 큰 것 같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작은 돈이기도 해요. 마케팅 한 번 하면 100억 나가는 거 금방이잖아요.
리: 이왕 금방 쓸 거, 제게 1억만 쓰십시오…
진: ……
리: 아무튼 갑자기 왜 즐거워졌습니까?
진: 오히려 욕심을 비우게 된 거죠. 10년간 투자를 한 번도 안 받았는데, 이제 개인적 회사가 아니라 공개돼야 할 회사가 된 거잖아요. 여태까지 제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갔어요. 개인 회사는 틀려도 오너의 고집으로 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제 회사가 공개됐으니 우리의 회사가 된 거고, 제 고집보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성을, 우리의 고집을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했죠. 그래서 작년부터 조직 개선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긴 거죠.
2. 인간극장에 나와도 모자랄 어린 시절
리: 어릴 때 지지리도 가난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인지요?
진: 노오오오력 이야기가 많아서 굳이 언급하기는 그런데…. 제가 4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6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며 집을 떠났어요. 할머니가 소작농이셨는데, 나이 드신 분이 농사지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당연히 가난하지… 게다가 옛날 분들은 교육에 대한 관념도 없었어요. 공부도 안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국민학교 5학년 전까지는 한글도 몰랐어요.
리: 한글도 못 썼나요?
진: 완전히 문맹은 아니고… 아주 쉬운 글자만 읽고 쓰고 하는 정도였어요.
리: 그게 문맹이라는 겁니다…
진: ……
리: 어쩌다 한글도 익히지 못했나요?
진: 올해 제가 39살이에요. 지금 큰딸은 한 반에 학생이 25명도 안 되는데, 그때는 한 반에 60명이 넘었어요. 선생님도 신경을 쓸 수가 없었죠. 그러다 5학년 때 독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국어책을 주고 달달달 외워 쓰라고 하더라고요. 제대로 못하면 맞고… 그런데 강압식 교육이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3일째 되니까 책을 읽을 수는 있게 되더라고요.
리: 공부는 못해도, 머리가 좋았나 보군요?
진: 남들 말하는 공부 머리는 아니고… 잔머리, 눈치밥은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한글을 깨우친 후에도 반에서 꼴찌 1, 2등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어요. 그때 또 고마운 분을 만났는데, 같이 일하는 형이 중앙대 안성 캠퍼스 다녔어요. 그 형이 어릴 때 최소한 공부는 해야 한다며 무료로 과외를 해주셨어요. 덕택에 중학교 이후부터는 중간 이상은 꾸준히 했어요.
리: 사교육이 이래서 무섭군요.
진: 그래도 결국 공부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어요. 할머니가 중1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나이 들어 일하기 힘드니 매일 마을 사람들과 술 마시고 담배 태우고 하니, 건강하실 수 없었겠죠. 제게는 가장 고마운 분이고 지금도 강연 가면 할머니 사진을 가끔 보여드려요.
리: 그리고 생활은 어떻게…?
진: 작은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자랐어요. 농사일도 하고 알바도 하고 그랬죠. 성적은 그냥 중상위권이었지만, 형편이 이러니 인문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공고를 갔어요. 근데 중상위 성적으로 가니까 매번 전교 등수 안에 놀아서 참 편하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지는 맨날 맞았는데, 고등학교 때는 아주 모범생 대접을 받아서… 두 번 정도 맞아봤나…
리: 졸업하고 취업을 했겠군요.
진: 실업계는 1학기 마치고 취업에 뛰어드는데… 막상 가보니 전문대 졸업한 형하고 급여 차이가 심하더라고요. 또 고3이니까 얼마나 막 부려 먹었겠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학교에 연락하니 입시반이 있더라고요. 그게 수능 한 달 정도 전인데, 어차피 대학도 취업을 위해 가는 거라… 인하공전 가고 싶었는데 등록금이 240만원이라 접고, 천안공전은 70만원도 안 되는데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거기로 갔어요.
리: 돈 때문에 모든 꿈을 포기하는 수난의 역사로군요.
진: 자꾸 이런 이야기 하니까 제가 너무 불쌍해 보이는데… 장학금은 받았지만 작은아버지가 학비까지 줄 수는 없으니 방학 때는 막노동을 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이 숙식하며 살았죠. 아무튼 계속되는 가난에서 좀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군대를 피해 병특으로 갔죠. 사출, 프레스 금형 설계하는 업체에서 QA도 했고… CAD도 했고… 병특이 다 그렇죠… 그래도 어린 것이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한지 첫 월급이 60만원이었는데, 나올 때는 180만원까지 올랐어요.
리: 15년 전 23살에 연봉 2천이면 그리 적은 것 같지는 않은데, 병특을 마치고 계속 설계를 하셨나요?
진: 어쨌든 계속 가난했고 어릴 때 많은 걸 포기해야 했잖아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좀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고, 가난이라는 결핍 때문에 뒤를 돌아봤을 때…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까… 어머니가 분가하셨을까… 할머니 암이 말기에서야 발견됐을까… 이런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죠.
3. 가난을 떨치기 위한 노력, 가난을 더욱 키우다
리: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 뭘 하셨습니까?
진: 주식을 시작했어요.
리: 이봐요.
진: 그때 IMF가 막 끝나고, 다시 호황장이 펼쳐졌어요. 이거 가지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주식책이 다 베스트셀러였던 시기였는데 엄청 사서 공부했죠. 양봉, 음봉, 데드크로스, 골드크로스… 물량대가 얼마 쌓여있고, 이거지, 이거야…
리: 결과는 어땠습니까?
진: 6개월 만에 2천만원을 날렸어요. 한 종목도 돈을 따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아직 2천만원이 남아 있었죠.
리: 병특하면서 4천만원을 모았다니… 재태크라도 한 건가요?
진: 돈을 안 쓰고 다 저금했어요. 식비 10만원으로 모든 생활을 다 했어요. 당시 신세를 지던 고모댁의 아들이 중고생이었는데, 아들 점심 도시락 싸실 때 제 것까지 같이 싸달라고 해서 먹었어요. 또 회사에서 막내다 보니 밥도 사주고… 정말 악착같이 모았죠.
리: 10만원으로 생활하면 연애가 가능한가요?
진: 음… 와이프가 이 글 보면 안 되는데… 사내연애를 잠깐 한 적이 있고… 곧바로 다음 상대가 와이프였지요. 아무튼 악착같이 모은 돈의 절반을 주식으로 날렸어요. 놀라울 정도로 사는 종목마다 다 떨어졌어요. 그렇게 2천만원을 날리고… 이러면 안 되겠다 생각을 했죠. 어떻게 모은 돈인데…
리: 새출발을 한 건가요?
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좀 더 주식을 본격적으로 하자고 결심했죠.
리: ……
진: 그래서 주식 학원을 등록했죠. 한경 무슨 아카데미였는데… 초단타매매를 배웠죠. 그때 고모집에 있었는데, 애가 회사도 안 다니는데 초단타매매 한다고 설쳐대서 속이 터졌다 하더라고요. 어려운 환경에 서울 올라와서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열심히 단타 치고, 장 끝나면 신림사거리에서 버스 타고 관악산을 오르락내리락했어요.
리: 산은 왜 올랐죠?
진: 초단타매매를 위한 정신수양을(…)
리: ……
진: 결국 다 날려먹고 고모 집에 있는 것도 눈치 보이고 무슨 일 할까 고민하다… 숙식 제공되는 일을 찾다 보니 모텔 청소가 있더라고요.
4. 연속된 실패, 모텔과의 인연을 맺다
리: 모텔보다는 공장이 낫지 않나요?
진: 구인구직란을 보니 월 250만원이 있더라고요. 2~3개월만 당번보조로 80만원 받고 일하면 바로 올려준다고 해서… 그런데 막상 해보니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새벽에 자고… 쉴 시간도 거의 없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3일 만에 관두려 했어요. 그런데 프론트에서 형들에게 걸려서-_- 결국, 돌아갔지요.
리: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전 빠져나갔지만…
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한 달 월급 받고 일단 도망갔어요. 그리고 다른 모텔에 1년 반 정도 일했다고 해서 200 넘게 주는 곳에 취업했지요. 아마 그쪽도 알고 있었지만, 광릉내 촌구석이라 사람 구하기가 되게 어려워서 알면서도 일하게 해준 것 같아요. 덕택에 1년 동안 돈을 좀 모을 수 있었죠. 그런데 혼자 있다 보니, 같이 일하시는 형님들이 나이가 있어 그분들이 일하는 상황이 미안해서 쉬는 날에도 일을 했어요. 그러다 힘들기도 하고 역삼동으로 옮겼어요.
리: 거기는 좀 낫던가요?
진: 급여는 나았죠. 열심히 일하면 300 이상 들어왔으니… 그래도 되게 힘들었어요. 주차장이 1km 떨어져 있는데, 손님 오면 발렛해서 갖다놓고 뛰어와서 룸 서비스 가고… 사장님이 이 업종에서 유명한 분이셔서 많이 배우긴 했어요. 객실점검 때 한 손에는 마른 수건, 한 손에는 물수건 들고 돌아다니며, 이모님들이 청소한 방의 물기와 얼룩을 제거하는 등, 시스템화를 잘 정립했거든요. 그래도 일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힘들기는 했죠. 돈도 한 6천 모았고… 결국 샐러드 가게를 차렸어요.
리: 뜬금없이 왜 샐러드?
진: 먹는 사람이 없으니까.
리: 먹는 사람이 없다는 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거잖아요(…)
진: 사람이 사업을 하면 그런 상상이 들어요. 초단타매매 때도 그랬듯 잘 될 생각만 하는 거죠. 샐러드로 여성들 마음만 잡으면 프랜차이즈 늘려서 장사 되는 쪽으로 확장하자, 마침 다이어트 열풍이니까… 근데 빕스에 샐러드바가 생긴 것도 몇 년 뒤고, 요즘 배민프레시에서 배달하고… 제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거죠.
리: 자뻑 좀 그만하시고 실패요인을 이야기해 보시죠(…)
진: 지식이 너무 없었어요. 브로콜리인지, 양상추인지도 제대로 구분 못했으니… 레시피를 따라 했는데도, 제가 먹어도 맛이 없더라고요. 이때 손절을 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만 생각했어요. 결국, 돈 떨어지고 월세 낼 돈도 거의 없고, 재료는 다 폐기처분하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광석을 가지고 값비싼 보석을 만든다 설친 거죠. 돌인지, 금인지, 보석인지 분간도 못 하고서는…
리: ……
진: 다시 좌절감에 빠졌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원망투성이였어요. 뭐든지 안 되니까… 좋은 음식 먹으며 좋은 옷 입으며 갖고 싶은 거 가진 것도 아니고… 진짜 아끼며 살았는데, 주식으로 홀라당 날리고 샐러드 가게의 부푼 꿈도 날아가고… 그러니까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갔어요. 세상을 원망한 거죠. 부모님이 왜 날 버렸을까, 내 인생은 왜 뭘 해도 안 될까… 그런 절망이 굉장히 컸던 시기에요. 너무 힘들어서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죠. 그렇다고 사람이 죽을 수는 없고… 그때 다시 도면 그리는 일로 갈까, 모텔 갈까…
리: 그래도 기술 쪽이 낫지 않나요?
진: 제가 도면 안 그린 지 3년이 넘었어요. 그것도 감인데, 자신감도 없고… 모텔은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숙식이 제공되면서 한 300 이상 벌 자신은 있었으니 다시 모텔로 갔죠. 2년 정도 죽어라 일하며 모았어요. 1년 정도 지났을 때, 지금 우리 호텔yaja 가맹점주이면서 친한 형이 그러더라고요. 너같이 지독한 짠돌이는 처음 봤다고.
리: 참 힘들게 살아왔는데… 사회 기여나 이런 것도 좀 하고 있나요?
진: 제가 민망해서 이야기를 아끼기는 하지만… 야놀자는 벌써 5년 정도 전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단체에 조금씩 기부하며 사회 기여로 쓰고 있어요.
리: 5년 전이면 야놀자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을 텐데, 왜 사회환원을?
진: 남들은 제가 어렵게 자란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는데, 전 제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엇나가지 않도록 항상 친척들이 도와줬고, 또 학교든 일이든 공부할 수 있도록 챙겨준 분들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제가 정말 강하게 밀고 나가는데도 다 수긍해준 동료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그냥 저는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거고, 당연히 돌려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요.
5. 하늘이 감동할만한 노력으로 이룬 첫 매출
리: 아무튼, 본격적으로 모텔업에 도전장을 던지게 됐군요.
진: 결국 이걸로 끝낼 수는 없으니 또 사업 해보자. 사업계획서를 막 썼어요. 숙박업 납품 업체를 홍보하자는 것이었는데, 저 말고도 4명이서 자본금을 댔죠. 처음에 시골에서 모텔일 할 때 외롭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모텔 종사자 카페를 만들었어요. 1만명 정도 회원이 있었으니 마중물은 마련한 셈이죠.
리: 닉네임은 뭐였죠.
진: 실버샤크…
리: ……
진: 아무튼 제가 운영을 잘해서인지, 저한테 홍보해달라는 납품업체들이 많았어요. 창업한 분들부터 오래된 유통회사까지도 컨설팅해달라, 사람 구해달라 등 부탁이 많았죠. 그런 인프라가 있으니 창업하게 된 거죠.
리: 오픈하니까 반응이 어떻던가요?
진: 반응은 아주아주아주 차가워서…
리: 매출이 어느 정도였기에…
진: 반 년 넘게 매출 안 났죠.
리: ……
진: 공동 커뮤니티 운영과 개인사업은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커뮤니티 운영할 때는 사람들 지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돌리면서부터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어요. 심지어 카페에서 한 게 아니라 별도 사이트 냈는데도 그랬어요. 그래서 사이트 만드는 비용만 2천이 나갔고 직원은 10명이 넘는데, 엄청나게 심적으로 쫄렸죠.
리: 신생 기업이 뭔 사람이 그리 많죠…
진: 영업을 하러 다녀야 하니까요. 영업 6명에 디자이너 2명, 개발팀에… 월급이 개발자 빼고 100을 갓 넘었는데도, 돈이 광속으로 사라지더라고요. 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경이 복잡했어요. 3번 망하면, 또 모텔로 돌아가야 하는데 카페에서 이미지도 안 좋고…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어요.
리: 뭐, 멤버가 확충됐다고 해서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진: 그러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오더라고요. 샙돌님(…)이라는 분인데, 당시 모텔투어라는 모텔이용자 카페 주인장이었어요. 뭔 일인가 했더니, 집에서 호적 파이게 생겼다 하더라고요. 그분이 역삼동 잘 사는 집에서 사는데, 아버지가 대학 보냈더니 컴퓨터로 모텔 갔다 온 거 후기나 올리냐고… 그래서 폐쇄하긴 아까우니 인수해달라 하더라고요. 사실 3등 업체여서 존재가치가 크진 않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수했어요. 그리고 그걸 빠르게 활성화시켰죠.
리: 2등이 1등 따라잡기도 힘든데 어떻게…
진: 간단해요. 고객이 원하는 걸 빠르게 들어준 거죠. 왕십리 왔는데 어디 모텔이 좋냐는 질문, 어느 모텔이 가격이 저렴하느냐는 질문… 이런 글 올라오면 전 네트워크가 있으니까 당연히 이용자들만 있던 카페보다 빠르게 좋은 정보를 제공했죠.
리: 활성화돼서 돈은 좀 벌었나요?
진: 회원수가 20만명이었는데도, 모텔들이 영세하니 돈이 되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전공 살려서 몇 년 만에 금형 설계를 했어요. 모텔에서 고객들 니즈가 핸드폰 들고 다니는데 충전기가 없다는 거였어요. 이거 해가지고 객실 10만개만 팔아도 얼마냐…
리: 그건 잘 팔렸나요?
진: 아니오. 1만 개 정도 팔았나…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건 없더라고요. 유사업체가 금방 베끼기도 했고, 그냥 충전기만 들여놓는 곳도 있었고… 그래도 이걸로 근근히 좀 버티며, 배너광고 끼워팔기 영업을 했지요. 무작정 한 군데라도 팔려고 막 돌아다녔죠. 네비도 없이 지도만 보고 다녔어요. 그래도 광고를 안 해주더라고요. 그나마 돈 벌려면 부자동네 가는 게 맞다 싶어서, 역삼 주구장창 가서, 사장님들 커피도 타드리고… 심지어 제가 룸서비스까지 직접 뛰었어요. 그러다 근 1년 만에 처음으로 광고비 100만원을 벌었어요. 그것도 매출 안 오르면 돌려드리겠다고 해서…
리: 100만원이라… 영업사원 6명인 회사에서는 그냥 용돈도 안 되겠군요…
진: 그래도 저는 감동했어요. 어차피 다른 광고 슬롯도 비어 있고, 사장님도 나름 가장 비싼 광고 산 거라… 모든 역량을 다해서 그 모텔을 광고했어요. 그런데 그러자 3달 만에 매출이 40% 올랐어요. 사장님이 모텔을 5개 가지고 계셨는데, 자기 모텔 다 광고할 테니 의형제 맺자고까지(…)
리: 맺었습니까-_-?
진: 나이가 아버지뻘인데, 어떻게 형님이라 해요. 그냥 사장님이라 한다고 하니… “야, 영업 다니려면 너보다 나이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한테는 어려도 무조건 형님이라 해” 이러기에, 그냥 형님이라고 했죠.
리: 형님.
진: ……
리: 이후 물꼬가 좀 트였나요?
진: 그 사장님이 정말 고마웠던 게… 모텔업도 바닥이 좁아서 서로 다 알고 지내요. 역삼동 사장만 한 20명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러면서 광고가 막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게 2006년이니 벌써 10년 전이네요. 그러다가 컨설팅까지 하게 됐어요. 모텔 다 보러 다니고 하면 상권도 대충 읽게 되고, 어떤 모텔이 트렌드인지도 알게 되니까요. 운영에 힘들어하는 사장님들이 위탁을 맡겨서 모텔을 14개까지 위탁운영하게 됐죠.
6. 직원 전체가 경쟁업체로 이적하고 상표권까지 넘기다
리: 드디어 떼돈을 벌게 된 거군요!
진: 아니, 그게… 이전보다 수익이 오른 걸 반반으로 나누는 거였는데, 모텔 수익이 한 번에 오르지 않잖아요.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근데 정작 매출이 오르면 모텔을 팔아버려요. 여기에 대한 계약은 없으니까, 빛 좋은 개살구였죠. 그러다가 같이 일하시던 이사님이 분리해서 가져갔어요.
리: 그래도 수익원인데 포기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진: 위탁 운영이 굉장히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매출이 적지 않으니 계속 가져가자 했지만, 어차피 제가 할 수 없는 거면 딱 끊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사석에서 형님 동생 하는 사이니,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 거죠. 지금도 서로 협력 중이고요. 그런데 그맘때쯤 큰 사고가 터졌어요.
리: 어떤 문제가…
진: 에이전시에 개발 맡기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개발자를 고용했어요. 월 300만원을 줬는데, 어느 날 자기 월급을 올려달라 하더라고요. 그때 개발자가 한 명뿐이니 사내에서 꽤 힘이 좋았어요. 일단 아직 적자니까 흑자나면 제일 먼저 올려준다고 했어요. 그때 뭔가 분위기가 안 좋았는데… 저도 돈 한 푼 못 버니까 멘탈이 좋지 않아서 별말 없이 넘어갔죠.
리: 돈도 없는 회사에서 월급 안 올려준 게 대수입니까?
진: 음… 그때 주주가 5명이었고 2명이 창업멤버로 일하고 있었어요. 한 달 한 번씩 주주간담회가 있었는데, 사실상 제가 문책받는 자리였죠. 지분은 제일 많은데, 수익 못 내고 적자만 나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주간담회에 두꺼운 보고서가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개발자가 이 회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이수진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구구절절이 쓴 거에요.
리: 정확하게 봤네요.
진: ……
리: 죄송합니다(…)
진: 회사만 잘 될 수 있다면 저는 물러날 수 있었어요. 어차피 최대주주이기도 하고. 또 다른 모텔일 하면서 조력자로 남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결국 주주들이 반대했어요. 저만큼 영업을 많이 하고 다닌 사람도 없고, 모텔에서 다양한 경력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개발자에게 어떻게 할 거냐 하니 본인이 나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리: 스타트업에서 싸우고 헤어지는 거야 흔한 거 아닌가요?
진: 나갔는데 혼자 나간 게 아니라 전사원을 다 데리고 나갔어요.
리: 네?
진: 13명 중 10명을 데리고 나갔어요.
리: 비용 감축이 자동으로 됐군요(…)
진: 그렇긴 한데, 문제는 개발도, 디자인도, 경리도 없고… 심지어 말하고 이틀 만에 나가서 인수인계도 없으니 그냥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리: 걔네는 나가서 뭐했나요?
진: 경쟁사에 우리가 가진 모든 걸 팔았어요.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개발자가 나간 게 핵심이 아니라 우리가 6개월 동안 플랫폼 만든 게 보름 만에 경쟁사로 넘어간 거에요. 그보다 더 문제는 개발자가 옮긴 회사에서 우리 상표권을 등록한 거에요. 그때 ‘모텔투어’의 약자 ‘모투’를 쓰고 있었는데, 그 상표명을 가져갔어요.
리: 변리사나 변호사는 뭐라 하던가요?
진: 많이 알려진 상표면 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 먼저 취득하는 사람이 임자라고… 우리 다음 카페 30만명 회원 있다는데, 그래도 안 된다는 거에요. 너무나 억울해서 경쟁사 대표를 만나서 다시 돌려달라고, 도의적으로 상도의적으로 아니지 않냐고 이야기했죠. 그러니까 3억을 달라는 거에요.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서 주먹다짐까지 있었어요.
리: 이겼나요?
진: 저만 주먹질하다가 벽을 때려서 손에 깁스까지 했죠(…)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들고 상표도 잃고… 그래서 야놀자가 생겼죠. 그때는 정말 저보고 다 망한다고 했어요. 2년 정도 고생하면서 인지도를 쌓은 모투를… 인수 전까지 4년의 역사를 가진 상표를 빼앗겼으니까요.
리: 그 경쟁업체는 어떻게 됐나요?
진: 지금은 저희와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어요. 어차피 저와 싸웠던 대표는 나갔고, 창업 때부터 저와 그 대표를 조율하려고 했던 공동대표님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야기를 잘 풀어 주셨어요.
리: 아무튼 돌아와서… 3명이 남아서 뭘 했습니까.
진: 개발자는 안 구해지고… 뭐든지 다 올스톱된 상태였죠. 사업을 접냐 마느냐 고민하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니 회사를 의정부에서 서울로 옮겼어요. 그래야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안 구해지는 판에, 친구가 자기 친한 친구 동생이 개발자인데 꼬셔 보라고 하더군요. 만나서 잘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아무리 설득해도 안 온다고… 그래도 개발자는 필요하니…
리: 어떻게 쇼부를 쳤지요?
진: 술을 잔뜩 먹이고(…) 계좌를 어떻게든 받아서 출근도 안 하는데 월급을 계속 줬어요. 3개월간 돈을 넣으니 미안해서라도 출근하더라고요. 지금은 충청도 지사장이 됐어요.
7. 모텔은 숙박업소가 아니다: 콘텐츠와 고객 경험의 힘
리: 상표권 빼앗긴 후에는 어떻게 대처했나요?
진: 정말 힘들었죠. 브랜드 변화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모투를 버리고 새로운 브랜드인 ‘야놀자’를 다시 알려야 했으니까요. 억울함에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술만 펐죠. 그런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계속 폐인처럼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게 오히려 사업의 방향성을 더해줬는데… 브랜드도 바뀌었으니 더 이상 모텔로만 승부하면 안 된다 생각했어요.
리: 모텔 홍보 사이트에서 모텔을 안 하면 뭐합니까?
진: 모텔은 숙박업소이기 이전에 데이트 장소잖아요. 연인들에게 필요한 건 데이트 코스니, 이를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영역을 늘렸죠. 실제로 데이트 콘텐츠를 개발하고 보니, 데이트코스 페이지뷰가 모텔 정보 페이지뷰보다 훨씬 높았어요. 또 식당, 스튜디오 등도 제휴에 들어갔죠. 이맘때 모텔 개발을 시작하여 야놀자 숙박 프랜차이즈 사업의 초석을 다져 나가기 시작했죠.
리: 그럴 돈이 있었나요?
진: 지분 저당 잡혀서 돈을 좀 빌렸어요. 거래하는 은행 지점장님께서 자기 작은 아버지를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이분이 자산가셨는데, 사람이 되게 깐깐하더라고요. 1주일에 한 번씩 밥 먹으며 사업 이야기를 하다가, 6개월이 지난 후 지분 저당 잡힐 테니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어요. 제 지분 전부를 걸고 10억을 빌렸어요.
리: 10억이라니, 통이 크군요…
진: 모텔은 결국 임대가 끼이니 돈이 많이 들어요. 10억으로도 서울 안에는 힘들고 의정부로에서 모텔을 개발해 리모델링을 했어요. 오토바이에 나이트룸, 스파룸, 샤워룸 등등… 테마는 제가 지금껏 봤던 모든 모텔 중 가장 혁신적인 걸 만들었어요.
리: 그렇게 부자가 된 건가요?
진: 아니오… 마케팅 채널도 있으니 오픈하자마자 밀려들 줄 알았는데… 반응이 전혀 없더라고요. 순식간에 적자가 불어났죠.
리: ……
진: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던 게… 겉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중요한 건 운영 시스템이었어요. 그래서 고객 경험 자체를 젊게 가지고 갔어요. 이게 진짜 혁신이었던 거죠.
리: 고객 경험이라 하심은…
진: 이를테면 모텔 가면 양복에 슬리퍼 신은 분이 뛰어다니며 “사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잖아요. 냉장고 열면 물이랑 싸구려 주스 들어 있고… 그런데 복장을 캐주얼하게 가져가고 “고객님,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했어요. 영화 볼 때 필요한 팝콘을 구비하고, 겨울철 손님을 위해 쌍화차와 호빵을, 아침에 허전한 분을 위해 컵라면도 준비했어요.
리: 별 차이 없는데요…
진: 그게 경험의 차이에요. 실제로 겪어보면 다르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보통 모텔 오면 쪼르르 방에 들어가기 바쁘잖아요. 그런데 여유 있게 팝콘도 튀겨서 방에 가져가고, 스파도 줄기고. 어찌 보면 호텔보다도 더 ‘숙박’이 아닌 ‘문화공간’으로의 역할을 하게 한 거죠.
리: 이후로도 모텔 운영점을 계속 늘렸나요?
진: 처음에는 그럴 셈이었는데… 회사가 커지다 보니 사람관리 이슈도 커지고, 한없이 늘릴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가자고 생각했고, 프랜차이즈를 고민하게 됐어요. 2011년 4월 직원들에게 숙박업 프랜차이즈 시작할 테니, 프랜차이즈 관련 책을 10권 정도 읽어보라고 사줬어요. 그리고 그 중 책을 가장 열심히 읽은 직원들을 책임자로 숙박업 프랜차이즈를 열었어요. 그게 5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80개가 됐네요.
리: 한때 소셜커머스도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진: 저희가 콘텐츠로 크게 성장하며, 이것도 광고비를 받자… 이런 찰나에 소셜커머스가 생겼어요. 지금은 쇼핑몰이지만 그때는 진짜 로컬 소셜커머스였거든요. 20대 연인을 타겟으로 하는 상품들이 많았는데, 그때 실제로 데이트 코스 페이지뷰가 급격히 떨어졌어요. 그래서 소셜커머스가 한 500개 생길 시점에, ‘안 되겠다. 우리도 소셜 커머스다…’ 이렇게 지른 거죠. 커플 티켓 같은 걸로.
리: 잘 됐나요?
진: 3개월 만에 접었어요.
리: 뭐가 이리 빠르죠(…)
진: 저희 커머스로 한 프랜차이즈 업소가 2억 매출을 올렸어요. 근데 본사 아닌 가맹점주가 단독으로 한 거라서 본사 차원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오더라고요. 본사와 점주가 싸우더니 아예 문을 닫게 됐어요. 그리고 야놀자 회원들이 사용하지 못한 쿠폰은 전부 저희가 환불했지요.
리: 그래 봐야 손해액은 수천만원 수준 아닌가요?
진: 그냥 소셜커머스 업체였으면 계속 갔겠죠. 그런데 이런 문제가 행여나 또 발생하면 회원이 떠나가요. 우리의 핵심은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거잖아요. 매출을 떠나 사업의 핵심에서 벗어나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소셜커머스 직원이 25명 정도 있었는데 다 숙박 쪽으로 돌렸고, 이쪽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했어요.
리: 다양한 고객 경험을 연결시킨다는 측면에서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진: 경우는 다르지만 야놀자는 카페에서 사이트로 이동한 형태잖아요. 이전에 카페 종사자 카페 운영할 때도 제가 만들었으니까 주인장이라 생각했지만, 사용자는 공공의 것이라 생각했잖아요? 그래서 야놀자를 카페에서 사이트로 무게추를 옮길 때도 급격히 옮기지 않고 천천히 옮겨갔어요. 주 사용고객에게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죠. 마찬가지로 고객들에게 너무 많은 걸 제안하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핵심 가치를 중시하는 게 맞죠.
8. 숙박업에 혁신을 입히다: 불편함이 아닌 설렘이 가득한 공간으로
리: 그러고 보니 야놀자가 이렇게 급등한 이유는 결국 모바일 적응에 있다고 봅니다.
진: 그렇죠. 사실 모바일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개발자도 없었어요. 같이 일하던 친구가 아이폰을 가져와서 두꺼운 책을 두고 연구하는 걸 봤어요. 뭐냐고 물었더니, 이게 인터넷도 되고 어플 깔고 하면 별게 다 된다고… 이런 걸 누가 갖고 다니냐 하니, 사장님은 나이 먹어서 모른다고… 속으로 열 받았는데, 6개월 지나니까 진짜 사원 중 30%가 갖고 다니는 거에요. 개발자들한테 일 안 하고 공부해도 좋으니 이거 당장 익히라 했지요. 일단은 외주로 내놓을 테니.
리: 성과는 어떻던가요?
진: 일단 2000만원 주고 모텔 정보만 볼 수 있게 했어요. 솔직히 외주 맡기면 한계가 있어서 별로였긴 한데… 당시는 국산 모바일 어플이 얼마 없어서 구동도 잘 안 되는데도, 엄청 다운 받더라고요. 그래서 더 힘을 쏟게 됐죠. 사실 모바일 이전에는 PC에서 어느 모텔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출력해 갔는데, 이제는 모바일로 바로 확인이 되니까… 우리에게는 큰 기회가 될 거라고 봤어요.
리: 이후 사업에 있어 좀 변화가 있었나요?
진: PC 때보다 고객들이 훨씬 편하게 야놀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됐죠. 쿠폰은 물론이고 숙박, 대실도 예약결제가 돼요. 비오는 날은 모텔 찾아가는 것도 일인데,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리: 뭔가 너무 당연한 것만 넣은 것 같은데요(…)
진: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야놀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히 결제를 편하게 하자는 그것만이 아니에요. 마이룸이라 해서 몰카 걱정을 완전히 없앴고, 내부 비품도 공개했어요. 그런 식으로 숙박업 자체를 완전히 바꾸고 싶어요.
리: 그건 말씀하신 프랜차이즈업 강화인가요?
진: 아니오. 작년에 창립 10주년을 맞아 리스타트 선포식을 했어요. 10년간 해온 모든 걸, 처음 창업한 것처럼 0으로 돌리자는 거죠. 앞으로 생존하려면,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숙박업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옛날 디자인과 운영방식을 일신한 숙박시설 현대화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모텔에 왔을 때 죄짓는 느낌 없이 안락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요약하면 세 가지에요. 인식 변화, 시설 현대화, 운영 매뉴얼화.
리: 인식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진: 지금 모텔이 전국에 3만개가 있어요. 객실로 따지면 100만이 넘지요. 여기에 펜션이 2만 5천 개, 호텔이 1100개, 게스트하우스 5천개 이상… 이걸 다 합치면 200만 객실이 되는데 숙박하려 하면, 뭔가 모텔은 불편하거나 불안하다는 느낌을 주는 거죠. 모텔 갈 때 편하세요?
리: 전 비싼 거 아니면 다 그게 그거라 생각해서… 왁스가 없다 정도?
진: 모텔이 보통 대실 2만 5천원, 숙박 5만원인데, 호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힘들지요. 그런데 저는 좀 의아한 게… 왁스는 호텔에도 없잖아요? 호텔에는 비싼 돈 주면서 당연히 없는 걸로 생각하는데, 모텔은 부족함을 느껴요. 이미 모텔은 가격에 비하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호텔에서 느끼지 못하는 불안함이나 찜찜함이 남는데, 이런 의식 개선이 가능할 정도로 더 좋은 숙박 공간을 제공하려는 게 저희의 업이고요.
리: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요?
진: 실제로 숙박 불편지수가 되게 높아요. 왜 생겼을까 생각해 봤죠. 전통적으로 모텔은 어떻게 보면 불륜, 범죄, 원나잇… 이런 이미지로 느껴졌거든요. 낡아 보이는 네온에, 운영도 꼭꼭 숨어서 잘 보여주지도 않고 말도 거의 없잖아요. 이런 불편한 걸 편하게 하려면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이는 모텔업 종사자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인 게,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잘 쓰잖아요. 그런데 사용자가 깨끗하고 친절하다고 느낀다면 성장폭이 더 커지는 거죠.
리: 그래서 어떤 변화를 꾀하고 계신지요?
진: 지금껏 러브시설로 칭해진 모텔을 설렘과 행복 주는 공간으로 재창조하려고 해요. 이게 지금 진행 중인 좋은 숙박 프로젝트고요. 이게 우리의 비전이에요.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 오는 이들만 곧 연 2000만명이 될 텐데, 언제까지 노동집약적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문화적으로 발달되다 보면 이동이 잦아지고 연인, 출장객, 여행객, 외국인, 다 맞는 기준의 뭔가가 필요해요. 그래서 좋은숙박연구소를 만들어, 좋은 숙박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인테리어, 운영 매뉴얼, 시스템 등을 누구나 다 보고 배울 수 있고 컨설팅까지 하고 있어요.
리: 구체적으로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나요?
진: 코텔이라고 코리아형 호텔의 약자를 내세웠어요. 일단 네온사인과 주차장 가리는 캐노피, 성인방송, 피임 용품을 다 없앴어요. 프론트도 오픈형으로 만들고 출장객, 여행객을 위한 조식 서비스도 추가했고요. 세탁실과 다이닝룸 등도 추가했어요. 여행객들을 위한 캐리어, 짐 보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고요. 일부 코텔은 더 편안함을 주기 위해 가구 디자이너와 콜라보해서 오픈했고,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200점 넘게 전시한 곳도 있어요.
리: 모텔 방 내부적으로도 달라진 게 있나요?
진: 좋은 숙박이 무엇인지 사용자 리서치 해보니 사생활 걱정이 많더라고요. 매우 불편해 해. 그래서 몰카 적발 기계를 도입해서 안심존을 만들었어요. 또 모텔에 있는 세면도구가 좀 비급이잖아요. 그래서 아예 마이키트라는 비품을 저희가 개발해서 넣었어요. 저희가 직접 관리하는 마이룸의 경우 청소 전문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입주청소처럼 분기마다 대청소도 해요.
리: 듣다 보니 되게 단순한 것 같기도(…)
진: 맞아요.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는 게 좋은 숙박이니까요. 그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행복하고 설레고 편안한 게 우리의 목표이자 나아갈 길이지요.
9. 혼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IoT 업체 투자와 김기사∙카카오택시 제휴
리: 기사에 따르면 심지어 IoT 업체에 투자했다는 뉴스도 떴습니다.
진: 앞서 숙박업의 선진화를 이야기했지만, 이게 단순히 서비스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바일을 통해 야놀자가 훨씬 더 편한 숙박 시스템을 마련한 것도 기술 덕이잖아요. IoT 업체 커누스에 투자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굳이 객실 키를 받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알아서 불도 켜지고, TV를 켜면 편하게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고… 이런 것을 커누스 외에도 다양한 회사와의 협력으로 풀어나가고자 해요. 이제 더 이상 혼자서 사업해서 될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리: 혼자서 할 일이 아니라면, 또 어떤 업체와 제휴 중인 것이죠?
진: 예로 최근 카카오택시, 김기사와 제휴, 야놀자 앱에서 이들을 활용할 수 있어요. 야놀자 앱만 켜면 원하는 숙박업소까지 길 안내도 해주고, 필요하면 택시도 오는 거죠. 이미 중국은 이런 것들이 모바일에서 잘 돼 있어요. 한국도 이제 각 서비스들이 서로 연동해서 서로가 잘하는 걸 도울 수 있는 거죠.
리: 제휴하고 싶으면 아무나 메일 보내면 되나요?
진: 네. 야놀자는 숙박업소라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든지 쉽게 제휴할 수 있으니까요.
리: 최근 ‘여기O때’ 등 경쟁업체들이 힘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진: 우리는 우리의 비전이 있고, 우리가 잘하는 걸 해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리: 하지만 경쟁업체의 성장률이 만만하진 않은데요?
진: 어차피 한국 사회가 경쟁 치열하고 미투 모델 금방 생기는 건 누구나 아는 거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모텔업에서 거의 16년 일해 온 저, 그리고 11년간 더 나은 숙박을 위해 노력한 그 경험 자산을 쉽게 따라올 수 있을까요? 아무리 돈을 많이 부어도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분들, 그리고 그 공간을 즐기는 분들의 니즈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본질에 충실할 생각이고요.
리: 하지만 경험만큼이나 자본도 무시 못 할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진: 저희는 지속적인 매출 성장이 있고, 후발업체는 작년까지 매출 없이 투자로만 지출을 감당해왔던 상황이기 때문에, 내실성을 고려한 장기적 관점을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또한 한 번은 제가 대표이사직에서 잠깐 물러났던 적이 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가 큰 기업을 경영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하지만 숙박업소 관련해서 제가 가진 경험이란 게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됐죠.
리: 대표이사에서 잘리다니, 원통하셨겠군요.
진: 아니오.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기였는데요… 일 스트레스 없이 맨날 동네에서 맘대로 술 퍼먹을 수도 있고…
리: …… 회사가 너무 커져서 이제 관리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야놀자의 인사 원칙이 있다면?
진: 작을 때는 제가 일일이 간섭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이제 오히려 내려놓고 있어요. 대신 팀별로 그 문화를 존중하기로 했죠. 예로 디자인팀은 외모를 어떻게 하고 다니든 신경 끄고, 영업팀은 출근 시간 칼같이 준수하고… 그런 문화는 제가 요구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형성한 문화를 존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리: 최근 중국에 다녀왔던데, 중국 진출도 계획하고 계신 건가요?
진: 그걸 노리고 간 건 아닌데… 중국이 이미 한국보다 더 빠른 모바일 발전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서비스와 고객 경험 측면에서는 아직 한국이 좀 앞서 있다고 봐요. 덕택에 어떤 진출이 가능한지,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이고요.
리: 요즘 창업 열풍인데, 그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진: 가꾸지 않아도 곧게 뻗은
나무처럼
어두운 흙 속을 파고드는
뿌리처럼
절벽 아래 소롯소롯 피는
민들레처럼
그렇게 외면된 곳에서
새 생명이, 새 믿음이
지금 여기, 피어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리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야놀자 CEO대학생 멘토단인 ‘전영욱’멘토가 멘티인 저에게 2015년 연말에 선물해준 자작시입니다. 시작도 어렵고, 성장은 더욱 어렵지만 또, 생존은 하늘의 별 따기지 만큼 힘들지만 이왕 창업을 꿈꾸거나, 창업을 했다면 기필코 이루어내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겠네요. 물론 저부터 그래야겠지만…
리: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진: 11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 성공이라는 걸 믿었고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100이라는 것을 만들면 끝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 100을 만들고 보니 겨우 10을 채웠음을 깨달았어요. 사람은 마음도 머리도 환경도 성장을 하게 마련이니까요. 이제 90을 더 채우기 위해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채움의 정도는 저에게 사명감이라는 책임이나 숙명인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숙박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 속 대한민국의 숙박문화로 잘 성장시켜 보겠습니다. 앞으로 야놀자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