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뽑기를 할까? 게임에 돈 쓰게 만드는 심리적 트릭들
※ 본 기사는 TIG 게임연구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게임연구소는 게임이나 개발, 산업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뽑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출 상위권 게임 중엔 뽑기 없는 게임이 더 드뭅니다.
뽑기에 대한 반감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게임을 즐기고 돈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이상한 일입니다.
뽑기의 소수점 이하 확률을 생각하면 돈 쓰는 게 손해니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뽑기에 돈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심리적인 장치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적을 이기려면 먼저 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면 이 트릭을 알고 있어야겠죠.
사람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게임 속 심리적 장치들을 정리했습니다.
# 사람들은 왜 뽑기에 돈을 쓸까? 뽑기를 권하는 심리적 장치들
그거 아시나요?
사람의 뇌는 꾸준한 이득보다 '랜덤한 보상'에 더 흥분한다고 합니다.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의 사냥 성공률은 20~30%에 불과합니다.
성공률은 평균이니까, 어떨 땐 10번을 시도해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들은 이런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
성공한 생물들의 자손이죠.
이런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불확실한 보상에 더 흥미를 느끼게끔 각인된 심리입니다.
즉, 생물에겐 기본적으로 랜덤 보상 모델이 심리학적으로 더 끌리기 쉬운 방식이란 얘기입니다.
똑같이 아이템 얻어도 보스에게 가끔 떨어지는 장비를 직접 먹는게,
잡을 때마다 나오는 토큰을 모아 장비를 사는 것보다 기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뽑기도 같은 원리고요.
1.
여기에 더해 게임엔 뽑기를 더 자극적으로 만드는 각종 심리적 트릭이 가득합니다
대표적인 장치가 뽑기 연출입니다.
이런 것 많이 보셨을 겁니다.
뽑기를 보여줄 때 룰렛처럼 나올 수 있는 것들이 핑핑 돌다가 최종 결과를 보여주는 게임.
뽑기나 강화 결과물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게이지 같은 연출로 아슬아슬하게 보여주는 게임도 흔합니다.
이런 게임에서 간발의 차이로 좋은 것을 얻지 못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겠죠.
그런데 이 아깝다는 생각 자체가 트릭에 빠졌다는 표시입니다.
'니어미스 효과'(Near-miss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스 같은 것에 도전할 때 상대도 안되면 쉽게 포기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실패하면 계속 도전하게 되는 심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생물이 승산 높은 도전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기제죠.
하지만 이게 유료 모델과 결합되면
'연출적으로' 아슬아슬함을 보여줘 뽑기를 계속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애초에 '확률'로 모든 게 결정되는 강화/뽑기에서
아슬아슬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연출이 보여주는 아슬아슬함은
어디까지나 유저의 심리를 건드려 돈을 더 쓰게 하는 심리적 트릭에 불과하죠.
2.
모바일 게임할 때 이런 경험을 한 분들 꽤 되실 겁니다.
당장 전투엔 큰 지장없는데
마일리지를 마저 채우거나 컬랙션을 완성하고 싶어서,
혹은 파티에 하나 있는 3성 캐릭터가 신경쓰여서 뽑기를 한 경험이요.
이것도 심리적 장치에 넘어간 좋은 사례입니다.
사실 이건 게임을 끄려고 할 때
진행 중인 퀘스트는 마치고 종료하려는 심리와 같은 원리입니다.
심리학에선 미완성 효과,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르는 개념인데요.
무언가를 완성시키지 못하면 불편한 심리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첫사랑을 잘 잊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주로 쓰이죠.
이게 게임 유료 모델과 연결되면
가상의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유저가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는 결과를 만듭니다.
몇 번 이상 뽑기를 하면 높은 등급을 보장해 주는 마일리지, 천장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일단 뽑기에 돈을 쓴 유저, 천장 게이지를 어느 정도 채운 유저는
천장을 찍을 때까지 (혹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뽑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니까요
3.
이 효과는 시간이 '제한'됐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모바일 게임의 '한정 픽업'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한정 픽업을 할 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십, 수백만 원을 쓰는 사람들 많죠?
실제로 한국 페그오는 연말에 에레쉬키갈이라는 인기 캐릭터의 한정 픽업으로
매출 순위 TOP 10 안에 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벤트 없을 땐 50위권쯤에서 널뛰던 게임이요.
(물론 여기엔 비슷한 시기 방영된 애니메이션 영향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간 한정 이벤트는 그 자체로 강력한 유혹 도구입니다.
이 때를 놓치면 (XX를 얻기 힘들어져) 손해본다는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원하는 것을 사실상 확정으로 얻을 수 있는 천장 같은 게 더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결제를 유혹하는 심리적 장치가 2중으로 펼쳐진 셈입니다.
실제로 이 영상을 기획한 사람도 랑그릿사 한정뽑기에 쓴 돈이 수백- (삐 / 화면조정)
아무튼 한정 픽업이나 천장 같은 것에 돈 쓰기 전에
그게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미완성 효과나 손실 회피 심리에 휩쓸린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 게임사는 왜 이런 이상한 상품을 만들었을까? 유료모델에 숨겨진 심리적 트릭
1.
대부분의 게임사가 수용하고 있는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캐쉬를 현금 단위 대신, 다이아나 루비 같은 가상의 화폐로 표시하는 것이요.
보통은 이런 재화와 현금이 1:1로 매치되지 않아 계산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왜 게임사는 이렇게 직관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걸까요?
이건 지출을 꺼리는 인간의 마음을 둔화시키기 위한 심리적 장치입니다.
사람은 심리 상, 같은 돈이어도 이걸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이걸 쓸 때의 저항감이 더 크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원을 쓰는 것보다 모으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얘기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 '고통 회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재미있는 게,
지출 수단이 현금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뀌면 저항감이 크게 낮아집니다.
우리가 현금을 직접 쓸 때보다
신용카드나 간편결제를 사용할 때 돈을 더 쉽게 쓰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걸 게임에 적용한 게 다이아나 루비 같은 캐쉬 단위입니다.
캐쉬 재화의 생김새나 교환비가 현금과 다른 것도 이걸 현금과 다르게 인식하게 해
캐쉬 쓰는 저항감을 낮추기 위함입니다.
요즘은 게임에 결제할 때 간편 결제나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효과가 2중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 이렇게 캐쉬를 가상의 단위로 만드는 것은
유저에게 '이 돈은 게임에 써야 하는 돈'이라고 인식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사람은 은연 중에 돈의 쓰임새를 구분해 중요한 돈은 잘 안 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지갑 안에 있어도 내가 비상금이라고 정한 돈엔 손이 잘 안 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비상금이라고 정한 돈은 마음 속에서 다른 돈보다 더 가치가 높게 설정되기 때문이죠.
심리학에서 '마음의 회계'(mental accounting)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이걸로 게임을 보면 캐쉬는 돈에 '게임용'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더 쉽고 거부감 없이 게임에 돈 쓰게 만드는 효과를 만듭니다.
때문에 게임사는 유저들이 일단 게임 캐쉬를 결제하게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죠.
공짜로 준 캐쉬론 아슬아슬하게 10연차를 못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2.
모바일 게임은 보통 상품 가격을 만 원 이상으로 구성합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게임은 몇천 원 정도 가격에 굉장히 많은 혜택을 주는 상품을 팔곤 합니다.
이걸 보고 "이 정도는" 하면서 결제한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해외에서 많이 쓰이는 심리적 장치 중 하나입니다.
잠깐 문제 하나를 풀어볼까요?
무과금 유저에게 만 원 결제를 유도하는 것과
만 원 쓴 유저에게 10만 원 결제를 유도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힘들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게임 마케터들은 대부분 전자가 더 힘들다고 얘기합니다.
인간은 심리 상 자신의 행동을 잘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안 쓴 사람이 쓰게 하는 것보다 쓴 사람을 더 쓰게 하는 것이 쉽다는 말이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싸고 효율 좋은 유료 상품은 게임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무과금 유저는 평생 무과금일 가능성이 크지만,
소과금 유저는 앞으로 얼마든지 돈을 더 쓸 수 있으니까요.
현실의 미끼 상품도 이런 사례입니다.
모바일 게임이 초반에 행동력이나 무료 캐쉬를 막 퍼주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나중에 수급량이 정상화됐을 때, 혹은 이벤트 등으로 캐쉬나 행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됐을 때
풍족한 플레이를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쉽게 지갑을 열거든요.
심리학에서 '문간에 발 들여 놓기' (foot-in-the-door technique)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영업직들이 방문 판매를 할 때 "물 한 잔만 얻을 수 있을까요" 같은 작은 부탁으로 시작해
상품 구매 같은 점점 큰 부탁까지 성공시키는 데서 나온 얘기입니다.
그러니 게임에서 상품을 살 땐, 그게 정말 필요해서 사려는 것인지
단순히 싸니까 사려고 하는 것인지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3.
모바일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어처구니없는 상품을 보곤 합니다.
다른 상품 가격이 만 원, 3만 원, 5만 원인데 혼자 10만 원이라던가,
바로 윗 단계 상품에 비해 혜택이 부족해 보이는 상품이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상품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 너무 싸거나 혜택이 좋은 사례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상품을 이상하게 디자인했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이 상품은 다른 상품과 '비교'되는 것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 했습니다.
이상해 보이는 상품이 다른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 원, 3만 원, 5만 원, 10만 원짜리 상품이 나란히 있으면
아마 사람들 눈엔 10만 원짜리 상품이 비싸 보이겠죠.
그러면 은연 중에 나머지 상품은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각 상품을 따로 인식할 때보다) 싸다고 생각한 상품을 살 확률도 높아집니다.
이렇게 선택지 중 하나가 기준이 돼 다른 선택지의 인상을 바꾸는 것을
'닻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합니다.
선택지 하나가 '닻'처럼 다른 선택지의 가격을 끌어내리는 것처럼 보여 나온 말입니다.
앞에서는 가격이 비교되는 사례를 얘기했는데,
이건 유료 상품 곳곳에서 흔히 쓰이는 기법입니다.
예를 들어 캐쉬를 100개, 500개, 1000개씩 판매한다고 할 때
추가 혜택으로 50개, 300개, 800개를 더 얹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800개 더 주는 상품이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력이 있으면 이걸 사려고 하고요.
사실 그게 가장 비싼 상품이고, 당장 내겐 그만한 캐쉬가 필요 없을지라도 말이죠.
# 마치며
지금까지 게임을 할 때 돈을 쓰게 만드는 만드는 여러 심리학적 트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이런 요소가 있으니 게임에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콘텐츠를 즐기는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니까요.
다만 한번 쓰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부담이 큰 최근 게임계 유료 모델에서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는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충동적인 결정은 게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상이 충동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만족스럽게 게임을 소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