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SNS스타, 슈트 이미지 컨설턴트 박치헌씨
그의 손만 닿으면
촌놈도 패셔니스타로
2009년부터 대구에서 맞춤 정장점 운영
젊은 시절 방황하다 55세 때 가봉법 배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지' 만드는 컨설턴트
저녁 8시마다 네이버 블로그에 당일 입은 옷차림 사진을 올리는 남자가 있다. 분홍색 재킷, 바다색 바지, 벽돌색 넥타이도 즐겨 입는다. 닉네임은 ‘불량소년’, 별명은 ‘대구 패션피플’. 블로그에 150만명 넘게 다녀갔다. 180cm 훤칠한 키와 패션 감각을 보면 청년 같지만 환갑을 넘긴지 오래다. 주인공은 ‘슈트 이미지 컨설턴트’ 박치헌(62)씨. 60대 아저씨가 올리는 ‘데일리 룩’에 2030세대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2014년 LF의 남성복 브랜드 ‘일꼬르소’가 주최한 패셔니스트 파티에서 인기투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유명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도 그에게 표를 던졌다. 네티즌들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중년이 있다니”, “포스가 대단하다"라고 했다.
2009년부터 대구에서 양복 맞춤 정장 가게 ‘더 가이’를 운영하고 있다. 남성 고객에게 어울리는 코트, 정장, 셔츠, 넥타이 등을 코디하고 제작한다. 고객은 20대 대학생부터 50~60대 사업가까지 다양하다. 젊은이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멋진 아재’로 통한다.
요일별로 색(色)다른 옷을 입는 남자
그는 요일별로 색을 다른 색 옷을 입는다. 월요일은 차분하게 한 주를 시작하기 위해 회색을 선택한다. 화요일엔 불 화(火)에 맞게 붉은색이나 타고 남은 잿빛으로 입는다. 수요일엔 네이비, 목요일엔 갈색이나 녹색을 선택하고, 금요일에는 상·하의를 따로 나눠 입는다. 토요일에는 타이 없이 캐주얼하게, 금요일에는 제일 멋지게 차려입는다. 패셔니스타답게 정장만 100벌이 넘는다. 양말은 500켤레, 구두는 70~80켤레를 갖고 있다.
박씨가 운영하는 ‘더 가이’는 남성 클래식 정장 전문점이다. “클래식 정장을 ‘옛날 옷’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클래식’이란 나이와 시대를 넘어 ‘표준이자 기본’이 되는 옷을 말합니다.”
재킷, 바지, 셔츠까지 한 벌에 평균 120만 원 선. 한 달에 맞춤 정장 15~20벌, 수제 셔츠는 100여 장이 나간다. 정장 한 벌을 맞추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좋다.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 옷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둘째, 한번 찾아온 고객은 반드시 단골로 만든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가족 전체가 찾아오기도 한다.
50대에 새로운 도전
그는 중소기업 3곳을 다닌 끝에 마침내 옷으로 창업했다고 했다. "30년 넘게 ‘옷 덕후’로 살다 50대에 처음 옷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취미를 오랜 열망 끝에 직업으로 만든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을 ‘옷에만 정신 팔린 사고뭉치’라 불렀다. 1954년 대구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교였고 외갓집은 목욕탕을 해 부유하게 자랐다. 1971년에 서울 무교동으로 올라와 살며 옷에 눈을 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놀러나갈 때도 4만원짜리 정장을 입고 다녔다. 짜장면 한 그릇에 50원일 때였다. 1973년에 성균관대 생활미술과에 들어갔으나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제가 서른 살까지 정신 못 차리고 놀았어요. 부모님 재산 축내며 몸 치장하는 데 썼죠. 다른 형제들은 잘 나가는 직장인, 의사였는데 저만 뒤처졌습니다. 철없던 청년 시절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재일교포 부인을 만나 일본에서 살다 한국에 들어와 무역회사 예스코리아익스프레스, 자동차 정비소, 의료기기 회사 솔고바이오메디칼 등에서 일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옷 사랑은 유별났다. 재단사에게 ‘옷을 잘 만들어 달라’며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남성 복장 관련 서적을 미국이나 유럽에서 들여와 읽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 계기는 50살이 훨씬 넘어 찾아왔다.
2008년 초였다. 대구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40대 지인이 ‘나도 멋지게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지인은 불룩 나온 배를 가리기 위해 옷을 크게 입었다. 박씨는 그에게 CEO로서 어울리는 네이비색 클래식 정장을 추천했다. 머리 스타일은 물론 구두까지 골라주었다. 지인은 “주변 사람들이 칭찬하며 난리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라고 고마워했다.
“옷만 다르게 입었을 뿐인데 모델처럼 자신 있게 다니고 싶을 때가 있고,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다닐 때도 있죠. 옷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옷 만드는 재주는 없지만 이미지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5세였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살던 그는 서울로 올라와 중구와 종로 일대를 수소문했다. 70~80년대 맞춤 정장 공장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무작정 재단사를 찾아가 “가봉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가봉이란 옷을 재단하기 전에 몸에 맞게 시침바느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깨와 가슴 굴곡은 잘 잡혔는지, 길이는 적당한지, 주름이 들어갈 곳과 들어가지 않을 곳을 판단해야 한다. 3mm의 오차를 생각하며 세밀하게 가봉해야 실루엣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양복을 만든다면 ‘재단’이 기본이다. 재단이 아닌 가봉만 가르쳐 달라는 박씨의 요구가 장인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렸다. 중구와 종로 일대에 ‘돈키호테’라 소문이 났다.
“지금 와서 재단을 배워봤자 장인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 뒤떨어질 게 뻔했죠. 저는 사람의 이미지와 체형에 맞게 옷을 고르는 데 자신 있었습니다. ‘수트 이미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선택한 거죠.”
수십 차례 거절을 당하다 소공동에 있는 해창 양복점에 찾아갔다. 삼성 이병철 회장, 현대 정주영 회장도 옷을 맡겼다는 곳이었다. 40년 동안 정장을 만든 한창남 장인이 운영했다. 한 장인은 “재단 못하고 가봉만 하는 사람 본 적이 있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재단사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정장 제작법을 공부했다. 형제와 친구를 마네킹 삼아 바느질을 연습했다. 넉달 후 ‘하산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남자 직장인이 정장 잘 입는 법
2009년에 문을 연 이후 2년 동안 어려움을 면치 못했다. 고객은 형제자매나 지인 위주였다.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2012년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찾아오는 고객 30~40%는 청년들이다. “의상에 대한 전문 교육 과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제가 입는 옷과 다시 찾아오는 고객이 제 실력을 증명합니다.”
슈트 이미지 컨설턴트 박씨가 말하는 ‘정장 잘 입는 법’을 소개한다.
①옷을 선택할 때 첫째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 색과 대비
“‘나는 빨간색은 안 받아, 노란색은 안 받아’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같은 빨간색도 검붉은색이냐, 새빨간색이냐, 파스텔 톤이냐에 따라 다르죠. 채도가 조금만 달라도 어울렸던 색이 금방 얼굴을 칙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머리색과 피부색 대비도 중요합니다. 가령 동양인은 머리가 검고 피부는 하얗죠. 대비가 큽니다. 서양인은 밝은 머리색에 밝은 피부니 대비가 적어요. 재킷과 셔츠는 이 대비에 따르면 됩니다. 동양인은 짙은 색 재킷에 연한 색 셔츠일수록 잘 어울립니다. 혹은 재킷과 셔츠를 연하게 입고 넥타이는 짙은 색으로 해줄 수도 있죠.”
②곡선을 살린 옷을 입어라
“펑퍼짐하게, 타이트하게 말고 꼭 맞춰야 합니다. 몸의 곡선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깨와 등에도 곡선이 있어요. 남자라도 가슴 부분이 약간 튀어나와야 합니다. 기성복으로는 저마다 가진 곡선을 살리기 어려우니 멋내기 쉽지 않죠.”
③옷은 밥상과 같다.
“음식에 비유했을 때 그 음식에 들이는 정성만큼 옷에 신경 쓰면 됩니다. 갈비찜 같은 주 요리가 상의고, 바지는 잡채, 셔츠와 액세서리는 밑반찬에 해당하죠. 구두는 밥, 벨트는 국입니다. 시계는 반주(밥을 먹을 때 함께 마시는 술)인데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죠. 때에 따라 음식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④명품만 고집하지 않는다.
“옷 잘 입는 사람은 가격을 따지지 않죠. 제가 즐겨 입는 코트 중에는 7000원짜리도 있습니다. 중고시장에 숨은 옷을 찾아내는 걸 좋아합니다.”
⑤충동 구매는 하지 않는다
“오늘 본 옷은 바로 사지 않습니다. 집에서 옷장을 열어두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갖고 있는 옷과 어울리냐, 내게 어울리는 색과 재질을 따지죠. 옷과 인생은 후회하지 않으려면 고심해야 합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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