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 "선택의 문제죠"..엄마 성(姓) 물려주는 부모들

김지현 기자 2021. 5. 15.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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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ekend]아빠 대신 엄마 성(姓)으로
"함께 키우니 같이 선택해야죠"...성(姓) 물려주는 엄마들
이수연씨 가족사진 /사진=이수연씨 제공

"신기해하세요. 멋있다는 반응도 있고요."

아빠 박기용씨(44)와 엄마 이수연씨(40)는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은 '이제나'(2)양이다. 부모는 딸에게 어머니의 성(姓)을 물려줬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주면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남편에 대한 칭찬이 많다고 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린이집, 학교에 간 뒤 선생님으로부터 가족관계에 대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씨는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 중엔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 이씨는 '세상이 잘 바뀌는 중입니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씨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혼,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가족에 대한 개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고 한다.

◇"왜 꼭 아빠 성을 따라야 하나요?"

혼인신고서 /사진=정부24


엄마의 성을 자식에게 주는 것은 남편 박씨가 먼저 제안했고, 이씨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식구들 중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서다.

이씨는 "시어머니의 경우 '다시는 볼 생각하지 마라'는 말도 하셨다"며 "한 번도 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이라 놀라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장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고 섭섭해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의 결심 만으로 어머니의 성을 자식에게 물려 줄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은 민법에서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부성우선주의 원칙'이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부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었고, 이들이는 이 방법을 택했다. 아이 출산 후 진행한 혼인 신고에서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부부는 '예'라고 체크했다.

이와 함께 '부부협의서'를 제출했다. 협의서는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거나 구청 등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 부부 양쪽 모두 서명을 했다. 아빠 성을 따를 때는 전부 거치지 않아도 되는 절차들이다. 이 과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씨는 "출생신고가 아닌 혼인신고 때 이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너무 불편한 사실"이라며 "아직 아이도 안 태어났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부부에게 '아이 성은 뭐로 하실래요?'라고 물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 차씨?…선택의 문제입니다

차수연씨 부부 /사진=차수연씨 제공


이씨는 직접 행동에도 나섰다. 결혼 3년차 차수연씨(32)와 함께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차씨는 앞으로 자신의 성을 아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 상황이다. SNS엔 뜻을 같이하는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엄마 성을 물려주겠다하면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차씨는 되려 단순한 이유에서 결심을 했다고 한다. 차씨는 "제 성이 남편 성인 김씨보다 특이해서 이름 짓기에 더 예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 보다는)가족이 함께 있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지난달 27일 '부성우선주의 원칙' 폐기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전통적 가정 개념이 파괴되고 가정 내 불화와 분열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장기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하지만 이씨와 차씨는 이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제 막 17개월 된 터라 엄마 성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씨는 대신 올해 11살이 되었다는 조카의 말을 전해줬다.

이씨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기 이름은 뭐로 할 거냐, 성은 무엇이냐는 조카의 질문에 '삼촌이나 숙모 성 중 고를 생각이다'고 말했더니 '숙모가 낳을 거니까 숙모 성으로 해요'라고 하더라"며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들 시각에선 아빠와 엄마가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니 둘 중 한 명의 성으로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라며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꼭 아빠성을 따라야 정상?" 먼저 물려주자고 했어요
# 결혼 8년차 정민구씨(41)는 최근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이 성(性)은 아내의 것을 따를 예정이다. 엄마 성을 물려줄 거라는 말에 동료와 친구들은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굳이?'라는 얼굴로 쳐다보기도 한다. 지인 중 한 명은 "지예(아내 이름)의 성인 '김'씨도 아버지 성이잖아?"라고 되묻기도 했다. 엄마 성 쓰기는 결국 아빠 성 쓰기가 아니냐는 뜻이다. 정씨는 이에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빠 성 쓸 거냐는 질문에…나도 모르게 "네"라고 했다

정민구씨 부부 캐리커쳐 /사진=정민구씨 제공


박기용씨(44)의 17개월 된 딸아이 이름은 이제나다. 신문기자인 그는 여성가족부(여가부)를 취재하던 2017년 엄마 성 물려주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에게 "우리도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다.

다만 이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상태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현행 제도에선 혼인신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체크해야지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미 혼인신고를 한 정씨는 곤혹을 겪었다. 변호사의 자문을 구했더니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혼인신고 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정씨는 "당시 담당 공무원이 스치듯 '아빠 성 쓰실 거죠?'라고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네' 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며 "묻는 직원도, 나도 당연히 아빠 성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우선 '성본변경신청'을 통해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집안 반대도 있지만…"내 안의 가부장 깨는 기회"

성본 변경신고서 /사진=정부24


아내의 성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아직 주변의 반응은 시원찮다. 결혼 3년차 김한울씨(34)는 "좋은 취지고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빠와 성이 달라서 왕따를 당하면 어떡하냐", "부모 욕심 아니냐" 등의 말을 들었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박씨는 "평소 식구들에게 (아내 성을 물려주겠다고) 운을 띄웠는데도, 마지막엔 어머니와 여동생이 극렬하게 반대를 했다"고 말했다. 되려 오기가 생겼다. 박씨는 "대체 성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 열을 내나, 최악의 경우에도 친척 어른들에게 뺨 정도 맞고 끝나지 않겠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다른 부부에게 '엄마 성 물려주기'를 추천하겠냐는 말에 정씨는 "적극 추천한다"고 답한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내 안의 가부장'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무엇보다 '아빠의 각오'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왜 이렇게 하려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 있어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아내가 설득해 어쩔 수 없이 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며 "부부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가부의 이번 '부성우선주의 폐기' 방침을 들었을 때 김씨의 첫 마디는 '드디어'였다. 우리만 있는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아직'이라는 반응도 있다. 박씨는 "사회가 바뀌고 있는 건 맞지만 기대보다 속도가 느리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아이 성을 결정하는 시점이 출생신고가 아니 혼인신고 때라는, 상식적으로 봐도 이상한데도 문제가 고쳐지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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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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