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짜리" 화장품, 대륙의 맘을 훔친 '이 브랜드'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후(더 히스토리 오브 후)'가 2019년 광군제 하루 매출 721억 원을 돌파하며 역대 광군제 최고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후의 매출 성장에는 중국 시장에서의 높은 인기가 뒷받침되었다. 경쟁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1조 4000억 원 가까이 증가했던 설화수의 매출은 2017년 사드 보복 이후 1조 1000억 원 대로 떨어졌고, 2018년에도 1조 2000억 원 가량을 기록했다. 반면 '후'는 얼어붙은 한중 관계 속에서도 높은 인기를 유지하며 2018년 이후 단일 브랜드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단일 화장품 브랜드만으로 2조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후는 현재 프랑스의 화장품 브랜드 입생로랑이나 일본의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보다 매출 규모가 더 커졌으며, 미국의 에스티로더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처럼 '후'가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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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건, '차별화된 포지셔닝'으로 돌파구 발견하다
2003년 1월 첫 출범 당시 ‘후’는 방문판매 시장에서 월등한 선두 주자였던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도 차별화 포인트는 있었다. 가격이 더 비쌌다는 점과 ‘궁중’을 브랜드의 테마로 잡았다는 점이다. 후는 우리나라 전통악기 해금의 이미지에서 차용한 한자 후(后)를 브랜드명으로 도입, 패키지에 적용했다. 궁중왕실의 고서를 데이터화하고 고대 왕실 여성들의 노화 방지 방법을 개발 과정에 녹이는 등 브랜드 테마에 충실하게 초점을 맞추어 제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진입 장벽이 높았고 ‘상위 1%를 위한 제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고가 마케팅을 하자니 당시 럭셔리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던 해외 유명 브랜드들에 밀렸다. 당시 ‘후’ 담당자들의 고민은 ‘한방화장품 카테고리 내에서 어떻게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였다. 이 시점에 LG생건에 부임한 차석용 부회장은 “한방 브랜드 말고, ‘궁중 브랜드’하세요.” 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콘셉트에 사로잡히지 말고 차별화를 강구하라는 의미였다. 그동안의 '후'는 ‘궁중’이라는 후만의 차별성이 있었음에도 '한방 브랜드'라는 콘셉트에 집중한 나머지 이를 간과해왔던 것이다.
후는 이후 ‘궁중 카테고리’에 맞춰 브랜드를 재정립하는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 ‘한방 화장품’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노(no)모델’ 전략에서 벗어나 왕후의 옷을 입은 연예인 모델 이영애를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영애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후'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대장금 등의 드라마로 원조 한류스타격인 이영애를 기용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차츰 쌓이기 시작했다. '궁중'이라는 테마에 초점을 맞춰 고급화 전략도 이어갔다. 후의 최고급 크림 ‘환유고(68만 원)’는 백화점 화장품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샘플 증정 행사도 최고급 호텔을 선별해 진행했다. 여성지도자 컨퍼런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 패션쇼 등 ‘현대판 왕후’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행사만 골라 후원하기도 하는 등 철저히 브랜드 테마에 입각한 마케팅으로 '궁중'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립해나갔다.
중국 소비자 '취향저격'한 프리미엄 전략
후의 중국인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은 2007년 이후 진행되었다. 당시 중국 법인 진출 시점에 맞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과 금색으로 용기를 제작하는 등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 데 주력했다. '운'도 따라주기 시작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 당시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국내 활동 중 우연히 ‘후’의 광고 이미지와 함께 사진이 찍힌 것이 중국 시장 진출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펑리위안이 입고 쓰는 모든 것은 중국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항상 트렌드가 되어왔다. 중국어로 왕후(王后)를 연상시키는 '后'라는 브랜드와 펑리위안 여사가 만들어낸 '프리미엄' 이미지는 많은 중국 여성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했다.
LG생건은 후의 중국 진출을 놓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친다. 2012년 한류의 영향으로 '후'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하자 경영진들은 “중국 시장에서는 고급 브랜드로 승부한다.” 라며 이자녹스 등 중국에 진출했던 자사 중저가 브랜드를 모두 철수시켰다. 대신 후의 제품 패키지는 더 고급화했으며 기존 출시 제품보다 더욱 비싼 고가 브랜드 라인을 개발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의견도 적극반영하며 '소통'하는 브랜드의 본보기가 되었다. 165만 원짜리 ‘환유’ 세트는 이전에 환유고(크림), 환유진액(에센스), 환유동안고(아이크림)등이 각각 제법 부피가 큰 박스에 담겨 판매됐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세 제품을 모두 사고 싶은데 여행 가방에 넣고 귀국하기엔 부피가 너무 크다”는 의견을 제기하자 LG생건은 이 세 제품을 모두 합쳐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였다. 제품을 담은 패키지에는 자개 등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곁들였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각 모서리 디자인을 반영하기도 했다.
후의 기획 제품들은 예쁘게 포장한 세트형 선물을 선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대신 ‘흔하게 보이지 않게 한다’는 기본 원칙을 준수하였다. 패키지는 점점 더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도 때때로 바꾸며 매번 신선하게 느끼도록 제작했다. 또한 1인당 판매 수량 제한, 전세계 10개 세트만 한정 출시 등 ‘동경의 가치(aspiration value)’를 높이려는 노력도 지속했다. 작년 4월에는 '2019 환유 국빈세트'를 출시, 후의 최고급 라인인 '환유'라인에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109호 이재만 화각장과 64호 박문열 두석장의 손길이 담긴 '왕후의 경대(거울이 포함된 작은 화장대)'를 더했다. 전세계 단 10세트만 출시된 환유 국빈세트의 가격은 2000만 원 대로 알려져 있다.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급 화장품을 소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제품 자체의 품질뿐만 아니라 이 제품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제품에 투영해 제품 자체에 ‘품격’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지기 때문이다. 후는 중국 소비자들의 이런 점을 빠르게 캐치하여 성공을 일궈냈다. 제품 패키지에도 왕실 브랜드 스토리를 충실히 반영하며 이들이 원하는 ‘품격 욕구’를 꾸준히 자극한 것이다.
후(后), 만년 2위의 역전! 1위 독주 시작되나
한방 브랜드를 고집하던 후는 설화수에 밀려 만년 2위였다. 설화수는 1997년 탄생한 한방 화장품의 원조격인 브랜드다. 후발주자였던 후가 시장에서 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면 차별화된 포지셔닝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차별화 전략을 추진한 이래로 이변이 시작되었다.
2014년도 말 면세 시장에서 면세 매출 1위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이는 화장품 브랜드는 물론 루이비통, 구찌 등의 해외 유명 럭셔리 브랜드까지 포함한 매출 순위였다. 배경에는 단연 중국 소비자들의 힘이 있었다. 사드 사태 후 한한령에도 후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LG생건은 작년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3000억원을 돌파하며 LG그룹 내에서 LG전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돈을 번 회사가 되었다.
또한 작년 11월 11일 중국 광군제 행사에서 단 하루만에 72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2018년 대비 208% 매출이 신장된 결과이기도 하다.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전년 대비 4계단 상승한 후는 에스티로더, 랑콤, SK-II에 이어 단일 브랜드 매출 4위를 기록했다.
후는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 차별화된 포지셔닝과 독보적인 프리미엄 전략,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낸 디자인과 패키징까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왔다. 만년 2위에게도 역전의 기회는 주어진다. 기회가 주어진 순간 그 기회를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노력과 숱한 시행착오에 달려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72호
필자 김현진 기자
인터비즈 박윤주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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