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안태양 >"김치를 가루로 만든 것처럼.. 'K-푸드 고정관념' 버려 대박났죠"

■ 美 아마존서 ‘김치 시즈닝’ 완판 - 안태양 푸드컬쳐랩 대표
누가 김치를 가루로 먹냐?
왜 김치는 그래야만 해?
외국인 먹기 어려운 김치에
감칠맛·건강 이미지 담아
마케팅 비용이 없어
외국 유명 인플루언서들에게
SNS로 진심 담은 편지도
전세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 늘고
김치가 면역력에 좋다는 것이
완판에 큰 도움 됐죠
김치 시즈닝? 라면 스프처럼 생겼는데 고춧가루 향이 난다. 콕 찍어 맛을 보니 강한 매운맛과 함께 짠맛, 신맛도 느껴진다. 우리말로 조미료인 시즈닝은 음식에 첨가해 맛을 돋워주는 역할을 한다. 콩나물국과 어묵탕에 넣어보니 칼칼한 감칠맛이 올라왔다. 삼겹살, 자장면, 돈가스에 곁들였더니 매콤함이 느끼함을 잡아줬다. 처음에 낯설었던 가루를 이런저런 음식에 뿌려보며 ‘아는 맛’에서 ‘색다른 맛’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만들었는데 미국에서 먼저 유명해진 이 ‘김치 시즈닝’은 지난해 4월 아마존에 출시하자마자 초도 물량을 완판했다. 이후 아마존 칠리파우더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더니 현재 국내외 누적 판매량이 10만 개를 넘었다. 제품을 개발한 주인공 안태양(36) 푸드컬쳐랩 대표를 지난 1월 29일 강남의 한 공유 사무실에서 만났다. 본사와 거주지가 전남 순천으로 서울에는 일이 있는 경우에 올라온다고 했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어제도 3시간밖에 못 잤다는데 시원시원한 말투에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어떻게 김치 시즈닝을 만들게 됐을까? “외국 사람들이 현지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국 소스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치를 가루 타입 소스로 만들면 음식 여기저기에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김치를 가루로 누가 먹겠냐며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는데, 오히려 저는 왜 꼭 김치는 그래야만 하는지 생각했어요. 외국인들은 ‘김치’ 하면 ‘매운 감칠맛, 유산균, 건강’을 떠올려요. 오래 보관하며 먹기 어려운 김치의 형태는 깨버리고 이런 이미지를 담아 만들어 보자 했죠.”
그래서 김치 시즈닝은 배추와 무를 뺀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가루로 만들어 혼합한 후 김치에서 뽑은 유산균을 주입해 숙성, 발효시켜 생산한다. 글루텐 무첨가(Gluten-Free),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은(Non-GMO) 제품이다. 특히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을 위해 젓갈도 뺐는데 김치 맛을 살리기 어려워 샘플 작업만 24차례 했다. 아이디어에서 최종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아마존 입점 후 반응은 뜨거웠다. 절대 제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일본 조미료 시치미보다 더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1위를 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을까? “시장에서의 가능성은 확신했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좀 불안했습니다. 안 팔리면 내가 다 먹어야 하나 그런 걱정도 했어요.(웃음) 꼭 팔아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마케팅 비용이 없어 외국 유명 인플루언서들에게 SNS와 이메일로 제 진심을 담은 편지도 보냈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늘고, 김치가 면역력에 좋다고 알려진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주된 구매자는 30∼40대 백인 여성들이었다. 시즈닝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스테이크나 피자, 샐러드, 감자튀김 등 다양한 음식에 뿌려 먹고 빵 만들 때 반죽에 넣기도 한다. 국내도 인터넷으로 시작했는데 지난달부터 오프라인 판매도 하게 됐다. 방송에 나가고 입소문이 나면서 구매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제로 칼로리인데다 닭가슴살에 뿌려 먹으면 한결 맛이 좋아지기에 다이어트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현재는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다. “충북 제천 공장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하루 1t씩 만들어내는데 물량을 못 맞추고 있어요. 아마존에도 비행기로 계속 실어 나르지만 보내는 족족 품절되고 있고요. 아마존 기준으로 재고 1만 개를 비축해 놓으려고 준비 중이고 미국 현지 공장 가동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동, 인도, 홍콩 등과도 계약했다.
이러한 안 대표의 성공은 한순간에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다. 대학을 다니다 2008년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때마침 필리핀은 한류 붐이 일었고 여기서 뭐라도 하면 잘될 것 같아 자퇴하고 한국에 있는 동생 찬양 씨를 불렀다. 금요일마다 5000명이 몰리는 야시장에서 10%인 500명에게만 팔아도 성공이라는 생각에 2010년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동생 월세 보증금 300만 원과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첫날 야심 차게 100인분을 준비했는데 2인분 판 것이 전부였다. “98인분을 버리고 밤새 펑펑 울었어요. 도대체 왜 안 팔리는지 알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다시 야시장에 나갔죠.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정말 피가 마르고 잠도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장사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장사와 관련된 책 30권을 보며 파고들었고 배운 것들은 바로 적용해 보기도 했다. “피곤과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나라도 떡볶이를 사 먹지 않을 것 같아 매일 30분씩 웃는 연습을 했어요. 주변 상인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갔더니 처음엔 달갑게 여기지 않던 그들이 조언을 해주고 단골도 소개해주더군요.” 그렇게 6개월을 노력하자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서울시스터즈’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1년 6개월 만에 매장을 8개까지 늘렸다.
서울시스터즈는 필리핀 매스컴에도 소개되며 유명해지고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전쟁터였다. 학생이었다가 사업을 시작했으니 리더의 역할이 뭔지를 몰라 매장과 직원은 늘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 한계를 느껴 비즈니스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마침 필리핀 최대 식품 유통회사인 GNP트레이딩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고, ‘내 밑에 들어와서 사업을 배워보라’는 화교 회장의 말에 2012년 신사업개발본부장으로 들어갔다.
GNP트레이딩에서 능력을 펼치며 계속 일할 수 있었지만 5년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더 나이 들면 자신의 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안주보다는 모험을 선택한 그는 2018년 K-푸드 스타트업 ‘푸드컬쳐랩’을 열었다. “식품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빠르게 소량으로 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해 보고 수정해서 다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아쉬워요. 김치 시즈닝 생산을 위해 제조사를 다 찾아다녀야 했고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있었어요. 최소주문수량(MOQ)도 커서 만약 실패하면 다음 제품을 기획하기도 어려워요.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제도 지원과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좋겠어요.”
안 대표는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외 관련 책부터 주요 신문, 논문까지 보는데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시장조사도 많이 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해외에 실제 살아보면서 부엌과 조리 형태 등을 이해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사람들이 무엇을 사고 먹는지 하루 종일 체크했어요. 요즘은 SNS를 통해 각 나라의 생활 패턴과 트렌드를 파악하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노력이 모여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안 대표는 곧 고추장 소스 출시도 앞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추장을 좀 묽고 덜 짜게, 그러면서 고유의 발효 맛은 고수한 핫소스로 개발했다고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도전하며 이루고픈 그의 꿈은 과연 무엇일까? “케첩이나 마요네즈처럼 전 세계 어느 집에 가도 주방에 우리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K-푸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이 제품은 꼭 있어야 해. 이 브랜드는 정말 괜찮아.’ 그렇게 신뢰받는 회사로 성장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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