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우리 선시 산책] "대단하군.. 그래 무얼 얻었나"

정민 교수의 '우리 선시 산책'이 궁금하다면

행각

치악산 푸른 일천 뫼에 옷이 죄 헤지고

금강산 만길 봉우리에 갓이 다 부서졌네.

오대산 산길은 발길 두루 미쳤겠고

묘향산 우는 시내 한도 없이 들었겠군.


衣穿雉嶽靑千朶         冠破金剛萬仭峯

의천치악청천타        관파금강만인봉

五臺山路行應徧        香嶽鳴泉聽不窮

오대산로행응편        향악명천청불궁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행각하는 사미에게 주다(贈行脚沙彌)」

운수의 행각 길에 선 사미승과 대화하다 써준 시다. “그래 이제까지 어느 산 어느 산을 돌았더냐?” “네, 스님! 먼저 원주 치악산의 일천 봉우리를 헤매 돌고, 이어 금강산 1만 2천봉을 답파했습니다. 그 사이에 옷은 온통 헤지고 삿갓은 모두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도 발품을 쉬지 않고 곧장 오대산으로 들어가 온 산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북쪽으로 묘향산에 갔을 적에는 끝없이 울며 흐르는 냇물 소리가 이제껏 생각납니다.” “대단하군. 그래 무엇을 얻었나?”

의천(衣穿): 옷이 헤져 구멍나다.

치악(雉嶽): 치악산.

천타(千朶): 타는 휘늘어진 꽃송이. 여기서는 산 봉오리. 일천개의 봉우리.

관파(冠破): 모자가 부서진다.

만인봉(萬仭峯): 만 길의 봉우리.

행응편(行應徧): 발걸음이 응당 두루 미치다.

향악(香嶽): 묘향산.

명천(鳴泉): 우는 냇물.

청불궁(聽不窮): 끝없이 들리다.

작자 소개


제월 경헌(霽月 敬軒, 1542~1633)

조선 중기의 승려. 본관은 장흥(長興), 속성은 조씨(曺氏)다. 법호는 순명(順命), 당호가 제월당(霽月堂)이다. 경헌은 법명. 15세에 출가하여 천관사(天冠寺)에서 옥주(玉珠)의 제자가 되고 지리산의 현운(玄雲)에게서 경(經)·율(律)·논(論) 삼장(三藏)의 교리를 익혔다. 1576년 묘향산으로 휴정(休靜)을 찾아가 득도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참여했다. 이후 금강산·오대산·치악산·보개산(寶蓋山) 등 여러 명산에 머물렀고, 금강산을 가장 좋아해 30여 년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1633년 여름 치악산의 영은사로 옮겨 2년을 지내다가 나이 91세, 법랍 76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도일(道一)·밀운(密雲)·홍택(洪澤) 등이 있고, 저서에 『제월당집』 2권이 있다.


새로 맡은 학교의 직무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토막 난 시간들 사이가 너무 메말랐다. 사막의 마음에 바람 한줄기, 냇물 한 웅큼을 건네주려고 자투리 시간마다 한 수 두 수 정리했다. 그동안 바빠 마음을 가누기 힘들 때마다 늘 이런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앞서 우리 한시 3백수 시리즈로 두 권을 펴냈다. 이번에는 특별히 스님들의 5,7언 절구시만 추려 따로 모았다. 옛말로 소순기(蔬筍氣), 즉 채소와 죽순만 먹고 살아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언어들의 향연이다. 툭 던지는 말씀, 같지만 다르고 다른데 같다.

선시(禪詩)는 그저 보면 다 그게 그거다. 왜 맨날? 행간을 훑자 그 속에 그 사람이 있다. 비슷해도 같지 않고 달라서 다 똑같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저마다의 달빛이요, 염화시중(拈花示衆)은 알아들을 귀가 따로 있다. 이언절려(離言絶慮), 언어를 떠나 생각마저 끊긴 자리, 묘합무은(妙合無垠), 이음새가 교묘해 가장자리가 없다. 영양(羚羊)의 뿔은 어디에 걸려있나?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어이 보리.

말의 길은 이제 다 끊겼다. 진흙 소는 바다로 가고 없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형형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미망(迷妄)이 제자리걸음을 못 면해 깨달음의 언어는 먼 허공을 맴돈다. 영각(靈覺)의 깊이야 나 같은 속말(俗末)이 가늠할 길이 없다. 그저 말뜻이나 헤아려 참구의 방편이 되었으면 한다. 작업의 과정 내내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015년 겨울
행당서실에서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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